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만학도의 AI 활용 도전기

늘 새로운 관점과 기술을 접하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 노력

 

첫 학과인 문화교양학과 수업이 새로운 행복을 찾은 계기

 

창착 의욕은 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이들에게 AI는 하나의 대안



지난달 초, 어느 학우가 인공지능(AI)과 협업해 썼다는 단편소설을 <KNOU위클리>로 보내왔다. 방송대 문학상 응모 기간은 아직 멀었고, AI로 쓴 작품은 응모 대상도 아닌데 왜 보낸 것일까? 의아함은 그 학우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호기심으로 변해갔다. 2011년 문화교양학과 입학 후 다섯 번째 학과인 경제학과 졸업을 눈앞에 둔 김광성 학우. 입학 후 전국을 도보로 일주하고, 재학 기간 중엔 대학 측에 거액을 기부했으며, 방송대 홍보 모델로도 활동한 그의 이야기는 3년 전 중앙일간지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는 왜 학업을 멈추지 않는 걸까? 방송대와 함께한 15년은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줬을까? 4월의 어느 봄날 대학본부 캠퍼스에서 김 학우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방송대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방송대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2011년에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했는데 그게 처음은 아니었어요. 1971년 한양공고 졸업 직후에도 2년제 초급대학이었던 ‘방송통신대’에 지원했지만 경쟁률이 높아 낙방했죠.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1979년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 공채에 합격해 58세로 퇴직한 2010년까지 주로 공장 설비 감정 업무를 했습니다. 먹고살기 바빠 대학은 단지 꿈이었죠. 40년 만에 방송대를 다시 찾은 건, 퇴직이 다가오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어떤 면에선 방송대라는 첫사랑과 재회하신 셈이군요
청년기에 동경했던 대상을 잊고 살다가 수십 년 만에 만났으니 첫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첫사랑은 추억으로 남겨둬야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제 경우엔 달라요. 방송대가 40년 동안 몰라볼 만큼 발전하고 아름다워졌으니까요. 추억 속에 묻어두지 않고 끄집어내길 잘한 거죠.


입학한 해에 전국 도보 대장정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젊은 시절에 포기한 공부를 뒤늦게 시작하려니 너무 두려웠고,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팔도강산을 걷게 됐습니다. 5년 동안 틈 나는 대로 발걸음을 옮겨 총 1,600km를 걸으면서 막연한 두려움도, 입학에 대한 회의도 모두 비워내고 그 자리를 학업에 대한 의지로 채웠죠. 그때의 경험과 감상은 문화교양학과 졸업 논문에도 담겨 있는데, 그 논문으로 상도 받았습니다. 첫사랑과 재회하려니 가슴이 떨리고 용기가 나지 않아 고행하듯 걸었는지도 모르겠군요(웃음).


학과 선택에 있어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요
문화교양학과부터 시작해 국어국문학과, 미디어영상학과, 법학과를 거쳐 지금 4학년에 재학 중인 경제학과까지 ‘내가 지금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가 우선이었습니다. 부차적인 이유로 학과를 선택하면 완주하기 힘든 것 같아요. 결과적으론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화교양학과에선 대학 수업에 필요한 배경 지식이 한층 풍부해졌고, 그다음인 국어국문학과에선 교재와 강의 내용 이해, 과제물 작성과 직결되는 ‘문해력’을 길렀으니까요. '디지털 문해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고, 최근엔 'AI 문해력'까지 요구되고 있죠. 그런데 그 이전에 글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문해력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봐요.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면, AI를 비롯한 디지털 도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겠죠.

 

공부를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결실을 꼽는다면 어떤 점들이 있나요
이전엔 몰랐던 새로운 행복을 찾았습니다. 문화교양학과 수업은 가부장제와 고정적인 성역할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여학우들과 소통하면서 아내와 여성의 관점에 서보게 됐죠. 지난 30년 동안 내조해준 아내를 다가올 30년 동안 내가 보살피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때부터 요리, 설거지, 청소 등 집안일은 제가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집안일과 친해지니 가족들과도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일 겁니다. 가장의 권위 뒤에 숨어 외로움을 곱씹게 되니까요. 공부하면서 젊은 학우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첨단 IT 기기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는 장점도 있어요. 늘 새로운 관점과 기술을 접하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 노력합니다.


AI 협업 소설도 IT에 대한 관심의 일환인가요
예,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다가 제 삶을 바탕으로 픽션을 창작해보게 됐어요. 저와 주변 사람들을 모티브 삼아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미지, 소설의 장르와 플롯을 AI에게 제시했습니다. 처음엔 AI가 노년기 만학도인 주인공 이야기를 너무 거창하게 풀어내길래 여러 차례 피드백을 주면서 수정했습니다.


보내주신 단편소설들을 AI는 ‘사람이 쓴 글’로 판정했습니다
제가 글을 먼저 쓰고 AI에겐 교정과 교열만 맡긴 건지, 아니면 등장인물이나 플롯 정도를 제시하고 AI가 쓰게 한 건지 궁금해서 테스트를 해보셨군요. 대체로 후자에 가까운데, 복수의 AI를 사용해 여러 번 수정해서인지 ‘인간적인’ 문체로 바뀐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챗GPT가 처음 만든 소설이 너무 작위적이면, 클로드에게 평론가 역할을 부여하고 그 소설을 평가하게 했어요. 클로드가 지적한 문제점과 제 생각을 취합해서 초고를 개작하는 과정은 편집자 역할을 맡은 제미나이에게 부탁하는 식이었죠.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니 갈수록 사람이 쓴 글과 비슷해지더군요. 인공물에 복잡성을 더할수록 자연물과 비슷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 같아요. 각각의 AI 서비스에는 사람의 인격과도 비슷한 고유한 특성들이 있다고 느꼈는데, 그런 점에 착안해서 위와 같은 과정을 시도해보게 됐습니다.


AI를 활용한 소설 창작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문학성을 평가받거나 등단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한 편의 소설을 직접 쓸 수 없기 때문에 AI라는 도구를 사용한 거고요. 다만, 저처럼 창작 욕구는 있지만 벽에 부딪힌 사람들에게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AI를 활용한 창작도 새로운 분야로 인정하면 어떨까요? 작품 전체를 만들어내기 힘든 사람이 무언가를 창작하고 싶어 한다면 그런 요구도 포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AI를 활용해 만든 이야기는 자전적 소설이지만 제 삶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는 픽션입니다. 어떤 면에선 '또 다른 나'의 대안적인 삶을 창조해낸 경험이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대다수의 바둑 기사들은 AI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AI의 기보를 모방합니다. 예술계의 많은 거장들은 다수의 문하생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왔고요. 창작자들이 기계나 다른 사람을 창작의 도구 또는 파트너로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죠. 학우님의 AI 협업 소설 창작도 그와 비슷한 취지라고 보시는지요
예, 잘 짚으셨네요. 현세대의 바둑 기사들이 AI를 훈련 과정에 적극 활용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젠 인간 바둑 기사가 AI를 모방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죠. 전 유명 드라마 작가가 다수의 보조 작가를 활용해 대본을 쓰는 것도 ‘AI 협업 창작’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도구로 활용되는 대상이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차이만 있는 거죠.


바둑 기사가 AI를 활용하는 건 훈련 과정에 국한됩니다. 예술가의 개별 작품에 해당하는 실전 대국에서 AI를 활용하는 건 부정행위로 간주되죠. 또 다른 인간을 조수(혹은 도구)로 활용하는 예술가는 해당 분야의 대가로 공인된 사람들이며, 자신의 창작 스타일을 조수들이 모방하도록 관리감독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합니다. 이 점에서 창작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 대화창에 지시문을 입력해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예, 제 견해가 단 하나의 정답이라고 보는 건 아닙니다. 기자님의 견해에서도 일정 부분 수긍하는 점이 있고요. 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고 그로 인한 엄청난 편익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 전체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리고 개개인이 AI 시대에 어떤 길로 향해야 할지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주제일 겁니다. 우리 두 사람만의 대화에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런 대화와 논의가 방송대와 사회 저변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AI를 바람직하게 활용하는 방안도 찾을 수 있겠죠.


중앙일간지 인터뷰와 방송대 홍보 모델 활동의 계기는요
그 신문사 홈페이지의 독자 게시판에 사회의 저명 인사만 다루는 경향에 대해 지적했었습니다. 언론 매체가 무대 뒤에서 묵묵히 제몫을 하는 사람들을 망각하고 주인공만 부각시킨다는 내용이었죠. 신문사 측에서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와서 인터뷰를 하고 기사까지 실리게 됐어요. 방송대 홍보 모델이 된 건 저 같은 고령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소에도 지인들에게 방송대 입학을 권유하고 있고, 제 말을 듣고 방송대 가족이 된 분도 많습니다. 방송대가 제공하는 양질의 교육을 접해보면 세금 낸 보람이 있다는 생각도 들고 저만 알고 있기가 아까워요. 학업 외에도 동문회와 동아리 활동, 다문화 학우를 돕기 위한 활동을 통해 배움을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우에게 전할 조언과 향후 계획이 있다면
노년기엔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가 벅찰 수밖에 없습니다. 전 이해가 안 되면 몇 번이고 복습하고 있어요. 반복 학습이라는 원격교육의 장점을 활용한 거죠. 또 과목 중복을 고려해 두 번째 학과부터는 2학년으로 편입했습니다. 3학년 편입을 선택하면 기간을 더 단축할 수 있지만 공부가 좀 부족해질 것 같았죠. 또 방송대에 처음 입학하는 학우라면 AI를 과제물에 활용하는 건 조금 나중으로 미뤄두는 편이 나을 듯해요. 처음부터 AI에 의존하는 건 장기적으론 바람직하지 않을 겁니다. 앞에서 말한 '기본적인 문해력'을 기르는 과정을 방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전 경제학과 졸업 후 여섯 번째 학과인 교육학과에 편입할 예정입니다. 그 학과에 저의 최근 관심사인 노화에 수반되는 자존감 저하와 극복 방안에 관련된 교과목이 포함돼있어서요.


연배를 가늠하기 힘든 맑은 눈빛과 열정을 지닌 김 학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앉은 자리에서 2시간이 훌쩍 지나 작별할 시간이 됐다. 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꺼냈던 15인치는 됨 직한 커다란 태블릿PC를 가방에 집어넣고는 “사랑도 행복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인 것 같다. 기자님도 더 많이 사랑하고 행복하길 빈다”라는 인사를 건네며 지하철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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