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 대신 용서할 수 있다는 현 정부의 섬뜩한 인식은 수많은 외교 관련 사례 및 발언에서 언뜻언뜻 드러난다. 광복 80주년인 을사년 새해, 다시 한 번 묻는다. 대신 용서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이번 글은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다, 전공인 경제조차 잘 모르는 주제에 문외한인 정치·외교 분야, 그것도 민감한 한일 관계를 건드리는 것이 심히 부담스럽다. 하물며 잇따른 사상 초유의 사태로 헌정 질서가 위기에 처한 지금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48년’이 아닌 ‘45년’ 광복절(光復節)이야말로 말 그대로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날’이며 위안부는 ‘자발적’이 아니라 ‘강제동원’된 것임을 자명한 사실로 아는, 지극히 평범한 한국인으로서 비단 정치·외교·법의 차원을 넘어 보다 보편적인 윤리 그리고 종교의 관점에서 나름의 생각을 끄적인 것으로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밀양」(2007)이라는 영화가 있다. 유괴범에게 살해돼 자녀를 잃은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는 종교에 의지해 고통을 극복하려 애쓴다. 그러던 와중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대로 유괴범을 용서하고자 교도소로 면회를 간 신애는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를 받았다’며 평온한 미소를 짓는 유괴범의 모습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다. 그녀를 위해 중보 기도하러 온 교회 신도들에게 신애는 이렇게 말한다. “용서해요?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 이미 용서 받았대 하나님한테.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대요.” “아이고, 와 이라노? 목사님 기도중에 그래, 하나님이 용서하셨으니까네 이 선생도 용서해야지.”“이미 용서를 얻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용서를 해요?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난 이렇게 괴로운데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구원받았어요. 어떻게 그러실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