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이성만 동문(행정학과 졸)

“나의 인생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별 자랑할 것이 못된다. 오히려 실망과 미완성에 가깝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을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은 저마다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고유한 개인이요, 그래서 그 누구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삶이라는 것을. 용기 잃지 마시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밀물의 때는 온다. 행여 오지 않더라도 갈대밭에 덩그러니 남아 기다리는 그 모습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토록 노력했어도 징글징글 안 풀린 사람, 네 번의 사업 실패와 갖은 굴욕과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은 www.ifezs.com(인천경제자유구역서비스)에 가슴 뭉클한 CEO 일기를 10년째 써 가고 있는 사람, 이성만 인천경제자유구역서비스 대표이사(57세, 행정학과 졸)가 최근 펴낸 에세이집『비교하지 마라 세상 하나뿐인 고유한 너의 삶』(좋은땅, 2019) 서문에 쓴 말이다.
‘방송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가 있다면 아마도 ‘주경야독(晝耕夜讀)’일 것이다. 이성만 동문도 그 이미지에 부합하는 동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서울에서 2시간 길을 더듬어 도착한 기자를 보자마자 그는 자신을 가리켜 ‘방송대 순종 토종’이라고 말했다.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서 일하다가 배움의 갈증이 식지 않아 일찍이 ‘주경야독’ 하겠다는 각오로 1982년 행정학과에 입학한 그가 학업을 마친 건 1989년. 놀랍게도 그가 방송대 문을 노크한 곳은 군입대한 ‘백마부대’에서였다. 푸르디푸른 스무살 청년의 시절에 선택한 공부 길이었으니, ‘순종 토종’이란 말이 딱 맞다.
그런 그가 들려준 육군 복무시절 공부 이야기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도피처로 군대를 택했죠. 그리고서 군대에서 방황을 정리하고 방송대 1학년을 시작했습니다. 출석수업에 나가기 위해 포상휴가가 걸린 일이라면 기를 쓰고 덤볐더랬습니다. 정기휴가도 미루고 또 미루고 해서 방송대학 시험시기를 맞추기도 했고요.” 훗날 그는 이런 내용으로 직업군인들의 ‘공부 고충’을 상담해주기도 했다.
그의 공부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와 동생들의 인생까지 짊어진 그였건만, 그의 ‘학구열’은 식지 않았다. 방송대를 졸업한 뒤에는 ‘야경주독’하면서 한국외대 대학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낮에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은행 야간근무를 자원했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저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 높이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개 숙이고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이 시기 가족사진을 보면, 제 얼굴이 늘 퉁퉁 부어 있더라고요. 낮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수업 없는 날에도 학교에 갔어요. 늘 얼굴이 부어 있었던 거죠.”
이성만 동문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는 ‘네 번의 실패’다. 1999년 2월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삶은 그의 계획을 늘 벗어나고 있었다. 실제로는 더 많은 좌절과 실패가 그의 이름 앞에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사업 실패요? 네 번도 넘죠. 굵직한 것만 그래요.(웃음)” 그가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첫 에세이집을 집필한 것도 이런 인생역정에서의 성찰과 배움 때문이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 ‘세상 하나뿐인 고유한 삶’의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공식 프로필에는 ‘국회(의원) 비서관, 보좌관 근무 10년’이 기록돼 있다. 한국외대 행정학과 대학원 시절 사제의 인연을 맺은 안병만 총장이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보고 “학비도 마련하면서 공부해보라”고 소개해준 곳이 바로 ‘한국의회발전연구회’였다. 이곳은 이성만 동문에게 삶의 전기가 된 곳이자, 든든한 푸른 초장이었다. 이곳에서 자연스레 ‘정치’에도 가까워졌지만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정치는 아닌 것 같아요. 그 누구보다 많은 훈련과 노력, 그리고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정치가 제게 그다지 어울리는 옷이 아님을 비로소 알게 됐기 때문이죠. 다른 길에서 기회가 된다면, 이 사회와 국가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
그가 말하는 다른 길은 자신과 같이 좌절과 실패를 경험한 이들, 그 좌절의 아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혹은 인생길의 막막함 앞에 그만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후배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264쪽짜리 에세이집 곳곳에서 공허한 활자의 그림자가 아니라, 삶의 절절함이 묻어나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는 지금 ‘www.ifezs.com’ 즉, ‘인천자유경제구역서비스’라는 긴 이름의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조성 프로젝트를 추진한 7인의 창업 멤버 중의 한 사람인 그가 에어컨도 없는 다섯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아시아의 실리콘배리를 세우기 위해 달려왔던 작은 결과물이다. “사업요? 점수를 준다면, 과락을 줄 거 같아요. 지금도 많이 아쉽고 마음 아프죠. 회사 이름을 많이들 탐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이곳은 제가 신앙하는 나의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준 생업의 구역이므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향후 IFEZS를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시킬 것도 염두에 두고 있죠.”
이성만 동문은 자신의 첫 에세이집을 펼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독특하며, 신비로이 펼쳐진 우주 안에서 각자 고유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른 역할, 다른 사람의 역할을 행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모습을 이제야 모금은 제대로 안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나로 인해 내 주변이 조금이라도 밝아진다면 감사한 일이죠.”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삶에서 길러낸 ‘빨랫감’ 같은 이야기들을 글쓰기로 계속 풀어내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인천 송도에는 자욱한 미세먼지 속에 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가 껴안고 살아왔던 인생길도 저렇게 시계 제로 상태였을 텐데, 그는 깨달음을 하나 얻어 주변을 밝히는 등불이 됐다. 그의 불빛이 멀리, 그리고 오래 따뜻하게 타오르길 기대한다.


우리는 우주 안에서 각자 고유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다른 역할, 다른 사람의 역할을 행하려고 애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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