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동시대 예술 산책

□ ‘동시대 예술 산책’ 연재 내용은 같은 이름의 교재『동시대 예술 산책』에서 좀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교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아트는 기존의 예술 형식과 기술적인 요소들을 융합해 창조하는 예술 분야다. 과거에는 미디어아트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층이 두텁지 않았고 기술의 발전도 더뎠기 때문에 미디어아트라고 하면 백남준, 이이남, 정연두 등의 작품을 바로 연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미디어아트가 더 보편적으로 여러 공간 및 비즈니스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미디어아트의 개념과 범위가 모호해졌다. 이를테면 서울 명동의 신세계백화점에서 매년 연말마다 선보이는 미디어파사드도, 제주에 위치한 아르떼뮤지엄이나 빛의 벙커처럼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도 모두 미디어아트에 속한다. 아마 미래에는 전국 곳곳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어쩌면 미디어아트가 아닌 작품을 만나는 것이 더 희귀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 호에서는 미디어아트의 시작으로 불리는 백남준부터 최근의 미디어아트 작품까지 개괄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백남준과 비디오 아트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일지라도 백남준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1932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도쿄, 파리, 뉴욕 등 전 세계 주요 예술의 거점에서 활동한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졌지만, 미술사, 현대음악, 음악학, 행위예술 모두에 정통한 종합예술인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여기서는 그의 예술세계 전반을 소개하기보다는 예술과 기술이란 주제와 관련해 비디오 아트 작업을 중심으로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먼저 백남준의 이름에 항상 따라다니는 ‘비디오 아트’가 무엇인지, 비디오 아트는 미디어아트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의를 살펴보겠다. 비디오 아트는 비디오 즉 텔레비전을 매체로 하는 현대미술의 한 경향을 말한다. 백남준은 1963년 부퍼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음악의 전시회-전자텔레비전」에서 3대의 피아노, 소음을 생성하는 기구, 13대의 장치된 텔레비전을 제작 및 전시했다. 여기 장치된 텔레비전은 내부 회로를 변경해 스크린에 추상적인 선과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구성했는데, 이 작업은 비디오 즉 텔레비전을 예술 장르로 재발견한 첫 시도로 기록됐다(김홍희, 1999).

1960년대의 텔레비전부터 2020년대의 인공지능까지
최신 과학기술이 예술에 접목되면서

예술의 경계가 확장됐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을 가장 쉽고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매체로 예술의 기능이 한층 더 강조됐다.

 

 

‘미디어아트’는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대중매체를 미술에 도입한 것으로 책이나 잡지, 신문,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비디오 등 대중에 파급 효과가 큰 의사소통 수단의 형태를 빌려 제작된다. 그러므로 비디오 아트는 넓은 의미에서 미디어아트에 속하는 개념이다.
비디오 아트가 처음 등장한 1960년대는 아직 텔레비전이 대중에 보편화되기 전이어서 비디오를 현대미술의 매체로 사용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가장 최신의 기술을 예술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의 발전으로 텔레비전의 아날로그적 방식이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접근이 되어버렸고, 그 사이에 스마트폰, 인터넷 등 또 다른 미디어를 매체로 사용하는 새로운 예술이 시도됐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아트는 전 시대를 아우르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되며, 비디오 아트는 좀 더 한정적으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 또는 백남준이 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백남준은 비디오 매체를 활용해 어떤 방식으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시도한 것인가? 그의 수많은 작품 중 여기서 먼저 소개할 작품은「다다익선」이다. 이 작품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제작된 것으로 브라운관 텔레비전 1,003대를 가지고 제작한 높이 18.5m의 비디오 타워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로비에 설치돼 지금도 같은 공간에서 전시되고 있다. 처음 이 타워를 제작할 때 계획으로는 300여 대의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설계한 건축가 김원이 300여 대만으로는 높이가 상당한 전시장의 중앙 홀 천장에 다다를 수 없다고 하여, 그렇다면 1,000대를 쌓으면 어떠냐고 제안한 것이 제작일인 10월 3일, 즉 개천절을 기념해 1,000대에서 3대를 더해 1,003대가 됐다고 한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의 다다익선이 작품명이 된 것도 이런 일화와 관련이 있다.
6인치부터 25인치까지 다양한 크기로 설치된 텔레비전에는 같은 영상이 나오는 게 아니다. 3개의 테이프가 방영하는 이미지들을 최신 기술을 사용해 반복, 병치시킨 것으로 화면 하나씩을 일일이 살펴보는 것보다는 1천여 대의 텔레비전이 줄거리나 특정한 메시지 없이 뒤섞여 발신하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감상하는 것이 관람의 포인트다. 전시장 중앙 홀에 설치된 이 작품은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가면서 관람할 수 있고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텔레비전 모니터를 통해 작품을 볼 수 있다. 이 구조를 ‘램프코어’라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작가와 관객의 수직, 일방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작품 감상이 이뤄졌다면 이 작품은 관객이 자신이 원하는 지점, 원하는 각도에서 능동적으로 작품을 감상한다는 점에서 수평적, 참여적 관람으로의 변화를 끌어낸 작품이다.
다다익선이란 말은 많을수록 좋다는 의미 외에 오늘날 커뮤니케이션 현상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많다’는 것은 반드시 물건이 아니라 수신(受信), 즉 통신을 받는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이 엄청나게 많은 통신과 수신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백남준은 대중매체 자체를 자신의 예술적 오브제로 삼은 것이다(김은령, 2014).
 
AI를 만난 미디어아트, 레픽 아나돌
텔레비전이 처음 도입됐을 때 백남준이 이를 예술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던 것처럼 요즘에도 최신 과학기술을 예술의 일부로 승화시키는 시도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AI(인공지능)를 예술에 적용한 미디어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을 소개한다.
레픽 아나돌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튀르키예 출신의 미디어아티스트다. 그가 선보이는 작업은 초대형 스크린에 다양한 미디어아트 작품이 등장하는 것으로 언뜻 보면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작품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인공지능이 만든 작업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레픽 아나돌과 그의 팀이 수집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실시간 분석해 영상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위의 그림「머신 시뮬레이션: 라이프 앤 드림스희로애락」은 2023년 63빌딩 1층 로비에 전시된 것으로 그의 작품이 처음 한국에 선보인 전시이기도 했다. 이 작품을 예로 들면 AI가 희로애락이라는 한국인의 감정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감정을 느낄 때 나타나는 뇌파, 불꽃놀이, 한국 전통 음악, K팝 뮤직비디오 등 각종 오픈소스 데이터를 긁어모은다. 이렇게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수개월이다. 2024년 9월 푸투라 서울(FUTURA SEOUL)이라는 새로운 예술공간에서 열린 레픽 아나돌의 개인전「지구의 메아리: 살아있는 기록 보관소」의 경우에는 십여 년간 수집한 대량의 자연계 데이터가 사용됐다고 한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클릭 한 번으로 작품을 생산하는 시간은 짧아 보이지만 작품 생산을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해야 한다.
레픽 아나돌의 작업은 2022년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장기간 전시를 하면서 화제가 됐다. ‘인공지능이 만든 것을 과연 예술이라 볼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을 바탕에 두고 이 작업은 전시 기간을 네 차례나 연장할 정도로 화제가 됐고, 그의 작업은 퐁피두 센터, 아트 바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다보스 포럼, CES 등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 놓인 여러 행사와 공간에서 활발히 선보이고 있다.
1960년대의 텔레비전부터 2020년대의 인공지능까지 최신 과학기술이 예술에 접목되면서 예술의 경계가 확장됐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을 가장 쉽고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매체로 예술의 기능이 한층 더 강조됐다. 레픽 아나돌이 “예술은 모든 사람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미디어아트를 통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을 꿈꾼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미디어아트의 다양한 발전을 통해 우리 모두 예술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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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ixz***
    부산 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작가의 작품을 보고 왔는데, 교수님의 글을 읽으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정말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025-03-12 16:11:46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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