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서구지성사를 만나다

『사회계약론』(1762)은 장자크 루소의 대표작 중 하나다. 하지만 루소가 이 저작에서 유럽 문명의 미래를 우려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2권 8장에서 루소는 러시아와 타타르가 유럽 문명을 잇달아 침략하고 종국에는 정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유럽의 군주들이 합심해 이와 같은 미래를 재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루소가 유럽의 미래에 대해 절망한 이유는 상업사회가 유럽 문명에 가져온 변화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 속에 있다. 같은 책의 3권 15장에서 루소는 ‘돈을 주고 고용한 전문가들에게 시민들이 통치와 방어를 위임하는’ 근대국가가 과거의 자유 국가와 모든 면에서 다르다고 비판했다. 돈을 매개로 노동이 분업화하면서 공적 업무를 위임하고 다른 수익 창출을 더 근심하는 근대인의 초상을 루소는 개탄했다.

남녀 할 것 없이 여가가 있는 이들은 이제 상업화된 도시에서

무기와 함께 자율적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덕 원리인 세련된 예절을 익혔고,
상업으로 다양해진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도덕성은 근대 상업사회의 물질적 개선과 더불어

거칠고 야만적인 습속의 문명화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상업사회의 도래가 유럽에 가져온 충격
관료제와 상비군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근대의 변화는 새로운 상업 문명의 물질적 토대에 기인한 변화인 동시에 고대적 덕성을 중심으로 한 가치체계를 무너뜨리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상업사회의 도래가 유럽인들의 인식에 가져온 충격은 너무나 컸기 때문에, 당대 문필가들은 변화를 포착하고 대응 전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이해하고 사고하는 익숙한 언어도 완전히 뒤바뀌는 경험을 해야 했다. 기존의 가치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들이 전에 없던 불안과 불확실성을 낳았고, 유럽 각국의 정치가, 언론인, 지식인들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인식의 틀과 새롭게 만들어진 패러다임이 경쟁하는 가운데 풍전등화의 국가를 지키기 위한 방책들을 고안하는 과제에 몰두했다.
18세기 내내 유럽을 휩쓸 거대한 충격의 첫 번째 파도가 덮친 곳은 명예혁명 이후 국가체제를 정비하던 잉글랜드였다. 1688년 말 오라녜 공 빌럼 3세는 네덜란드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에 상륙, 장인인 제임스 2세의 자리를 대신해 아내 메리 2세와 함께 윌리엄 3세로 공동 즉위했다. 윌리엄 3세와 함께 잉글랜드로 들어온 군대는 제임스 2세와의 무력 충돌과 또 한 번의 내전을 막는 억지력으로 작용했으나,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야심을 제어하기 위한 국제전인 ‘9년전쟁’으로 잉글랜드를 끌어들였다. 1690년대 중엽에 이르러 윌리엄이 대륙에서 형성한 군사적 지원 체계를 지탱하기 위한 재정구조를 갖출 필요성이 제기됐고, 잉글랜드 군대와 재정은 상비군과 국채로 알려진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 1694년 잉글랜드은행이 수립되면서 국가 신용을 활용해 미래 세입을 담보로 군사적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국채 제도가 마련됐고, 이를 바탕으로 운영된 상비군은 명예혁명과 재정혁명을 잇는 고리가 됐다.
도덕과 사회를 논평하던 기존의 언어 체계는 이러한 혁명적 변화를 부패로 규정했다. 이와 같은 언어적 패러다임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해 르네상스 피렌체의 마키아벨리, 잉글랜드 내전기의 제임스 해링턴을 거쳐 발전한 것으로, 토지와 무기를 소유하고 공동체의 이익에 봉사하는 시민의 이상에 기초해 있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가치체계는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매수되거나, 다른 상업 활동을 위해 돈을 주고 군인의 임무를 남에게 맡기는 일체의 일탈을 덕성의 부패이자, 공동체의 중대한 위기 요인으로 인식했다. 요컨대 고전적 패러다임은 근대세계, 즉 금융 세력의 이해관계에 좌우되는 상업사회의 가치체계가 쉬이 받아들여질 수 없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세기 전환기 잉글랜드에서 고대와 근대적 가치의 대립은 정권을 장악한 휘그 과두정을 옹호하던 궁정파와, 변화에 저항하는 논변을 제기하던 재야파의 논쟁으로 표현됐다. 재야파는 상비군이 군주의 힘을 지나치게 강화했으며, 국왕이 상하 양원을 뇌물과 후원을 매개로 부패시켰다고 지적했다. 반면 궁정파는 더 이상 토지 재산이 부의 척도로서의 지위를 독점하지 못하고 신용이 점차 더 중요한 자산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고전적인 덕성의 대립항으로서의 정념과 이기심을 추구하는 경향이 가시화된 현실을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국제정치적 상황이 유럽 각국의 위정자로 하여금 이러한 현실에 발 빠르게 적응할 것을 요구했음은 물론이다.
국채를 활용해 대규모 군대를 운용하는 근대국가의 새로운 기제는 일단 발명된 이상 마치 전염병처럼 유럽에 전파돼, 한 나라가 군대를 증강하면 다른 나라도 같은 전략을 채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신용을 매개로 공중의 투자를 받아 키운 회사가 버블 붕괴로 이어지는 일이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 판박이처럼 재현됐다. 루이 14세 치세에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프랑스 국채를 재정비하고자 스코틀랜드 금융가 출신의 존 로가 개시한 미시시피 계획이 실패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상업은 실물이 아닌 허상 위에 세워진 신기루와 같은 환상을 부추긴다는 불안이 고조됐다. 근대 금융 장치들의 해로움을 지적하며 진정한 국부의 토대인 농업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상업과 신용을 잘 다뤘을 때 시장 순환을 촉진하고 농업 생산성도 재고할 수 있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다.
실물경제에 토대를 두지 않은 금융 장치로 확장된 재정을 운영하는 기제에 대한 불안은 데이비드 흄의 고민에 응축돼 있다. 흄은 “국가가 국채를 파괴하거나, 국채가 국가를 파괴할 것”이라며 국가의 자발적 부도를 조언할 정도로 공공신용제도를 단호히 비판했다. 그러나 흄은 프랑스와 영국의 국채를 대조하며 후자가 더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평했다. 절대왕정은 군주의 의지에 따라 파산을 명할 수 있는 반면, 채권자들이 후원 관계를 통해 정부와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국가가 그들의 이익과 충돌하는 정책을 채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의 시험대에 오른 전통적 도덕성
사회가 변함에 따라 고대인에게 요구되던 자질들은 더 이상 근대세계의 기본적 구성 원리로서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다. 고대의 시민적 인간형의 이상은 복잡하고 분업화된 사회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인간형의 도전을 받았다. 그것은 교환에 기초한 경제의 일원이 된 상호의존적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공공선이 아닌 특수한 이해관계에 매달렸다. 이들의 관심은 물질적 풍요에 그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우위와 인정이라는 비실재적 차원으로까지 나아갔다. 버나드 맨더빌은 도덕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회성을 창출했으며, 자신의 지위를 높이고 과시하려는 욕구가 전통적 덕성을 위배할지언정 경제를 활성화하고 다양성을 키우는 사회적 유용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반면 전통적 덕성을 조롱한 맨더빌의 도발적 사상을 비판한 이들은 새로운 시대의 도덕성이 풍속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남녀 할 것 없이 여가가 있는 이들은 이제 상업화된 도시에서 무기와 함께 자율적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덕 원리인 세련된 예절을 익혔고, 상업으로 다양해진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도덕성은 근대 상업사회의 물질적 개선과 더불어 거칠고 야만적인 습속의 문명화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그럼에도 새로운 도덕성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 어느 누구도 섣불리 낙관할 수는 없었다. 루소는 인간의 역사를 태초부터 추론하면서 최초의 인간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자유의지와 완성 가능성이라는 자질을 타고났다고 보았다. 이는 최초의 조건을 개선하거나, 혹은 부패시킬 수도 있는 역량을 의미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속성이 사회와 재산권, 불평등과 계급 분화의 발달을 낳았다. 재산권 제도로 불평등이 확립되자 사람들은 이제 자기보존뿐만 아니라 동료들로부터 자신을 구분하고자 하는 욕구를 품었다. 루소에 따르면 미개인은 자기 안에만 살고 자유로운 반면 시민은 타인의 견해 속에서만 살 수 있었으며 번뇌로 가득했다. 루소에게 부패와 개선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국부론』(1776)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근대 문명의 해악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인간 조건의 개선이 커다란 선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덕감정론』(1759)에서 상업사회의 도덕이론을 전개하면서 복잡한 도덕적 판단을 요하는 근대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고대의 덕성보다는 지혜라고 보았다. 이때의 지혜는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조율하고 판단할 수 있는 상업적 인간이 기를 수 있는 것이었다. 스미스의 도덕 이론의 출발점이었던 공감은 인간이 타인을 관찰자로 의식하고 행동의 적절성과 효용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도출하는 원리였다. 하지만 스미스는 평범한 관찰자가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도덕감정론』은 판본을 거듭하면서 범인의 견해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보편적 공식에 기초해 선험적으로 만들어진 도덕 원리들을 이성이 이해하고 의지해야 한다고 단언한 임마누엘 칸트도 근대 사회성이 놓인 진퇴양난의 문제를 시인했는데, 바로 ‘비사회적 사회성’이라는 표현이 이를 보여준다. 정념의 지배가 인간이 보편적 도덕 법칙을 따를 전망을 제한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인정한 것이다. 전통적 도덕성이 부패하고 와해하고 있는 실태를 염려하던 문필가들은 상업사회의 새로운 도덕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다양한 타협안을 앞다퉈 내놓았다. 하지만 변화한 사회에서도 도덕을 바로 세울 수 있을지를 두고 어느 누구도 섣불리 낙관할 수 없었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역사학부 대학원에서 18세기 러시아제국의 개혁과 유럽계몽사상의 관계를 중심으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예카테리나 2세의 입법위원회와 러시아의 상업화 논의」등이 있으며, 번역서로『예카테리나 서한집』(공역, 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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