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정년퇴임하는 전용오 교수(교육학과)

2026년 2월, 방송대 교육학과의 큰 스승 전용오 교수가 정든 교정을 떠난다. 1989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2001년 4월 26일 방송대에 부임한 이래 25년간 성인 학습자들의 곁을 지켜온 그가 이제 ‘교수’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인생의 새로운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퇴임을 앞둔 소회를 묻자 그는 “지난 65년의 삶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감사한 일들뿐이었다”라며 겸손하게 웃어 보였다.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부터 좋은 스승과 동료를 만난 것, 그리고 무엇보다 방송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정을 쌓아온 모든 시간이 축복이었다”라고 말하는 전용오 교수를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교수의 직무는 교육, 연구, 봉사다.
이 세 가지 활동의 밑바탕에 있어야 할 것은
인간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합창의
정신을 사랑하고 실천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중심에 우리
방송대인들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부친의 뒷모습에서 배운 ‘스승의 길’
전용오 교수가 교육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우연의 모습을 한 필연이었다. 서울대 사범대학 입학 당시 계열별 모집으로 입학했던 그는 2학년 진학을 앞두고 방송대 초대 학장이기도 했던 김종서 교수의「교육학개론」수업을 듣게 된다.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교육’이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그 교육을 잘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해 교육학과에 진학했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후 그는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지와 관련된 ‘교육심리학’과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며 성장을 조력하는 ‘상담심리학’에 매진하게 된다. 특히 대학원에서 전공한 ‘교육상담’은 그에게 있어 교육과 상담이 동일한 목적을 지닌 하나의 활동임을 깨닫게 했다.
그의 교육적 신념에는 46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헌신했던 부친의 영향이 깊게 뿌리내려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랑하는 일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가장 훌륭한 교과서였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었던 노혜동 교사를 비롯해 수많은 스승의 영향을 받았지만, 결국 아버지의 길을 따라 교육자가 됐다. 그는 “공부를 하다 보니 대학교수까지 하게 됐지만, 만일 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됐을 것”이라며, “가르치고 배우는 일만큼 값진 것은 없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간과 교육’에 대한 학문적 헌신
전 교수는 강단에서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교육학 및 상담심리학 분야에서 방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저술은 방송대 학우들의 필독서이자 해당 분야의 표준 지침서로 자리 잡았다.
『상담심리학』(2020),『교육심리학』(2020) 등을 통해 성인 학습자들이 인간 심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왔고,  특히 2023년 공저로 펴낸 『인간과 교육』과 2024년 최신작인 『심리검사 및 측정』은 그가 평생 탐구해온 인간 이해의 정수를 담고 있다.
또한, 원격교육기관이라는 방송대의 특성에 맞춰「한국방송통신대학교 생활지도 및 상담체제 개선방안 연구」(2007)와「미국과 한국의 온라인 원격상담체제 비교 연구」(2009)를 발표하며 시스템 구축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성인 여성 학습자의 삶에 주목해「‘생애진로무지개’를 활용한 진로 교육 경험 탐색」(2021) 및「다중역할 갈등 대처방법에 대한 질적 분석」(2021) 등의 논문을 공동발표하며,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제자들의 고충을 학문적으로 조명했다.
그는 부임 후 부산지역대학장과 학생처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하며 학과 발전과 학생 복지 향상에도 앞장섰다. 특히 학생들의 자발적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는데, 2001년 창단된 서울지역대학의 ‘방송대합창단’ 지도교수를 2009년부터 맡아 현재까지 학생들과 호흡해온 것은 유명한 일화다.

“여러분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전 교수가 평생 지켜온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간을 향한 ‘긍휼(矜恤)과 사랑’이다. 그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가 강조했던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먼저 인간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부터 가져야 할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교육의 현장으로 가져왔다.
그는 한 실존주의 철학자의 말을 빌려 “인간은 저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문제를 지니고 이 세상을 고통스럽게 경험하며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정의한다. 교육이란 바로 이러한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완전을 향해서, 완성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활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는 출석수업을 위해 오는 외부 강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학생을 잘 가르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학생을 잘 이해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학생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이해한 뒤에야 필요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교육자의 기본자세를 당부한 것이다.
인생 2막을 위해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방송대 학생들은 그에게 늘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전 교수는 부임 초기 학보에 기고했던 공자의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를 다시금 언급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는 학생들의 열정과 행동이 오히려 나태해지려는 자신에게 자극제가 됐고, 결국 학생들이 자신의 스승이 됐다는 고백이다.
그는 제자들이 교육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켜 예전보다 나은 사람이 됐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비록 성인 학습자들의 변화는 눈에 띄게 빠르지 않을지 모르나,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라는 슬로건처럼 한 번 일어난 변화는 인생 전체를 뒤바꿀 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그는 수많은 제자를 통해 확인했다.

합창의 정신으로 조화를 노래하다
전 교수는 엄숙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동백아가씨」를 애창하는 소탈한 품성을 지녔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서 예체능 만능이어야 했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그는 서울대 사범대학 시절부터 ‘COE 합창단(서울사대 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할 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방송대 부임 후에는 2010년부터 동료 교수들과 함께 ‘교수합창단’을 창단해 오랫동안 지휘자로 봉사했다. 그가 독창보다 합창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조화의 철학’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개인적으로 독창보다는 합창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독창이 개인의 역량을 뽐내는 일이라면, 합창은 나만의 소리를 내기보다는 서로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면서 조화를 이루고자 할 때 탄생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저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합창의 정신을 사랑하고 실천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중심에 우리 방송대인들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AI 시대에 교육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한다는 그는 AI가 교육 현장에 유익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훌륭한 ‘도구’임에는 틀림없지만, 결코 교육의 목적 자체가 될 수는 없음을 명확히 했다.
“AI는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나 ‘수단’이라는 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왜 우리는 교육을 하는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학령인구 감소와 원격교육의 확대라는 위기 속에서도 그는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에 달려 있듯, 방송대의 질은 방송대 구성원의 질에 달려 있다”라며, 교수·직원·학생 모두가 역량을 높여 한마음으로 뭉친다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무계획’의 미학으로 여는 새로운 인생
퇴임 후의 계획을 묻자 전 교수는 담담하게 ‘무계획’이라고 대답했다. 스승 김종서 교수가 그랬듯 “무엇을 계획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라는 것이다. 계획이 없다고 해서 삶이 무질서해지는 것은 아니며, 그동안 해오던 일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 속에서 지난 65년처럼 감사한 일들을 발견하고 싶다는 소망이다.
25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방송대 강단에 섰던 전용오 교수. 2월 말로 연구실 문을 나서지만, 그가 강조했던 ‘인간에 대한 긍휼’과 ‘합창의 조화’는 방송대와 제자들의 가슴 속에 깊은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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