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음식과 권력

“신은 단지 물을 만들었고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명상시집(Les Contemplations)』 중에서


교황을 영어로는 ‘pope’라고 한다. 이 말은 라틴어 ‘papa’에서 왔고, ‘papa’는 ‘아버지’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정감어린 말이다. 교황은 로마 주교이자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살아있는 수장이다. 별칭이 많아 로마교황(Roman Pontiff)이라 불리기도 한다.

1929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 전
그의 부모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에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피에몬테의 요리인 흰 리소토와 바냐 카우디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요리를 좋아한 그답게 어릴 적 꿈은

푸줏간 주인이었다고 한다.

이제 교황은 더 이상 요리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아직도 무수한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신과 인간의 매개자, 교황 
교황의 타이틀에 ‘다리를 세우는 이’라는 뜻을 가진 pontiff 또는 pontifex가 쓰인 것은 교황이란 존재의 역할이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데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역사는 교황의 정의롭지 못한 선택이 왕왕 잘못된 만남을 주선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준다. 종교인의 이율배반이라는 타락과 비겁한 모순은 그런 신성한 가교 위에서 싹트고 자란다. 교황은 지상의 그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천국으로 가는 다리다. 그는 신과 가장 밀접한 상태에서 선을 추구하는 최고의 성직자다. 교회의 반석이 된 최초의 교황 베드로에게 어린 양을 먹여 살릴 의무가 주어졌기에 그러하다.
바티칸 시국의 새로 설치한 문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Benedict XVI Pont (ifex) Max (imus) Anno Domini MMV Pont (ificatus) I.”
번역하면 “베네딕트 16세 성하, 최고위 성직자, 主의 해 2005년 교황위에 오른 첫 해 문을 새로 했다”라는 문장이다.

이른바 세계 3대 고백록이라 불리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 레오 톨스토이의 『참회록』이 지닌 공통점은 젊은 날의 방탕함이나 타락,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다. 자신에 대한 겸손함과 타자에 대한 인정과 배려심 유무가 위인과 속인을 구별 짓는 자질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자서전이나 고백록을 쓰고 안 쓰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3대 고백록에 포함되지 않아도 귀감이 되는 위인전이나 자기 고백서는 많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마하트마 간디의 『자서전』 그리고 모범적인 행동으로서 실천하는 위인의 면면을 보여준 프랑스의 사회운동가 시몬 베유, 달라이 라마, 테레사 성녀의 자전적 저서들은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자신의 불찰과 부족함에 대해 솔직하다. 그들은 말한다. 거룩한 성자의 진정한 권력은 완력에 있지 않다. 성자의 권력은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데서 생겨난다. 대중은 애민(愛民)의 심장을 지닌 성자의 옷자락에 기꺼이 입을 맞춘다.
로마 가톨릭 제266대 교황은 프란체스코(1936~ )다.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다. 2013년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자진해서 교황직을 사임한 후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다수의 표를 얻어 같은 해 3월 13일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교황으로서의 새 이름을 아시시의 성자를 본 따 프란체스코라 지었다.
아시시의 성자 이름은 처음부터 프란체스코(1181~1226)가 아니었다. 세례명은 요한(영어로는 존, 이탈리아어로는 죠반니)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 피에트로(영어로는 피터)가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기쁜 마음에 ‘프랑스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프란치스코로 바꿔 불렀다. 이탈리아어로는 프란체스코라고 한다.
그는 동물과 자연환경, 상인들의 수호성인이다. 또한 이탈리아 도미니코회 소속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세넨시스(1347~1380)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로마로 순례를 떠난 그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구걸하는 걸인들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껴 이후로 평생 가난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아시시로 돌아간 그는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했으며, 그의 삶에 감동돼 따르는 추종자들도 생겨났다. 프란체스코는 1210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인가를 받아 남자 수도회인 프란체스코회를 설립하고 이어서 여자 수도회인 클라라회와 제3회도 설립했다.

성사(聖事)와 긴밀히 연결된 식사
생명체에게 있어 자기보존의 본능은 생득적이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인간의 자기보존 본능은 곧바로 의식주(衣食住)에 대한 욕구와 직결된다. 그중에 가장 강력하고도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 식욕이다. 그래서 장발장은 빵을 훔쳤다. 프로이트 심리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드(id, 본능)가 에고(ego, 자아)보다 강력한 탓이다. 로만 가톨릭이든 정교회든 종교 윤리의 측면에서도 식사(食事)는 성사(聖事)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한 예로 가톨릭에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하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에 성체성사와 성품성사가 제정된 것을 보면 식사의 거룩한 깊이를 중요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사가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종교가 지배하는 중세 유럽 사회에서 농노나 서민들의 삶은 어디서건 항시 결핍돼 있었다. 그에 비해, 하나님의 종이라면서 대중의 고혈을 빼앗아 자신들의 삶을 희희낙락하는 성직자들의 음식 창고는 먹을 게 넘쳐났다.
베트남 출신 영화감독 쩐 안 홍(Tran An Hong)은 「프첸시 수프」로 2023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레스토랑 오너와 그를 위해 일하는 요리사와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인데, 음식을 만드는 일에 경외심을 갖게 할 만큼 우아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인 미식가는 말한다.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별의 발견보다 행복에 더 이바지한다. 결혼은 디저트부터 시작하는 만찬이다. 아담과 이브도 모든 건 그들이 먹은 무언가로부터 시작됐다.” 
교황은 로마 가톨릭의 최고봉이다.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건 교황의 자유다. 가톨릭교회는 담배와 술을 허한다. 성경에서는 향락주의를 경고하지만, 이는 결코 먹거리에 대한 자유를 억압한 게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과한 건 금물이다. 모든 피조물이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므로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육식 옹호론은 고기가 먹고 싶어도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허한 진리일 뿐이다. 음식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주어진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마음은 성직자든 평신도든, 바티칸 안이든 바깥이든 똑같이 지녀야 한다.

어려서부터 주방에 들어가는 걸 좋아해 
교황 프란체스코는 뚱보에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미소가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근엄한 면모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방송이나 지면을 통해서가 아니라 먼 거리긴 하지만 육안으로 직접 교황을 본 건 콜럼버스의 도시 제노바에서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그러나 신앙은 물론 각종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난 정부가 바티칸이다. 이곳 근위대원들은 스위스 용병으로, 군대의 숫자는 110명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군대다. 알록달록한 노랑·파랑·적색으로 이뤄진 정복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
이들이 가장 즐겨 먹는 메뉴는 파르마산 치즈와 오우버진이라 불리는 가지 요리다. 우리나라 대추와 중동의 대추야자가 당도와 크기, 맛, 질감의 차이를 보이듯, 유럽산 가지는 우리가 보고 먹는 갸름하고 부드러운데다 달콤한 말랑 가지와 다르다. 당연히 조리 방식과 시간, 양념 등이 딴 판이다. 우리는 보통 가지를 쪄서 길게 찢어 슴슴하게 양념을 한 뒤 초를 몇 방울 떨어뜨려 밥반찬으로 먹는다. 바티칸을 지키는 근위대의 젊은 대원들은 빵가루를 묻혀 튀긴 가지에 토마토소스와 모짜렐라 치즈를 얹은 후 15분간 구워 만든 요리를 맛나게 먹는다.
전임 교황이던 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소세지와 로스트 포크를 주로 즐겼다.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 음식인 피에로기(Pierogi: 폴란드식 만두)와 애플 타르트를 즐겼다고 한다.
출신이 아르헨티나인 때문이어서일까, 교황은 모국의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남미식 만두로 알려진 엠파나다, 소고기, 둘체 데 레체(디저트 일종, 연유 위에 캐러멜을 녹여 올린 것) 등이 현 교황의 음식 취향이라고 한다.
호르지토(Jorgito)라고 불리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는 어려서부터 주방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다. 가족을 위해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특히 ‘칼라마리 리피에니’라는 오징어 요리를 잘 만들었다. 오징어 다리와 마늘, 빵가루, 달걀, 파르미자노, 프레체몰로, 후추를 넣어 버무린 후 오징어 몸통 속에 채워 올리브유로 오징어를 살짝 구운 뒤 화이트 와인으로 냄새를 없애고 익힌 요리다.
1929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 전 그의 부모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에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피에몬테의 요리인 흰 리소토와 바냐 카우디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요리를 좋아한 그답게 어릴 적 꿈은 푸줏간 주인이었다고 한다. 교황은 대주교 시절에도 열려 있는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직접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
이제 교황은 더 이상 요리를 하지 않는다. 대신에 아직도 무수한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파한다.

영어학자이지만, 뒤늦게 중앙아시아사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차와 여행을 좋아해 『茶의 고향을 찾아서』『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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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ja1***
    상식적인 내용을 알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2025-02-13 07:14:03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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