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에세이로 읽는 과학 대 과학

진화가 시작되면 최초의
목적은 흐려진다.
설계자는 초기 조건을
제공할 뿐, 이후의 변화는
생명 자체의 동력에 맡겨진다.
결국 인공생명도 시간이 지나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으로 변한다.


생명(生命)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풀이해보면 ‘태어나 살아가도록 부여된 목숨’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한다는 의미다. 영단어인 ‘life’의 어원을 살펴보면, ‘남아있다’ 혹은 ‘지속한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는 생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생명이라는 것 자체가 비밀스럽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은 존재(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표현은 분자생물학자인 정우현 덕성여대 교수의『생명을 묻다』(이른비, 2022)에 나온다. 책의 제목은 생명에 대한 해답보다 의문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간의 몸은 약 30조~40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 세균 수도 비슷하며, 인체 내엔 수천 종의 미생물이 공존한다. 각 세포의 핵에는 길이 약 2미터에 달하는 DNA가 정교하게 접힌 채 들어가 있다. 한편 개는 19,000~20,000개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 20,000~21,000개의 유전자를 가진 인간과 큰 차이가 없다. DNA는 전체 정보를 저장하는 매체이고, 유전자는 그중 특정 기능을 설명하는 하나의 지침서다.


생명 현상과 관련해 합성생물학 분야가 주목받고 있는데, 인류가 만든 최초의 합성 게놈 기반 생명이 여기서 탄생했다. 2010년 미국의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JCVI)에선 합성 게놈으로 작동하는 세포인 ‘마이코플라스마 마이코이데스(Mycoplasma mycoides) JCVI-syn1.0’를 만들었다. 마이코플라스마 마이코이데스는 원래 존재하는 세균 종의 이름이다. 즉, 기존 세균의 전체 게놈을 인공 합성해 최초의 자가 증식 세균을 만들어낸 것이다.


연구팀은 컴퓨터를 이용해 설계한 약 1,080,000개 염기쌍의 DNA를 화학적으로 합성한 뒤 다른 세균의 세포 속에 이식했고, 그 세포는 인공 DNA의 명령을 읽어들여 새로운 종으로 탈바꿈했다. 참고로 한 생명체가 가진 모든 DNA 전체가 게놈이다. 비유하자면, 염기쌍은 글자, 유전자는 문단, DNA는 긴 문서, 게놈은 책 전체다.


최초의 최소 세균 세포
2016년에는 ‘JCVI-syn3.0’이 태어났다. JCVI-syn1.0의 유전자를 활용해 설계-구축-테스트를 거쳤다. 이 새로운 최소 합성 세포는 531,000개의 염기쌍과 단 473개의 유전자만을 포함하고 있다. 자가 복제 유기체 중 가장 작은 게놈을 가진 것으로 기록됐고, ‘합성 게놈으로 작동하는 최초의 최소 세균 세포’로 불리기도 한다.


JCVI-syn3.0은 JCVI-syn3A, JCVI-syn3B 등으로 진화 중이고, 그 방향은 성장 능력의 향상이다. 지난해 6월에 열린 제4회 최소 세포 워크숍에서는 JCVI-syn3B의 공학적 설계, 영상화와 시뮬레이션에 초점을 맞춘 26편의 발표가 진행됐다. JCVI-syn3.0은 이제 단순히 살아있는 것을 넘어 암 치료제나 항생제 연구를 위한 범용 플랫폼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연이 수천 개의 유전자를 채워 넣을 때, 과학자들은 단 473개의 유전자만으로 작동하는 생명을 구현해낸 셈이다.

 
배아, 수정 직후부터 조직화의 윤곽 그려
과학이 이토록 정교하게 생명을 설계하려 노력하고 있다면, 설계자 없이 시작된 자연생명은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조직해 나갈까? 그 경이로운 과정의 출발점인 인간의 배아를 살펴보자. 생명의 시작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을 형성하는 찰나의 순간에서 비롯된다.『인체에 관한 모든 과학』(에코리브르, 2023)을 쓴 면역학자 대니얼 M. 데이비스에 따르면, 과거에는 초기 배아 세포들이 구별 불가능한 동일한 세포 덩어리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수정 직후부터 정교한 조직화가 시작됨을 밝혀냈다. 특히 4세포기 배아 단계에서 세포의 운명에 대한 초기 편향이 나타난다. 어떤 세포는 태아의 몸을 구성하고, 또 다른 세포는 어머니로부터 영양을 공급받는 태반이나 초기 영양 공급원인 난황낭이 되는 등 생명의 설계도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점차 형성되기 시작한다.


배아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결함을 치유하는 놀라운 유연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임신 초기 단계에서 일부 세포에 유전적 이상이 생기더라도, 배아 내부의 건강한 세포들이 비정상적인 세포의 잔재를 삼켜 제거하거나 손상된 부분을 보상하며 발달을 이어간다. 이러한 ‘자기 수정’ 능력 덕분에 배아의 일부에서 이상 세포가 제거되거나 보상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는 생명이 단순히 고정된 설계도에 따라 기계적으로 조립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최적의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한다.


살아 움직이는 구조체, 기능을 갖추다
인공생명 연구는 더 이상 시험관 속 분자 조작에 머물지 않으며, 살아있는 세포를 조합해 새로운 기능을 갖는 존재를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제노봇(Xenobot)’과 ‘앤스로봇(Anthrobot)’은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기계가 아니라, 살아있는 세포로 구성된 움직이는 구조체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와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에서 생명과 기계의 경계를 흔드는 ‘제3의 생명’으로 불린다.


2020년 제노봇을 발표한 미국 버몬트대학교와 터프츠대학교 연구진은 아프리카발톱개구리(Xenopus laevis) 배아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밀리미터 이하 크기의 살아있는 구조체를 만들었다. 피부세포는 형태를 만들었고, 심장세포의 수축은 추진력을 제공했다. 이 작은 존재는 스스로 움직이고, 상처를 복구하며, 장애물을 피해 이동했다. 2021년 연구에서는 주변의 느슨한 세포를 모아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세포 분열이 아닌 ‘운동학적 자기복제(kinematic self-replication)’ 현상까지 확인됐다. 이는 기존 생물의 세포분열과 다른 방식의 번식으로 생명의 정의 자체를 흔드는 결과였다.


이후 개구리 세포 대신 인간 세포로도 같은 접근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이 제기됐다. 2023년 터프츠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성인의 기관(氣管) 상피세포를 배양해 ‘앤스로봇’을 만들었다. 유전자 변형 없이 세포들이 스스로 구형 구조를 이뤘고, 실험실 배양 접시에서 수주 동안 살아 움직이며, 외부 자극 없이 자율적으로 집단 행동을 보였다.


특히 주목받은 것은 손상된 신경세포 위에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앤스로봇을 신경세포층 위에 두자, 개체들이 모여 손상 부위를 가로지르는 구조를 형성했고, 그 위에서 신경 돌기 성장을 촉진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는 치료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세포들의 자발적 행동에서 나타난 결과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성이 조직 재생, 손상 복구, 맞춤형 세포 치료 등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새로운 생명 형태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자연생명의 복잡성을 더욱 부각한다. 단세포 생물조차 분 단위로 DNA 복제를 수행하고, 수천 가지 생화학 반응을 동시에 조절한다. 단백질 접힘, 대사 네트워크, 세포 신호 전달은 인간이 완전히 모사하지 못하는 정밀성을 보여준다. 제노봇과 앤스로봇은 인간이 조립한 생명에 가깝지만, 그 기반이 되는 세포 자체는 38억 년 진화의 산물이다. 인공생명은 자연생명을 대체하기보다 오히려 그 복잡성을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결국 제노봇과 앤스로봇은 ‘생명은 주어지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이들은 동물도 아니고 기계도 아니다. 살아있는 세포로 구성됐지만 자연 종이 아니며, 목적에 맞게 설계됐다는 점에서 인공물에 가깝다. 인공생명과 자연생명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치료용 세포 로봇, 조직 재생 플랫폼, 맞춤형 생체 구조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이 존재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생명은 더 이상 정의되는 대상이 아니라, 설계되는 대상이 된 것인가?

 

구분

자연생명

인공생명

핵심 정의

존재 자체로 유지되는 생명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설계된 도구적 생명

형성 원리

설계자 없는 돌연변이, 선택, 우연의 축적

공학적 설계-구축-테스트(합성생물학)

발생 과정

수정 직후 정교한 자가 조직화 및 분화

컴퓨터 설계 DNA 합성 및 세포 이식/조립

주요 사례

인간 배아(4세포기 조직화, 자기 수정)

JCVI-syn3.0, 제노봇, 앤스로봇

복잡성 수준

38억 년 진화의 산물. 모사 불가능한 정밀성

최소 유전자(473) 등 특정 목적에 최적화

유연성/복원력

무작위성을 통한 강인함과 환경 적응력

특정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음

복제 방식

세포 분열을 통한 전통적 번식

운동학적 자기복제 등 새로운 방식 가능

진화의 방향

목적 없는 생존과 지속

초기 목적 부여 점차 자율적 생존 동력 확보

 

존재 자체인 생명과 도구로서의 생명
자연생명은 목적을 갖고 설계되지 않는다. 돌연변이와 선택, 우연한 변이의 축적 속에서 그저 살아남은 존재가 현재의 생명이 된다. 반면 인공생명은 처음부터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다. 독소를 제거하고, 약물을 운반하고,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는 식으로 특정 목표가 부여된다. 자연생명이 존재 자체로 유지된다면, 인공생명은 기능 수행을 위해 설계된 존재다. 이 차이는 생명의 의미를 바꾼다. 생명이 도구가 되는 순간, 생명은 목적 없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목적을 수행하는 기술이 된다.


그러나 생명은 설계된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살아있는 세포 기반 인공생명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변이와 선택의 과정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미생물 기반 합성생물학 연구에서는 설계된 균주가 배양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적응하거나 기능을 바꾸는 사례가 보고된다. 진화가 시작되면 최초의 목적은 흐려진다. 설계자는 초기 조건을 제공할 뿐, 이후의 변화는 생명 자체의 동력에 맡겨진다. 결국 인공생명도 시간이 지나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으로 변한다.
이 지점에서 자연생명의 강점이 드러난다. 자연생명은 특정 목적에 최적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한 환경 변화에 견디는 복원력을 지닌다. 수억 년 동안 축적된 무작위성과 변이는 예측 불가능한 조건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만들어냈다. 인공생명은 정밀하지만 취약할 수 있고, 자연생명은 비효율적이지만 강인하다. 둘은 서로를 대체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생명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두 방향이다. 목적을 가진 설계와 무작위성이 낳은 진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생명은 기술이면서 동시에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서울시립대에서 수학을, 서울대 대학원에서 철학(윤리학)을 공부했다. 브릭에 ‘생태 에세이’를 기고하고 있고,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등을 썼으며, 『기나긴 수학의 짧은 역사』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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