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박아청 계명대 명예교수

서양 문화의 근본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로 오늘날 기독교를 일으키게 한 예수를 들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의 일생에서 인생 회로 탐색을 위한 하나의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 각한다.
예수의 정체성과 그의 형성 과정을 보면 그는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정체성의 긍정적인 면보다는 오히려 생명, 삶보다는 죽음, 성공보다는 희생, 활력보다는 침체, 소유와 쟁취보다는 상실과 손실과 같은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면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수는 출생 전부터 천상의 천사로부터 이름(미션)이 주어졌고 가시밭길의 인생 여정이 예정되어 있었으며, 십자가의 고난의 길이 예고되었고, 삶의 길이 곧 죽음의 길이라는 것으로 계획 된 일생이었다. “그가 사는 것은 곧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그가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한 말, 그것은 ‘다 이루었다’는 종결 선언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상 생활에서의 예수의 정체성 완결이었다.”
논리적 비약이지만 나는 감히 오늘날 우리의 인생 회로를 탐색하는 데 이 예수의 죽음에서 그 완결을 찾고자 한다. 그의 죽음과 실패, 상실과 손실, 그리고 희생을 통한 새로운 부활을 약 속하는 그러한 정체성의 완결이다. 나는 결코 특정 종교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죽음과 불행, 상실과 손실과 같은 부정적인 것에서 우리의 회로를 찾으려고 할 따름이다.
나는 인간의 일생이란 자기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이란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인생은 태어나서 다른 짐승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영아기를 지나면서 자신의 자아를 인식한 날 즉, 인간으로서 재탄생한 날부터 육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다. 이 정체성을 찾는 방황의 연속이 인생이라는 논리적인 비약을 해본다. 인생이란 정체성의 위기의 연속이다.
창조주께서 지구를 둥글게 만드신 이유는 아마도 이 지구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이 그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지구 ‘한복판’에서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일 거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비록 우리의 생물적,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배경과 모습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지구의 중심에서 태어나고 중심에서 살다가 그리고 중심에서 사라져간다는 사실은 누구나 동일하다. 그러기에 나는 지구 중심에 우뚝 선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의 삶의 원초적인 기초를 생각한다.
여기에서 나는 내가 지구의 중심이며 ‘나는 나고, 너는 너’의 구약의 예언자 예레미아 식의 자존을 찾으며, 내 생명의 존엄성을 발견한다. 내 목숨이 지구보다도 더 무겁고 그 어느 것보다도 귀하다고 여기는 비약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나의 삶의 궁극적인 자존은 내가 생명을 가진 ‘산 인간(living thing)’이라는 ‘생명’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 한다. 혈통도 학력도 재능도 외모도 그 어떤 것도 이 살아 있다는 것, 이 자체보다 상위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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