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6개월. 이영음 교수가 방송대와 함께 한 시간이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DMC 원장, 중앙도서관장 등의 보직으로 학교를 위해 헌신했고, 연구와 교육뿐 아니라 국가 사회 정보화에 기여한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같은 학과 김옥태 교수는 이영음 교수를 “‘다재다능’한데 ‘다감’까지 한 선배님”으로 기억한다. 미디어영상학과 발전을 위해, 오로지 학생들을 위해 발로 뛰며 학과에서도 수많은 일을 했지만, 인터뷰에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이영음 교수는 “전부 선배 교수님들의 공”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해사하게 웃으며, 이제 떠나고 나면 미디어영상학과 학생들과 만남의 자리를 마지막까지 지킬 교수가 누가 있을지가 걱정이라는, 벌써 여러 차례 송별회가 이어지고 있다는 ‘마당발’ 이영음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30년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아쉬움은 하나도 없어
모든 교수 알고 지내는 방송대 문화는 타 학교가 부러워해
학생회 활동 열심히 한 학생들과 함께한 자리들 기억에 남아
인공지능 시대 대비하는 미디어영상학과로 거듭나야
28년 방송대 생활에 곧 마침표를 찍으시네요. 요즘 기분이 어떠세요?
너무 홀가분해요. 예전에 김영임 명예교수님은 퇴임하는 순간부터 학교 쪽은 돌아보지 않으셨어요. 수업도 안 하셨고요. 그래도 외부에서는 오히려 저랑 자주 만났죠. 최근에도 뵀고요. 저도 따라가려고요. 출석 수업에 부르지 마라, 나가는 순간 끝이다, 알아서 하라고 말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알아서 학과를 이끌어 나가야죠. 저는 할 만큼 했으니까요(웃음).
1997년 8월 방송대에 부임한 첫날 기억 나세요?
임명장 받고 인사 다녔던 기억밖에 없어요. 그게 방송대의 전통이니까요. 그때는 모든 연구실에 다 인사를 드려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방송대 교수진의 문화 같아요. 다른 학교에는 학과 교수진들만 알고 지내잖아요. 방송대는 모든 학과 교수님들이 서로 다 알고 지내는 문화다 보니까, 저녁 먹으러 나가다 다른 학과 교수님들과 함께 자리를 했던 게 비일비재해요. 그런 문화를 선배 교수들이 만들어준 거 같고, 우리 세대도 잘 적응한 거 같아요. 기수, 동기 문화도 생겼고요. 지금은 활발한 거 같아요. 다른 학교에서 정말 부러워할 정도죠.
1997년의 미디어영상학과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거 같습니다.
방송정보학과였죠. 김영임 교수님 혼자서 많은 일을 하고 계셨고, 저랑 강승구 교수가 합류해 3명이 학과를 운영한 겁니다. 보통 1년에 4과목을 강의하는데, 당시에는 7과목까지 맡은 적도 있을 정도였어요. 전국으로 출석 수업도 다녔고요. 제가 오면서는 교수-학생 간 만남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지역대학에 출석 수업을 가면 하루 4시간씩 1박 2일로 가야 했어요. 강의 마치고 저녁 먹고, 다음날 또 강의하면서 지역 학생들과 정말 교류를 많이 했죠. 이후에 장일 교수가 오면서 그런 교류가 더 활성화됐습니다. 새벽까지요(웃음).
기억나는 학생이 수도 없이 많겠지만, 지금 딱 떠오르는 이름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학생회장 하면서 학과 발전에 기여한 학생들이 제일 기억나죠. 울산지역에 이흥우 학생회장은, 지역 학생들을 거의 합숙까지 시키면서 밥 챙겨 먹이고 공부를 시켰어요. 그 학생이 회장을 할 때 울산학생회가 정말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현대 계열사에서 일하다 방송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했고, 지금은 사진 찍으면서 강의도 한대요. 정말 열심히 살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발맞춰 「뉴미디어론」,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사이버 사회」 등 최첨단 미디어 관련 강의를 하셨죠.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건 무엇이었나요?
지금이야 온라인 시대지만, 예전에는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잖아요. 홈페이지 수시로 들어와서 정보를 얻어가라, 학생회나 스터디, 동아리 활동 열심히 하라고 독려했죠. 미디어영상학과는 특강이 많았는데요, 특강에도 열심히 참석하면 등록금 낸 것보다 더 많이 얻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해줬죠. 그렇게 열심히 해서 많이 얻어간 학생들이 참 많아요.
기억에 남는 학과 행사들이 있다면요.
작년에 29회를 맞은 총장배 영상예술제가 있죠. 졸업 논문을 제출해야 하던 초기에는 영상예술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수상자의 경우 논문 제출을 면해주도록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졸업 논문이 없어지면서 영상예술제 참여가 저조해질지 걱정했는데, 영상에 관심 있는 학생, 스터디, 동아리가 많아져서 좋아요. 봄에는 학술대회를 하는데요. 예전 몇 년은 ‘무박 3일’로 하기도 했습니다.
무박 3일이요?
이용도 제12대 연합회장(서울)이 기획했었는데요, 학술대회에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이면, 팀을 짜고 밤새워서 촬영하고, 밤새워서 편집하고 마지막 날 평가하고 상을 줬어요. 이 회장은 현재 동문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2000년대쯤이었는데, 그때 참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많았죠(웃음). 당시 학생들은 오프라인 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동아리, 스터디도 많이 활성화됐거든요. 지역대학별로 회장이 열심히 하면 학생들도 불어났어요. 울산지역이 아주 많았고, 부산, 경기지역도 40~50명씩 모였던 때입니다. 당시에는 학생회에서 OT를 하면 900명 정도가 오고, MT에도 200~300명이 모였어요. 요즘은 온라인으로 정보를 얻기 쉬우니까, 아무래도 오프라인 모임이 줄어드는 거 같아요. 시대는 변하니까요.
그래도 미디어영상학과는 학생 수가 느는 추세 아닌가요?
줄어들진 않죠(웃음). 그렇다고 확확 늘어나진 않아요.

중앙도서관장, 역사기록관장 등 여러 보직도 거치셨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DMC 원장으로 재직하시면서 시스템 변화를 주도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DMC 직원들과 소통하며 화합을 이뤄낸 ‘폭탄주 100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집니다(웃음).
그때 좀 열심히 했어요(웃음). 김영임 교수님 때부터 확보한 수백 억 예산을 들여서 SD에서 HD로 전환하는 과정이었죠. 그런데 DMC 원장으로 부임해 가니, 직원들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는 거예요. 학교 구성원 중 일부는 DMC 직원들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인식을 갖지 않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가서 보니 정말 열심히 하는 직원이 진짜 많았어요. DMC의 미래 방향에 대해 열정적으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뭔가 모를 분위기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직원들의 고충을 알기 위해서 모든 팀과 돌아가면서 미팅했어요. 편하게 저녁 자리를 만들어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봤더니, 속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폭탄주 이야기는 그때 나온 건데요. 감기 걸려도 약 안 먹고 회복하는 제가 그때 처음 입원이란 걸 해봤답니다(웃음). 대화 후에 DMC 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TV PD, 멀티미디어 PD, 라디오 PD, 촬영감독, 기술직 등 직제 구분이 명확했습니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을 방불케 하던 TV도 강의 제작이 줄어들면서 직종의 경계가 흐려졌어요. 젊은 직원 위주로 신청을 받아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를테면 촬영감독 중에 구성 능력이 뛰어난 직원은 PD로 변경하거나, 멀티미디어 PD가 TV PD로 전환하는 방식이었죠. 이 변환이 1인 제작체제로 전환하는 시초가 됐다고 생각해요.
2022년에는 교수친목회장을 맡으셔서 역대급 송년회를 치르셨다고요.
고성환 총장님 취임하던 해였어요. 당시 학내 분위기가 좀 냉랭했잖아요. 코로나19도 딱 지난 시기라서, 학교 분위기를 좀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였어요. 교수친목회장을 맡으면 신임 교수와 만남도 하는데, 코로나19로 못했던 2년 동안 임용된 교수님들에 그해 임용된 분들까지 모두 만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봄에는 교수님들과 남산을 오르며 조금씩 스킨십을 늘려갔고요. 사실 교수친목회의 가장 큰 임무는 연말 송년회를 재밌게 진행하는 거예요. 집행부가 예전 교련복, 치마 교복을 입고 재밌는 퀴즈를 냈어요. 교수님들 어릴 때 사진 띄워놓고 누군지 맞춘다거나, 신임 교수님들 관련 퀴즈를 내기도 했죠. 제가 2010년부터 합창반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전용오 교수님이 지휘자시고요. 송년회 때 두세 곡은 꼭 합니다. 아참, 엊그제 전 교수님 지휘하는 모습을 합창반에서 피규어로 만들어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예전에는 공연도 했는데요. 박동우 영어영문학과 교수님이 완전 피아니스트인 거 아세요? 최세민 프라임칼리지 교수님은 풋살, 축구는 물론 노래도 잘해요. 방송대 분위기가 좀 그래요. 서로 잘 아는데, 비난하는 가십이 아니라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 호의적인 가십이랄까요? 여하튼 송년회에는 역대급으로 100명이 넘게 모여서 즐겁게 보냈답니다(웃음). 교수회가 좋아지도록, 정말 그런 노력은 많이 했다고 자부해요.
대외 활동도 많이 하셨어요.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장(2011~2012)을 역임하셨고, 2014년에는 대한민국인터넷 대상 공로상을 받으셨습니다.
아유, 학회장이야 차례 되면 하는 거죠. 외부 활동 중에서 .kr 도메인 관련 활동이 좀 중요한 일이었는데요. 우리가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kr 도메인은 사실 국가 소유가 아니예요.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처음 만들었고, 아이칸(ICANN)이라는 민간 기업이 .jp, .us 등 나라별 도메인을 관리해요. 당시 스탠포드대학에 있던 외국인 연구자에게 각 나라별 도메인 관리 권한을 준 건데요. 한국 대표자는 전길남 카이스트 교수였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망을 깔고 시스템을 개발한 대부시죠. 아이칸의 국가 도메인 모임인 ccNSO(contry-code ames Supporting Organization)에서는 다섯 대륙을 대표해서 각 세 명의 이사를 선임하고 있는데요. 저는 2002년부터 전길남 교수님 대리인 자격으로 우리나라 국가 도메인인 .kr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고,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대표하는 3명 위원 중 한 명으로 위촉돼서 2004년부터 2020년까지 활동했어요. 1년에 3회 오대륙을 돌아가며 회의에 참석한 공로로 상을 준 거 같아요.
방송대와 함께 한 30여 년 동안 아쉬웠던 점이 분명히 있을 거 같아요.
음(고민). 크게 아쉬웠던 건 없는 거 같아요. 교수님들과 분위기도 너무 좋고, 최근에 이런 저런 모임들도 생기고 있고요. 방송대 교수님들과 은퇴 축하 모임을 벌써 대여섯 번 한 거 같네요(웃음).
그러면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요?
미디어영상학과의 초석을 닦으신 김영임 명예교수님께 제일 감사하죠. 처음 학과를 만들 때 여러 과목을 담당했잖아요. 예전에는 과목 관리비가 있었는데, 그걸 하나도 안 쓰고 교수님이 다 모으셨어요. 학과 살림할 때 써야 한다면서요. 어떤 면에서 교수님이 굉장히 강한데, 학과 일에서만큼은 정말 합리적이셨어요. 당신에게 이득이 되는 건 절대 하지 않으셨고, 우리 학과는 이렇게 가야 한다는 그런 중심을 잡아주셨죠. 그런 면에서 5대 총장이셨던 장시원 교수님께도 정말 감사해요. 학교 시스템을 너무 잘 만드셨어요. 정말 멋진 건물들도 생겼고요. 개인적으로는 그때 방송대가 가장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돼서, 누구 하나 욕심을 냈더라면 어디선가 돈이 샜을 텐데요. 그런 일 하나 없이 탄탄하게 시스템을 갖춘 상태에서 학교를 운영하신 거 같아요.
자꾸 선배 교수님들에게만 공을 돌리시는데,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웃음)?
하나 있어요(웃음). 지역대학 강의 가서 스터디 또는 학생회를 만나면 학교에서 지원금이 나왔는데요. 서울에는 강남, 은평, 종로, 서대문 등등 스터디가 정말 많았는데, 지원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지역 스터디 지원 시스템을 만들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죠. 스터디 지도교수도 지정하고, 우수 스터디에 상도 줬고요. 학생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한 스터디 회장이 주례를 부탁해서 계속 못 한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여서 전무후무하게 한 번 주례를 서기도 했습니다(웃음). 같이 퇴임하는 강승구 교수가 주례 전문인데 말이죠.
교수로서 이것만은 꼭 지키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요.
다른 것보다는 우리 학생들을 보면,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참 열심히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눈에도 존경스러울 정도로 사는 학생들이 꽤 많았어요. 저는 그렇게 열심히 하려는 학생들의 사기는 좀 붇돋워 주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던 것 같네요.
퇴임 후 어떤 계획을 하고 있으신가요?
놀러 다닐 거예요(웃음)! 저 요즘 스쿠버다이빙해요. 2022년에 선거가 있었잖아요. TV를 봐도 정치 이야기만 나와서 당시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BBC 어스 같은 채널만 봤는데요. 매일 물 사진만 보고 있으니, 딸이 “엄마, 스쿠버다이빙 해 볼래?”라고 권하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발리행 비행기를 탔죠.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퇴임하면 열심히 다닐 거예요.
저녁 모임도 많은데,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관리 안 해요(웃음). 타고난 체력이라 그런가봐요. 젊은 사람들도 3번 들어가면 춥다고 하는데, 저는 그러고 야간 다이빙도 혼자 더 하고 온다니까요(웃음).
미디어 환경 변화 속도가 정말 빠릅니다. 미디어영상학과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매스 미디어 시대에서 온라인 미디어 시대로 또 이제는 인공지능 시대로 완전히 바뀌고 있죠. 이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그런 정도로 시대가 바뀌는 겁니다.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고요. 제가 처음 방송대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그 변화가 막 시작하던 시점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다 바뀌었죠. 물론 TV가 강력하고 신문도 유통되고 있긴 하지만, 영향력이 적어졌죠. 새로운 시대에 대비하는 학문이 돼야 합니다. 후배 교수들이 잘 해낼 거라 믿어요(웃음)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학생들에게도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에는 문화가 달라져서 학생들도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방송대에 오는 학생들은 정말 나름대로 굳은 결심을 하고 온 거잖아요. 그 꿈을 꼭 이룰 수 있도록 끝까지 그 결심을 실현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요즘은 학생들이랑 끝까지 있는 사람은 나랑 장일 교수 정도예요. 다른 교수님들은 2차에 다 도망가시는데, 저 없으면 학생들은 누구랑 같이 있으려나요(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