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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나물 리뷰]는 ‘영화가 나에게 물었다’의 앞 글자를 딴 연재로 최근 개봉한 영화를 리뷰하는 기사다. 한 편의 영화에는 하나의 세상이 담겨 있다.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나물 리뷰]는 영화가 던지는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정답은 없다. 백 명의 관객에게서 백 개의 영화평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기에.세상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며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띄우는 씨네마 레터.

 

사실 이렇게나 일에 ‘진심’인 공무원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공무원이라고 하면 ‘탁상공론’, ‘무사안일’, ‘복지부동’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르는 게 먼저니까요.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 설정이 좀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열일’하시는 전국 117만 공무원 여러분께 미리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런데 이 영화, 시작하자마자 제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트립니다. 3월 4일 개봉한「매드 댄스 오피스」(감독 조현진) 이야기입니다.

 

25년 차 ‘갓생’ 공무원, 인생 최대 위기에 봉착하다!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삶을 유지해 온 한별구청 기획과장 ‘최국희’(염혜란)의 일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갓생’(God+生,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냉철한 판단으로 조직을 장악해 승진을 코앞에 두고 있는 데다, 임용고시 합격을 앞둔 딸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자신이 설계한 인생 로드맵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살아가던 국희에게 ‘험한’(!) 일들이 터집니다. 25년 동안 오로지 자신의 기준이 맞다며, 목표 달성을 위한 야근은 당연한 거라고 강요해 왔던 후배 직원들은 그녀를 피하기 시작하고, 라이벌 총무과장(박호산)의 계략으로 추진했던 수변공원 문화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며 결국 승진은 물 건너가게 되죠. 딸의 진짜 꿈은 모른 채 “합격은 떼놓은 당상이요, 수석 기대한다”라는 말을 아주 쉽게 건넸는데, 합격자 발표날 딸은 “엄마와는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어. 날 찾지 마”라는 쪽지를 남긴 채 (그녀의 눈에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래퍼 남친과 잠적합니다.

 

구청 사업도 정상화해야 하는데 직원들은 눈치만 보고, 악성 민원인(백현진)은 예술인들을 선동해 구청 게시판을 규탄 글로 도배합니다. 국희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유튜브 라이브로 실황을 알리기도 하고요, 상처 입은 지역 예술인들의 마음을 되돌리고자 사고만 치는 부서 막내이자 Z세대 공무원 ‘연경’(최성은)과 함께 악성 민원인도 찾아갑니다. 거기서 두둥! ‘집시여인’(우미화)을 만나 운명적으로 플라멩코 학원에 등록합니다.

중년 여성의 자아 찾기부터 한국 사회 적나라한 현실 문제까지
처음엔 독불장군 열혈 공무원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영화는 일에만 몰두해 온 한 중년 여성의 자아 찾기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염혜란 배우가 “발목을 잃고 춤을 얻었다!”라고 말하는 바로 그 춤, 플라멩코를 통해서요.

 

이번 영화로 입봉한 조현진 감독은 늘 춤과 음악이 지닌 생명력을 동경해 왔다고 해요. 하지만 춤을 배우면서 마주한 건 화려한 동작이 아닌, 거울 속에서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는 자기 모습이었다죠. 조 감독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이 악물고 노심초사하며 살아가던 우리가, 국희처럼 자유로운 스텝을 내디디며, 어깨의 힘을 빼고 마음을 내려놓는 마법 같은 시간을 경험하길 소망한다”라는 마음으로 플라멩코가 주는 해방감, 자유로움을 영화의 주제로 선택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중년 여성이 플라멩코를 추면서 잃었던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끝날 줄 같았는데, 영화는 또 한 번 제 선입견을 깨트립니다. Z세대 연경을 통해서요. 연경은 국희처럼 완벽한 공무원을 꿈꾸지만, 현실의 벽과 타인의 시선 앞에 늘 멈춰 서거든요. 그렇게 영화는 성공을 향해 달려온 기성세대와 생존을 고민하는 Z세대의 갈등 속에서 진정한 소통은 어떻게 가능한지 질문합니다.

 

 

또 있어요. 공무원 사회에서도 절대 없을 수 없는 경쟁이죠. 라이벌 과장의 사업 가로채기 시도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서 간 칸막이 문제, 직장 내 갑질,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남녀 차별과 유리 천장까지, 영화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쉬쉬했던 모습들을 보여주며, 성장을 최고 가치로 두고 발전해 온 우리나라가 지금 바꿔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묻습니다.

 

여기에 세대가 바뀌면서 달라진 가치관 속에서 가족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도 던지죠. 사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던 국희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결혼 1년 만에 사별했거든요. 품 안의 핏덩이 하나만 바라보고 죽기 살기로 여기까지 달려올 수밖에 없었겠죠. 그렇게 국희는 삶에서의 첫 균열에 마주하게 된 겁니다.

「왕과 사는 남자」 흥행 바통 이어받을까?

국희는 플라멩코를 추며 생애 처음으로 자유를 느낍니다. 항상 주눅이 들어있던 연경도 당찬 모습으로 바뀌죠. 이렇게 영화가 끝나면 좋으련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라이벌 총무과장의 음해가 더 심해졌거든요. 그렇습니다. 내가 변한다고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슬픈 진실이죠. 국희와 연경은 어떻게 될까요? 누명을 벗고 수변공원 프로젝트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플라멩코 무대에 설 수 있을까요? 집 나간 딸과 화해할 수 있을까요? 결말은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아, 남의 시선을 의식해 우울증약을 달고 살던 Z세대 김연경 주무관을 연기한 최성은 배우는 앞으로의 활약이 매우 기대되더군요. 백지 같은 마스크로 그간 맡았던 캐릭터를 모두 흡수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대선배 염혜란 배우에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2026년 한국 영화계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2월 설 연휴에 개봉한「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는 1천 205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중 스물다섯 번째 천만 영화에 등극했습니다(3월 12일 기준, <KNOU위클리> 279호 기사「“우리가 잊었던 가치 말하고 싶었어요”」참조). 류승완 감독의「휴민트」도 200만 고지가 목전이고요. 3월에는「매드 댄스 오피스」가 흥행 바통을 이어 받아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힘들고 고된 세상에 열심히 살아온 나를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것만 같은 오늘,「매드 댄스 오피스」의 대사로 [영나물 리뷰]의 끝을 맺으려 합니다. “힘들죠? 길이 없는 거 같죠? 구두가 길을 알려줄 거예요!”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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