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고등학교 1학년 아들과 어느 순간부터 관계가 서먹해졌다. 발단을 찾자면, 올 1월의 사건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1~2월에 수학공부를 집중적으로 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수학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아들은 첫날부터 힘들어했다. 중학교 때 이미 고등학교 수학을 배운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조금 지나면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부분의 학원들이 방학 두 달 동안 한 학기 진도를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학원을 간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아니었다.


아들에게 조금만 참아보자고 달래고, 학원 선생님에게는 우리 아이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개념 설명을 해주시기를, 좀 쉬운 숙제를 내주시기를 부탁했는데, 선생님은 어차피 고등학교에서 학습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힘들어도 적응해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학원 수업이 시작될 시간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원에 가기 싫어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디에 와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제야 아들이 몇 번이나 힘들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했던 얘기가 망치와 같은 무게감을 가지고 나를 강타했다. 참으라는 말로 넘길 수준이 아니었음을 알고 학원을 그만두게 했다. 대안을 찾은 다음에 그만둘 일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조금도 견디기 힘든 상태였다. 아들이 나에게 힘들다는 외침을 보낸 지 한 달 만에 그 소리가 드디어 나에게 들린 것이다.

 

우리는 때로 상대방의 여러 감정 중에서

내가 이해한 감정을 상대방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공감이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공감이다.


‘공감(共感)’. 내가 상담 강의 시간에 늘 강조하는 것인데, 내 자녀를 공감하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 공감이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어느 누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을 그 사람처럼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까.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을, 사고로 다친 사람의 분노를, 친구에게 배신당한 사람의 억울함을 우리가 그 사람처럼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나는 공감을 할 자신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것밖에 못했다는 비난이 아니라, 그 사람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 사람 나름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신뢰이고 공감의 출발이다.


우리는 때로 상대방의 여러 감정 중에서 내가 이해한 감정을 상대방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공감이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공감이다. 좀 더 높은 수준의 공감은, 상대방이 표현한 여러 감정 중에서 더 본질적인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상대가 스스로 표현하지 못한 내면적인 감정까지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리고 성장하기 위해,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대의 모습을 발견해 줄 수 있다면 가장 높은 수준의 공감일 것이다.


2월의 나는, 아들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그 상황을 벗어나도록 허락하는 수준의 공감을 했다. 아들의 마음에 공감하려고 노력해 보니 공부를 잘하고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 늘어난 학습량을 소화해 보려는 도전, 잘 안되는 자신에 대한 좌절,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절박함, 그러면서도 엄마한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섞여 있었음을, 이겨내 보려고 한 달이나 버텼음을 알게 됐다. 아들의 여러 마음이 이제 느껴진다.


여전히 공감을 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고, 많은 경우에 지금처럼 뒷북을 친다. 하지만 6개월 늦게 도착한 공감이라고 아들이 안 받아주지는 않겠지. 내가 이해한 아들의 마음, 그리고 나의 사랑을 잘 전달해 봐야겠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