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대로 202(남부민동), 부산공동어시장에 가면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사이소”를 외치는 박희자 동문(67세·부산 국어국문학과 동문회 상임이사)을 만날 수 있다. 자갈치아지매인 그녀는, 전혀 억세 보이지 않고 덤을 잘 얹어 줄 것 같은 푸근한 이미지를 가졌다.
서부 경남에서 수산물 도매에 종사했던 아버지와 현재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중도매인으로 생선도매업을 하는 남편 덕분에 박희자 동문은 비릿한 바다와 늘 함께였다. 새벽 4시에 시작해 오전 10시에 끝나는 어시장의 하루는 억척스럽게 이어진다.
박희자 동문은 바쁜 중에도 ‘사하구청 평생학습관 쓰담 학교’ 강사로 일하고 있다. 100여 명의 ‘성인 문맹인 학습자들’을 가르친 지 6년이 됐다. 지난 11월 4일 사하구청장이 주는 표창장을 받았다. 그녀는 2018년 방송대 졸업과 동시에 사하구청 평생학습관에서 ‘문해 교육지도사 양성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다문화, 형설 학교 문해 학교 강사로 봉사하는 중에, 2020년 구청 평생학습관 쓰담 학교 강사로 임명돼 지금까지 ‘쪼개고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런 자갈치아지매 박희자 동문이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5년 〈대한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한 후, 부산문화재단 예술인지원사업에 두 번이나 선정돼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2021년 6월 첫 시집 『부산공동어시장』을 출간하면서 같은 해 7월 〈국제신문〉 「박현주 그곳에서 만난 책」을 비롯해 사하 구보, 라디오, 평화방송 등 언론, 잡지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2023년 10월에는 『생선 비늘 빛 새벽』을 내놓았다.
고깃배가
뱃고동 울리며
새벽을 들어 올린다
당찬 아낙의 손길과
갈매기 날개깃 사이로
내리쏟아지는 햇살이
바다의 가슴에 앉는다
―「부산공동어시장」 일부
두 권의 시집에 ‘어시장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애환’과 파도치는 삶을 닮은 바다, 수화로 판매가 이뤄지는 경매장 등 어시장의 활기찬 움직임을 그림 그리듯 녹여냈다. 독자들에게 흥미로움과 진한 공감을 안겨주었다는 평을 여태 듣고 있다고 말하는 박 동문을 이메일로 만났다.
오유안 부산 동문통신원
시를 쓰면서 성인 문맹인을 가르치고 있는 자갈치아지매 박희자 동문.
나이가 많은 편인데도
이렇게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현재의 삶에 만족합니다.
욕심을 조금 낸다면
시민의식과 봉사 정신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은 것이 남은 꿈입니다.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요
대학은 결코 접을 수 없는 인생의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팍팍하게 돌아가는 현실은 기회를 주지 않았고, 아이 둘이 공부가 끝나고 사회인이 되고 나서야 생활도, 마음의 여유도 생겼어요. 만학도로 도전한 방송대의 공부는 매우 힘들었지만 자갈치아지매의 근성 덕에 졸업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가슴에 품어오던 ‘문학소녀’의 소망을 이루고 싶어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어요. 어릴 적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버지께서 그 당시 딱지본 소설을 시장에서 사 오시면, 큰집에 계시던 할머니를 모시고 왔어요. 할머니와 저는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재미있는 이야기책에 푹 빠져들곤 했습니다.
시를 쓰게 된 배경과 동기, 어떻게 공부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세계 동화, 이솝 우화 등 동화책을 좋아했어요. 성인이 되면서 장르 구분 없이 읽고 나름대로 해석하는 독서가 재미있더군요.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2015, 2016년도에 학년 대표를 맡아 활동 중에, 학교 카페 올라오는 게시판 글의 댓글에 참여하다 동기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게 됐어요. 열심히 쓰고, 읽고, 창작 교실에 다니면서 쉬지 않고 꾸준히 참여하다 보니 시 쓰는 게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았어요. 앞으로도 누구나 읽어도 재미있고 공감이 되는, 그래서 울고 웃게 되는, 생활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성인 문해 쓰담 학교’ 봉사를 하고 계신데요, 지금까지 지탱해 준 보람은 무엇인가요
교육한다는 것은 책임과 사명과 보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인 문맹인은 ‘단순히 글자를 읽을 수 없거나, 읽어도 쓸 수 없거나, 읽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성인’입니다. 그들은 공부하고 싶었으나 사회적, 경제적, 시대적 인식 부족으로 기회를 얻지 못했고, 필수적인 기본 권리를 잃고 살아가야 하는 아픔을 지니고 있습니다.
2016년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비문해자가 성인 577만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교육지수가 유독 높은 우리나라에서 사각지대라 할 수 있는 비문해자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은 기쁨을 퍼다 주는 일입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껏 이어온 봉사는 저를 지탱하게 하는 보람이기도 합니다.
어르신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려움도 있을텐데요
학습자의 연령대가 60대에서 80대까지입니다. 글이라고 배워본 적 없는 노인 학습자들을 상대로 하는 수업은 일반적인 수업과 크게 다릅니다. 노인 학습자들은 수업에서 다루는 과제의 성격이나 학습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리적·비인지적인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노화에 따른 기능의 쇠퇴, 학습장애를 보상해 주는 칭찬, 기본적 인권을 인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노력이 따라야 합니다. 때로는 반복 수업이 다소 지칠 때도 있지만 책임과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박희자 동문 가족은 방송대와 인연이 깊다. 그는 평생학습관에서 문맹인을 가르치면서 여전히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하구에서 문해 학습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학습지를 발행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책인지요
지난 7월 『고우니와 함께하는 성인 문해 교육』을 발간했습니다. 학습지 발행에 저와 방송대 국문학과 선·후배(정은숙 고문, 황동연 11기수 부회장, 김경자 복지국장)가 편찬위원으로 기꺼이 참여, 봉사해 주었습니다. 책은 다가올 겨울방학 과제물로 학습자들에게 배부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다른 꿈이 있으신지요
2013년 방송대에 입학하면서 이미 꿈은 이뤄졌습니다. 방송대와의 인연은 온 가족이 동반 성장하는 큰 기쁨이 되어 주었죠. 남편(경영학과·법학과 졸), 언니와 형부(교육학과 졸), 동생이 사회복지학과 졸업을 앞둔 그야말로 방송대 가족입니다. 학문의 길이 열리면서 가족 간 대화와 의식이 변화했고, 방송대 동문이 된 우리 가족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나이가 많은 편인데도 이렇게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현재의 삶에 만족합니다. 욕심을 조금 낸다면 시민의식과 봉사 정신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은 것이 남은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