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에세이로 읽는 과학 대 과학

고백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과학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 필자는 뉴턴 역학의 세계에 갇혀 있다. 근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뉴턴 역학은 행성의 운동, 낙하 운동, 진자, 기계 장치 등 대부분의 일상적·고전적 현상을 매우 정확하게 설명한다. 다만, 빛의 속도에 가까운 운동이나 원자·입자 수준의 세계에서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 영역에서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필요하다.
특히 뉴턴 역학은 질량을 가진 물리적 실체를 가정한다. 이 물체는 실체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배경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이 흐른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해 당신과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느낄 수 있다는 가정하에 소통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시공간’으로 간주했다. 시공간은 질량과 에너지에 의해 휘어질 수 있는 구조다. 중력은 더 이상 뉴턴적 의미의 힘이 아니다. 질량과 에너지·운동량·압력 등이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를 결정하고, 물체는 외력이 없는 한 그 구조가 정한 경로를 따라 운동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또한 시간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와 중력의 세기에 따라 느려지거나 빨라질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 된다. 바로 그 유명한 ‘일반상대성이론’이다.
일반상대성이론 혹은 중력이론은 오늘날 블랙홀, 중력파, GPS 시간 보정 등으로 반복 검증되며 20세기 물리학의 핵심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참고로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타지 않았다. 광전효과로 수상했다. 광전효과는 빛이 물질에 닿을 때 일정한 진동수 이상이면 전자가 튀어나온다는 현상이다. 이로써 빛이 에너지를 연속이 아니라 양자 단위로 전달함을 보여준다.
영화 「인터스텔라」(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2014)를 떠올려 보자.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은 지구의 7년에 해당한다. 영화 속 밀러 행성은 거대한 블랙홀 ‘가르강튀아’ 근처에 있어 시공간이 극도로 휘어져 있다. 한마디로 엄청난 중력 때문에 시간이 느려진 셈이다. 필자는 이런 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여전히 뉴턴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서두에서 고백했던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절대적 시공간이 지배한다. 그래야 제때 출근하고 제때 원고 마감도 한다.

“세계는 고정된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사건과 사건이 얽혀 형성되는 다층적 그물망이다.
이때 시간은 우주를 지배하는 외부 원리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인식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흔적이며,
물리학은 그 흔적을 통해 인간과 우주가 만나는 지점을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일반상대성이론을 양자화 하는 시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양자화 하려는 시도가 ‘(루프)양자중력이론(Loop Quantum Gravity, LQG)’’이다. 즉, 시공간이 끊임없이 이어진 바탕이 아니라 아주 작은 ‘고리(루프)’들이 엮여 만들어진 양자적 구조라고 보는 이론이다. 양자이론의 핵심은 어떤 작가가 설명했듯이, 단 두 단어로 압축해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중첩과 확률. 물론 이 설명이 전부는 아니다. 여기에 관찰자의 개입 여부까지 더하면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양자이론에서는 입자가 관측되기 전까지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 상태에 있으며, 결과는 정확한 값이 아니라 확률로만 예측된다. 그리고 측정이라는 관찰자의 개입이 이루어지는 순간, 중첩된 상태는 하나의 결과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전자는 측정되기 전까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중첩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위치를 관측하는 순간,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의 위치로 확정되며 그 결과는 오직 확률적으로만 예측된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은 시공간이 연속적인 배경이 아니라 미시적 규모에서 양자화된 구조를 지닌다고 본다. 이 이론은 중력을 입자가 아닌 시공간 자체의 양자화로 설명함으로써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예를 들어, 관찰은 의식의 개입이라기보다 물리적 상호작용 사건에 가깝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을 주창하는 이는 요즘 잘 나가는 카를로 로벨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이론 물리학센터 교수이다. 이론물리학계 더 나아가 과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학자다.
로벨리 교수의 책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의 직관 너머 물리학의 눈으로 본 우주의 시간』(쌤앤파커스, 2019)을 옮긴 이중원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과학철학)는 “세계는 고정된 속성을 지닌 자립적인 실체(가령 물질 입자, 공간, 시간 등)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상호 간의 작용과 상관관계에 바탕 한 관계의 네트워크로 이뤄져 있다”라며 “로벨리의 관계적 해석은 기존의 해석들과 달리, 관계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의 실재를 새롭게 해석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중원 명예교수는 양자 세계를 설명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고 말한다. 어떤 학자들은 슈뢰딩거나 데이비드 봄처럼, 양자 현상을 고전적인 성격을 지닌 물질 파동으로 이해하려 했다. 또 어떤 해석들은 숨은 변수나 다세계 같은 개념을 도입해 양자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 반면 코펜하겐 해석(20세기 초 양자역학이 만들어질 때, 덴마크의 코펜하겐에는 닐스 보어가 이끄는 연구소가 있었다)은 우리가 실제로 관측할 수 있는 것만 설명 대상으로 삼는다. 이 관점에서 양자 현상은 확률로만 예측될 수 있으며, 양자 세계는 매우 작은 입자들의 영역으로 한정된다. 다만 이 해석은 관측 결과를 설명하는 데에는 집중하지만, 세계가 실제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독립된 실체 없고 상호작용만 존재
하지만 로벨리 교수는 다르다. 사물의 속성은 사물 내부에 미리 주어져 있기보다,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로벨리의 관계적 해석에 따르면, 세계와 인간의 인식 모두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관계와 상호작용의 산물로 이해된다. 로벨리 교수는 이런 설명과 주장 속에서 불교와 도가를 직접 공부하고 체험하며 연결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 쉬운 것을 살펴보자. 뉴턴에게 시간은 관찰자와 무관하게 동일하게 흐르는 하나의 공통된 배경이었다. 이 시간은 관찰자나 물체의 운동 상태와 무관하게 우주 전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며, 모든 사건은 이 공통된 시간 위에 질서 있게 배열된다. 현재는 어디서나 같은 의미를 지니고, 물체 역시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도 동일한 질량을 가진 실체로 이해된다. 뉴턴 역학은 이러한 절대적 시간 개념을 바탕으로 자연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체계로 설명한다.
로벨리 교수는 이 전제를 근본에서 뒤집는다. 그에게 현재는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기준선이 아니라 국소적 조건 속에서만 성립하는 제한된 상태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우주 전체에 공통된 시간이 아니라 관찰자와 사건 사이의 물리적·인지적 관계에서 생겨난다. 다시 말해 현재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점이 아니라 누군가가 무언가를 인식할 때 형성되는 국지적 경계다. 시간의 흐름 역시 자연의 근본 법칙에 새겨진 질서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에서 생겨난 효과에 가깝다. 과거와 미래의 구분은 물리 법칙 자체에 내재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세계와 맺는 비대칭적 관계에서 형성된 결과다.
잘 생각해 보자. 한 개인의 삶이 끝날 때, 그 개인에게 시간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주에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뉴턴식의 시간이라는 게 있는 것일까? 그래서 로벨리 교수는 “공통적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뉴턴 역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다. 
이러한 전환은 시간뿐 아니라 존재에 대한 관점까지 바꾼다. 뉴턴이 시공간을 사물들이 놓이는 무대처럼 상정했다면, 로벨리는 시공간을 다른 장들과 얽힌 하나의 물리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세계는 고정된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사건과 사건이 얽혀 형성되는 다층적 그물망이다. 이때 시간은 우주를 지배하는 외부 원리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인식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흔적이며, 물리학은 그 흔적을 통해 인간과 우주가 만나는 지점을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특히 로벨리 교수는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쌤앤파커스, 2018)에서 비유적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양자장이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정보를 주고받으며 공간·시간·물질·빛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는 실재를 알갱이 같은 사건들의 연결망으로 보며, 그 사이에는 공간과 에너지 등이 확률적 구름처럼 스며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상상은 어떻게 표준과학이 되는가
그러나 (루프)양자중력이론은 아직 이론적 추측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도 한때 가정에 불과한 것이었다. 중력이 시공간의 곡률이라는 주장은 처음에는 순수 이론에 가까웠다. 그러나 1919년 개기일식 관측에서 중력에 의한 빛의 휨이 확인되면서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에 대한 표준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은 명확한 실험적 증거가 필요하다. 아직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상상은 우주를 새롭게 보도록 한다.
로벨리 교수는 세계를 고정된 실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성립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뉴턴 역학 세계에 살고 있다고 직관적으로 느낀다. 분명 시간은 직선적 흐름을 갖는 듯하다. 실체는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것처럼 간주된다. 뉴턴식으로 말이다.
뉴턴 역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트루먼 쇼」(감독 피터 위어, 1988)다. 주인공 트루먼(짐 캐리 배우)에게 세계는 하나의 고정된 것(24시간 방송)으로서 단일한 시간선과 완결된 인과 구조에 갇혀 있다. 세계는 이미 설계된 무대이고, 주인공은 그 안에서 움직인다. 절대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뉴턴적 우주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루프)양자중력이론은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감독 다니엘 콴·다니엘 샤이너트, 2022)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는 미국 이민자의 어려움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영화에서 어떤 것의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적·상황적 존재라는 점이다.
그 누가 모르겠는가. 주인공 ‘나’는 하나가 아니라 다른 세계·다른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는 (루프)양자중력이론이 물리적 실체보다 관측·상호작용·관계를 우선시하는 태도와 잘 맞닿아 있다. 존재란 스스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의 얽힘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관점은 자연에 대한 이해를 넘어 존재와 윤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세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사건의 그물망으로 이해할 때, 이러한 시간 이해는 물리학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와 책임은 어디에 근거를 둬야 하는가? 또한 실체 없는 세계에서 의식과 기억, 인과와 연속성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다만, 중요하고 분명한 건 (루프)양자중력이론이 뉴턴 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제기됐다는 점이다. 뉴턴 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도 마찬가지였다. 그전 여러 이론들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론이 실험적 결과에 따라 실체하는지 관계적으로만 존재하는지 여전히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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