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일본은 왜 ‘전쟁국가’가 됐는가

5회(전24회)까지 글 싣는 순서
① 왜 일본 근대사는 늘 ‘메이지 성공담’으로 시작되는가
② 메이지 유신은 처음부터 ‘밝은 혁명’이었는가
③‘밝은 메이지, 어두운 쇼와’라는 도식?
④ 메이지의 빛 뒤에는 무엇이 지워졌는가
⑤‘시대가 그랬다’는 말은 무엇을 감추는가

 

 

아마 한 번쯤 ‘대체 역사물’이라는 장르명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2년의 선거에서 실패했더라면?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이 대공황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그래서 전쟁 중 미국이 소극적 대처에만 머물렀더라면…. 이렇게, 과거의 어떤 결정적인 순간으로 돌아가, 그때 그 선택 하나만 바꿔버리니 이후의 역사적 전개가 완전히 달라지더라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영화「버블로 고~」의 시사점
2007년 개봉한「バブルへGo!! タイムマシンはドラム式(버블로 고!! 타임머신은 드럼 방식)」은 바로 이 같은 발상 위에서 출발합니다. 영화는 1990년대 이후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시작된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800조 엔에 이르는 국가 부채. 그 규모만으로도 실감이 나지 않는데, 여기 더해 원금 위로 이자가 실시간으로 누적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전자시계처럼 생긴 카운터의 숫자가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어려울 만큼 어지럽게 올라가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매우 단순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과거로 돌아가, 이 모든 사태의 원점인 ‘버블 붕괴’를 촉발한 그 결정적 정책을 막아버리자는 겁니다.
이에 주인공은 타임머신을 타고 운명의 해인 1990년으로 향합니다. 목표는 분명합니다. 당시 과열되던 부동산 거품을 조정하려 내놓은 ‘부동산 대출 총량규제’가 시행되기 직전으로 돌아가, 그것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막으면 일본 경제는 계속 성장할 수 있어.” 단 한 번의 정책 결정만 바꿔 놓으면 이후의 침체도, 장기 불황도 모두 피할 수 있다는 그런 설정인 셈이죠.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은 규제 시행을 막는 데 성공하고, 자신이 속한 2007년으로 돌아옵니다. 그러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버블 붕괴가 일어나지 않은 일본, 경제는 멈추지 않은 채 계속 팽창하고, 끝 간 데 없이 확장된 ‘초(超)도쿄’의 장관이 펼쳐지면서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물론 영화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겠지요. 실제 역사에서 그 어떤 변화도 단 하나의 결정만으로 설명되진 않습니다. 일본의 버블 붕괴 역시 마찬가지고요. 금융 구조, 자산 가격의 과열, 국제 경제 환경의 변화, 그리고 산업 구조의 전환 등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시 말해, 특정한 한 시점의 선택이 아니라, 다양한 조건과 판단이 얽히며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는, 본래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되기 어려운 지극히 복합적인 과정입니다. 누구나 잘 아는 상식이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 쉽게 끌립니다. 어째서일까요.

단일한 인과관계로 재배열된 역사
아마도 우리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덕분이겠지요. 그러나 단순히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그 결과를 어떻게든 납득 가능한 이야기로 정리하고 싶어 합니다. 그 결과가 어딘지 못마땅하고, 아쉽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고. 그러고는 탓을 돌릴 만한 장면을 하나 지목해, 거기에 과도하리만치 의미를 집중시킵니다. 여기서 역사가 갈라졌노라고. 그러는 사이에 복수의 조건과 선택이 교차하던 역사 속 실제 과정은 단일한 인과관계로 재배열돼 버립니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에 대한 ‘이해’보다 ‘납득’을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바람에 부응하는 설명은 대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형태를 띠곤 하지요.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이 일어났나’를 묻기보다 ‘무엇이 그런 결과를 낳았나’를 묻는 쪽에 더 익숙합니다. 이런 서사 속에서 사태의 ‘원흉’은 딱 하나로 압축됩니다. 이 모든 사태가 거기서 비롯된 것인 양 말이죠.
저는 이런 역사 이해의 방식을 ‘(결과로부터)거꾸로 읽어 올라가는 역사’라 부릅니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로 이어지는 과정 중 특정 장면을 골라내 그 선택을 중심으로 되짚어서 전체를 설명하는 방식이지요.
이때 과거는 더 이상 ‘그때 그 사람들이 맞닥뜨렸던 현재’로서 이해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미 확정된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재구성됩니다. 그 결과 선택은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정답과 오답의 문제로 바뀝니다. 어떤 선택은 ‘마땅히 그랬어야 할 것’이 되고, 어떤 선택은 ‘당연히 피했어야 할 것’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사 속 실제 주체들의 고민과 조건, 그리고 그들이 처했던 불확실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대신 남는 것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가 사후적으로 부여한 의미, 곧 ‘평가’뿐입니다.
생소하게 들리십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 근대사를 설명할 때도 이런 방식은 늘상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조선의 개항을 둘러싼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죠. 우리는 흔히 이렇게 배워 왔습니다. 조선은 쇄국에 머물러 세계 정세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 결과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그로 인한 무지와 지체가 비극적인 식민지화로 이어졌노라고.

성공한 근대 국가, 낯설지 않은 어법
낯설지 않을 겁니다. 비슷한 어법이 줄곧 되풀이돼왔으니까요. “만약 우리 선인들이 3·1정신을 진작부터 발휘해 내외정세에 슬기롭게 대처했던들 우리에게 오욕의 36년 역사는 없었을 거고, 또한  민족적 희생은 없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분단 민족으로서의 오늘의 비극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은 물론, 한마디로 우리 개항 백년사는 180도 다른 궤도에서 한층 영광스럽게 기록됐을 게 분명하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쯤 전에 어느 유명 일간지에 실린 사설에서의 주장입니다.
“세계의 흐름을 외면한 채 문을 걸어 잠근 결과 시대 변화에 뒤처졌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읽지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이처럼 수십 년간 동일한 논법이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해석이 ‘상식’의 자리를 차지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런 식의 설명은 자연스레 또 다른 대비를 만들어냅니다. 조선이 세계를 몰라 실패한 나라라면, 반대로 세계를 읽어 성공한 나라도 있겠지요? 그 자리에 거의 언제나 등장하는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이 또한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일본 역시 한때 쇄국을 했지만, 서양의 움직임을 비교적 일찍 파악하고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네덜란드 경유의 서양학[蘭學]을 통해 최신 지식을 받아들이고 있었던지라, 도쿠가와 정권 말기[幕末]에는 이미 국제 정세의 변화를 읽어내고 있었다는 서사가 뒤따릅니다. 그래서 일본은 개항 후 빠르게 방향을 전환할 수 있었고, 근대 국가의 건설에 성공했다는 것이죠.
이렇듯 동아시아 근대의 출발은 하나의 선명한 대비 속에서 정리됩니다. 세상을 몰라 뒤처진 조선과, 세계의 변화를 읽어낸 일본이란 대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서사가 일본 쪽에서도 되풀이된다는 사실입니다. 메이지 시대는 흔히 “현실을 직시한 지도층이 근대화를 이끈 시기”로 묘사됩니다. 서구의 힘을 인정하고 제도를 정비하며, 부국강병을 통해 국제적 각축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죠.
이 서사 속에서 메이지는 하나의 특별한 시대가 됩니다. 즉, 일본이 근대 세계 속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시기입니다. 반면, 이후 시대는 상반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1930년대 이후 무모한 전쟁으로 치달은 쇼와 일본은, 흔히 저 ‘바른길’에서 벗어난 시기로 자리매김되지요.
그리하여 익숙한 도식이 완성됩니다. 밝은 메이지와 어두운 쇼와. 이 대비는 일본 내부에서도, 그리고 일본을 바라보는 바깥에서도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작가의 서사가 자리하고 있지요. 바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의『坂の上の雲(언덕 위의 구름)』(1968~1972)입니다.
작품에서 메이지 일본은 작지만 영리한 나라로 등장합니다. 국제 정세를 냉정하게 읽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힘을 모아 근대 국가를 만들어갑니다. 이로부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하나의 장대한 성공 서사로 그려집니다.

문제는 바로 ‘메이지 시대’
일본이 가장 합리적이고 건강했던 시대로서의 메이지.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메이지 시대가 이렇게 특별한 성공의 시대로 그려질수록, 그 이전과 이후 시대는 자연스럽게 그와 대비될 수밖에 없을 터입니다. 이 대비하에서 밖으로 조선은 실패한 나라로 남고, 안으로 쇼와 시대는 메이지의 옳게 된 길에서 벗어난 일탈의 시기로 설명됩니다.
이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왜 우리는 동아시아 근대를 ‘조선은 실패했고 일본은 성공했다’고 이해하게 됐을까요?
조선의 개항을 설명할 때는 ‘세계 정세를 몰랐다’는 평가가 붙고, 일본의 메이지를 설명할 때는 ‘세계의 변화를 읽어냈다’는 평가가 따라붙습니다. 그렇게 두 나라의 역사는 하나의 구도로 정리돼버립니다. 실패한 나라와 성공한 나라란 대비로요.
그렇지만 역사를 정말 이렇게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결과를 알고 난 뒤, 그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특정한 선택 하나를 골라내, 그것으로 전체를 설명하는 방식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앞서 버블 붕괴를 단 하나의 정책 탓으로 설명하려는 것처럼, 동아시아 근대 역시 몇 개의 선택으로 단순화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온 이 서사에는 재고해 봐야 할 지점이 적지 않을 겁니다. 조선은 정말 세상을 몰라 실패한 나라였을까요? 일본의 메이지는 정말 그렇게 단순한 성공의 시대였을까요.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흔히 ‘밝은 메이지’라고 알고 있는 그 이야기부터 잠시 멈춰세워 보려 합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일본정치사상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은 책으로는 『동아시아 내셔널리즘의 형성과 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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