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정 방송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국경을 넘으며 윤동주의 자취를 좇은 20년 연구를 집대성한『윤동주의 오래된 노트-움직이는 시인, 살아있는 언어』(사계절)를 출간했다. 1장에서는 윤동주를 처음 발견한 중학생 문학소녀의 설렘이 책장을 넘어 싱그럽게 풍겨온다. 김 교수는 그때 시인의 발자취를 평생 연구할 운명을 느꼈던 것일까? 한 문학소녀가 사랑하는 시인을 연령대별로 따라가는 발자취일 거라 예상하고 책을 읽는데, 생각보다 스케일이 크다. 연변 여행을 시작으로 후쿠오카 시모임에 참석하고, 캐나다를 오가며 김 교수는 ‘모어’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시인을 발견했고, 활자화된 시에서 시인의 원고 노트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윤동주 시어의 기원을 북간도 조선인 공동체의 독특한 언어 환경과 그들의 고향 말인 육진 방언에서 찾은 것은 이 책이 새롭게 주목한 지점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시인을 사랑한 재일코리안, 한국인 유학생, 일본인들을 인터뷰한 다채로우면서도 감동적인 사연들을 담았다. 만주에서 경성으로 또 일본으로, 경계를 넘었던 시인에게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었기에,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이토록 사랑하는 것일까? 책은 에세이, 논문 형식에 자신의 성장사를 덧댄 독특한 글쓰기로 이뤄졌다. 그래서인지 중학 시절 시인의 모습에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며, 100여 년 전의 사람이지만 마치 그의 행적을 내밀하게 따라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인의 나이를 훌쩍 넘어 중견 학자가 된 그는 거듭 시를 읽고 행간을 짚어내며, 시인에 관해 새롭게 발견한 모습을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윤동주와 그의 시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3박4일로도 부족할 것 같다며 해사하게 웃는 김 교수를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오랜만에 흡입력이 대단한 책을 만났습니다.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퇴고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도요.
윤동주 시는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강제로’ 읽게 되잖아요(웃음). 저는 조금 일찍 시집을 접하긴 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윤동주 시를 연구하겠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시가 너무 쉽게 읽혀서인지, 연구할 만한 테마가 더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정지용 시 연구로 박사논문을 쓰면서 1930년대 시로 연구 분야가 확장됐고, 그러다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진행한 ‘동아시아 기억의 장’이라는 연구 과제에 참여하면서 윤동주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전에 동아시아의 여러 장소로 이동했던 시인의 삶과 사후에 한국과 일본, 중국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상황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였지요.
연구하다 보니 이야기할 거리가 점점 많아져서, 2009년부터 작년까지 관련 논문만 8편을 썼어요. 그런데 논문, 학술서 형식으로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담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좀더 쉽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연구를 시작한 2007년을 기점으로 하자면 거의 20년이 지났고, 단행본을 내기로 생각한 시점도 10년이 넘은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윤동주 시비가 새로 세워진다거나 문헌이 나오면 또 공부 거리가 늘어났죠.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팬데믹 때부터였습니다.
윤동주가 시를 쓸 때 날짜와 장소를 기록했던 부분에 주목하면서, 시인이 습작하던 소년 시절부터의 이야기를 교수님 본인의 삶의 궤적과 같이 풀어가셨어요. 이렇게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이번 책에 적용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글쓰기 형식은 처음부터 고심했던 부분이에요. 말씀드렸듯이 논문이라는 형식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다룰 수 없었어요. 또 한 가지 이유는, 제가 연구하면서 시인처럼 경계를 넘는 이동을 많이 했는데요. 한국과 일본, 캐나다에서 다양한 청중 앞에서 발표하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윤동주는 민족시인, 저항시인이자 영원한 청년시인이라는 고정된 상이 있었고요, 일본인과 중국인에게는 또 달랐어요. 너무도 애정이 깊고 자랑스러운 시인이기에, 다들 그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좀 다른 시각으로 윤동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이 책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 논문으로 쓰면 연구자들만 볼 텐데, 그보다는 많은 독자에게 윤동주에 관한 이야기가 닿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알고 좋아하는 시인에 관한 이야기가 몇몇 전문가들에게만 읽혀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고민했던 거죠. 저 역시 연구자이고 선생인데요. 이 책에서 저는 독자 입장에서 윤동주를 읽고, 다른 독자와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제가 윤동주를 만난 과정을 다른 독자에게 차근차근 설득해 가는 과정으로 써야지만, 새로운 윤동주의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텍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던 사람이라 집필에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가기도 했죠. 윤동주도 시를 쓰고 많이 고쳤듯이, 저 역시 쓰고 고치기를 많이 했습니다(웃음).
윤동주 이야기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시대 이야기라는 걸, 저라는 이야기 주체를 통해서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덕분에 시인의 삶과 제 삶 그리고 독자의 삶이 어우러지면서 입체적인 윤동주 이야기가 책에 담기게 됐습니다.
텍스트로만 접했던 시인을 만나기 위해 2014년 가을 국경을 넘어 연변으로 가셨습니다. ‘윤동주의 연고를 찾아가는 여행’ 이후 연구 분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신 것 같아요.
윤동주가 정말 ‘현재적’ 인물이라는 걸 현장에서 느꼈어요. (당시 기준으로) 70년 전에 사망한 윤동주라는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에 대해 학술대회도 아니고, 답사 여행 중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거든요. 윤동주가 현재 동아시아인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목도했고, 저 역시 윤동주를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현재적 인물로 봐야겠다고 확연히 느꼈습니다.
사실 이 여행의 출발점은 1995년 일본에 최초로 윤동주 시비를 세운 도시샤대학 졸업생들의 제안이었어요. 답사 여행이었지만, 그때 그분들을 처음 인터뷰했고 이후 일본과 한국에서 추가로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 대상자는 점점 늘어났고요. 일단 기록은 해두었지만, 이 내용을 어떻게 결과물로 낼까 고민했습니다. 제 연구가 정말 바뀌게 된 기점이 된 셈인데요. 이전에는 책상 앞과 도서관에서 연구하다 여행 이후로는 현장 연구, 구술사를 텍스트 연구에 접목하게 됐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책에 인터뷰를 넣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만 아는 윤동주 이야기, 독자 이야기가 점점 늘어나면서, 이 이야기들을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구나 하는 책무감을 느꼈습니다. 단행본으로 낸다면 좀 더 넓히자고 구상하게 된 계기였죠. 연구자로서 제 인생에서도 굉장히 중요했던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이듬해 후쿠오카에서 일본인들과 함께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에 초대받으셨습니다. 그날 「자화상」을 거듭 낭독하면서 교수님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경험을 하셨다고요.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그 ‘처음’의 감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살짝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2015년이었죠. 뭐랄까요, 정말 신기하고도 낯선 체험이었습니다. 지금이야 K-pop이나 한류로 한국 문화가 주목받고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거든요. 한국어의 객관적 지위가 달라졌다고 할까요? 후쿠오카 모임은 매달 한 번씩 모여서 윤동주 시를 낭송하고 느낌을 나누는 모임이었는데, 한국어를 익혀서 잘하는 일본인들에게 초대받은 거예요.
모임에서 「자화상」을 낭송하는데, 그분들이 “윤동주 시를 한국어로 들으니 너무 아름답다”라며 “또 읽어달라”고 거듭 요청하셔서 세 번이나 낭송했습니다. 제 한국어를 외국인이 그렇게 주의 깊게 들어준 건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제 목소리를 제가 듣는데 순간 한국어라는 모어가 저에게 아주 낯설게 다가왔어요.
한자 문화권인 일본인에게는 시어에 한자가 있으면, 의미 파악이 수월할 텐데, 특히 이 시는 한자가 적어서 한국어가 가진 음성적 가치가 훨씬 도드라져요. 윤동주 시에 음성적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는 학교에서 시를 읽을 때 주로 의미를 찾으라고 배워왔잖아요(웃음). 그런데 시 자체가 가진 음성적 가치를 느끼면서, 바로 그것이 세월을 뛰어넘어서 많은 사람이 윤동주 시를 읽고 좋아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어요.

이 책의 큰 전환점 중 하나는 완성된 ‘활자’가 아니라 시인의 ‘노트’로 시선을 옮긴 일로 보입니다. 보통 연구자는 확정된 정본을 다루는데, 작가님은 그 이전, 시인이 망설이고 고쳐 쓴 흔적에 주목하셨죠. 노트를 들여다본다는 건 교수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일단 시인의 노트, 자필 시고가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문학사에서 정말 특별한 일이에요. 특히 해방 이전 작가 중에 자필 시고가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이렇게 반듯하게 정리돼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건, 윤동주가 단정하고 꼼꼼한 성격이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약간 ‘인간 엑셀’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대부분의 작품에 창작 일자를 남겼고, 처음 쓴 날짜, 개작 날짜를 같이 적기도 했죠.
유족이 윤동주 시의 가치를 알았고, 자필 시고를 긴 세월 동안 간직해왔다는 점도, 1999년에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민음사)으로 공개했다는 점도 대단하고 놀랍습니다. 저는 이 책을 농담이 아니라 돋보기를 들고 봤어요(웃음). 사진 속의 글자가 너무 작아서요. 이후 윤동주기념관에서 디지털 스캔 파일을 받아서 조금 편하게 확대해서 보긴 했지만요. 자필 시고가 남아 있으니, 연구자라면 시고를 보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해요.
자필시고, 그러니까 윤동주가 남긴 ‘오래된 노트’는 퇴고 자국이 남아 있는 미완성의 원고입니다. 제가 노트를 들여다본 것은, 좀 더 꼼꼼하고 깊이 있게 읽고 싶었던 마음으로 한 일입니다. 단지 어떤 단어가 어떻게 바뀌었다고 보는 것만이 아니라, 왜 그랬을까, 어떤 뜻으로 그랬을까를 상상하면서 보려고 했고, 윤동주가 만약 살아서 직접 시집을 출간했다면 시가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잠재된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하나 더 말씀드리면, 원고노트를 보면서 윤동주가 시를 쓰는 순간순간을 마주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이 있었어요. 노트에 축적된 시간을 느낄 수 있었고, 저 역시 윤동주의 시를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해 읽으면서 저의 시간이 윤동주의 시간과 맞닿는다고 느꼈습니다.
보통 윤동주를 우리말, 한글을 잘 사용한 시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이를 정지용, 백석 등 선배 시인들의 영향이라고도 쓰셨고, ‘부드럽고 은근하며 아름다운 명동의 말’이라 표현하신 ‘육진 방언’(『두만강 유역의 조선어 방언사전』(곽충구, 태학사, 2019) 덕분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시를 예로 들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자연스러운 구어체 문장, 우리말의 구어적 흐름을 살린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시를 쓰는 일은 일제 말기의 시인들에게 매우 절박한 과제였습니다. 정지용, 백석을 비롯한 1930년대 많은 시인이 그 과제에 도전하고 해결하려고 정말 열심히 시를 썼다고 생각하는데요. 윤동주도 1930년대 조선어 구어체 시 쓰기의 흐름 속에서 창작하고 있었고, 자연스러운 우리말 문장을 시로 구현한 시인입니다. 고향 말인 육진 방언의 특징이 창작의 토대가 되어주기도 했고요.
육진 지역 사람들은 본인들의 말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 컸어요. 책에도 썼지만. 남들이 발음하지 못하는 걸 자신들은 발음한다는 자부심이었죠. 또 명동 마을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었던 거 같아요. 고국, 고향을 떠나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모어가 지닌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거죠. 한글을 가르치고, 배우고, 같이 노래 부르고 성경 읽는 문화가, 오히려 식민지 조선보다 강했던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걸 저는 윤동주 시인의 ‘음악적 모어의 기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처음에 말을 어떻게 배우고, 어렸을 때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러니까 말의 질감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윤동주는 일찍 터득했고, 그게 시인에게 어떤 정체성의 의미가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화상」을 예로 들어 볼게요.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정말 쉬운 단어들로 쓰였지요. 일상에서 쓰는 말의 어순을 따르고 있고요. 문장이 긴 편인데도 ‘고’의 반복을 통해서 순탄한 리듬감이 만들어져요. 자의적이거나 장식적이거나 조작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리듬감이라고 느껴집니다.
「서시」도 그래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여기서 ‘스치운다’의 ‘우’가 육진 방언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피사동 어간에 다시 접사 ‘우’를 결합해서 파생어를 만드는 특징인데, 이렇게 만들어진 ‘쫒기우다’, ‘걸리우다’, ‘가리우다’ 같은 단어가 윤동주 시에 자주 나와요. 연희전문 시절 이 시를 쓸 때 표준어를 몰랐을 리 없는데, ‘우’를 넣어서 말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면서 여운을 남긴 거죠. ‘스친다’ 대신 ‘스치운다’라고요.
‘별 헤는 밤’도 그래요. ‘헤다’는 ‘세다’의 방언형입니다. ‘별 헤는 밤’ 대신에 ‘별 세는 밤’이라고 하면 거친 느낌이 들지요. 이렇게 자연스럽고 여전히 생생하게 다가오는 말들이 오늘날의 독자들도 윤동주의 시를 쉽게 읽을 수 있고 기억하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윤동주의 시가 매우 현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남긴 노트에서 흔적을 찾다가 육진의 역사를 훑으셨고, 이후에는 19세기 말 봉금령이 해제된 만주에 주목하셨어요. 윤동주를 경계의 시인으로 정의하셨는데, 작가님 역시 경계의 연구자가 된 것 같더라고요. 경계를 넘나들면서 특히 언어에 주목하셨는데, 윤동주의 언어 환경은 어땠는지, 또 그것이 시인의 정체성과 시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해 주세요.
만주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다민족‧다언어 사회였어요. 1920년대 <개벽>이라는 잡지에 간도 상황에 대해서 ‘중국 사람도 있고, 일본 사람도 있고, 러시아, 미국, 영국, 독일 사람도 있는 (중략) 실로 복잡한 사회’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독립운동하던 조선인만 있는 곳이 아니었던 거죠. 봉금령 이후 중국 본토 한족들도 많이 건너왔고요. 윤동주는 용정에서 중학 시절을 보냈는데, 당시 용정은 국제도시 면모를 갖추고 있었어요. 캐나다 선교사가 세운 학교였고, 옆에는 서양식 병원도 있었습니다.
윤동주의 언어 환경을 생각해 보면, 모어인 조선어도 각별했겠지만, 생존하기 위해 중국어도 꼭 배워야 했을 거예요. 명동학교 졸업 후 1년 동안 중국학교를 다녔는데, 만주 사변 이후에는 일본어가 점점 더 중요한 언어가 되는 시기였어요. 굉장히 다언어적인 환경에 처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동주는 모어인 조선어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한문까지 다양한 언어를 익혔어요.
그런데,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오히려 한국어의 특징을 분명하게 느끼게 되잖아요? 그렇다면 윤동주가 다언어 환경에 처해 있던 것이 모어를 더 예리하게 다룰 수 있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요? 다언어 환경이기 때문에 오히려 모어인 우리말 시로 습작 노트를 더 정성껏 써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덧붙여 말씀드리면, 당시 사람들이 대부분 여러 언어를 했어요. 정지용, 백석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윤동주는 현지어가 중국어인 곳에서 태어났기에 훨씬 더 모어에 대한 감각이 뚜렷하게 다가왔다는 특징이 있는 거죠.
1938년 겨울, 시인은 고국의 땅을 처음 밟습니다. 경성이라는 이름이긴 했지만요. 책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됐는데요. 시인이 의대 진학을 원하는 아버지와 몇 개월에 걸친 대립을 겪었고, 시인은 밥을 굶으면서까지 거부했다는 점이 재밌더라고요. 할아버지의 중재로 결국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는데, ‘새로운 길’이라는 시가 새롭게 읽혔습니다. 이때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이 부분이 재미있었는데요. 책에 이 이야기를 쓴 이유가 뭐냐면, 윤동주가 평범한 가정의 인물이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예요. 우리는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고 말하지만, 윤동주의 부모도 교육열이 강했고, 자식이 안정된 직업을 갖고 살기 바라는 마음이 컸다, 평범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는 거죠. 그때도 의사는 안정된 직업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책 본문에는 못 쓰고 주석 부분에 남기긴 했는데, 중재한 할아버지께서도 ‘문과 가서 고시 공부하면 된다’라고 하셨답니다(웃음).
윤동주는 내향인이면서도 고집이 셌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길은 절대 선택하지 않았던 심지 굳은 사람인데 또 효심이 강한 면모도 보여요. 분명 아버지 뜻을 꺾으면서도 내면의 갈등이 있었을 겁니다. 자기 인생에 대한 꿈, 장남이라는 무게감, 집안의 기대, 당시 시대적 상황 사이에서 많은 내적 갈등이 있었겠죠.
그러면서도 새로운 출발을 해본다는 기대감이 강하게 나타나는 시가 바로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이라고 표현했죠. 내적 갈등이 드러나는 시는 「쉽게 쓰여진 시」예요.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 대학 노-트를 끼고 /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 나는 무얼 바라 /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를 보면, 윤동주가 고민이 깊었다는 게 느껴져요.
‘방’, ‘정거장’ 등의 시어에 집중하시면서 윤동주 시의 핵심 주제인 ‘고향’에 대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이동 속에서 마주하는 끊임없는 질문과도 같았다”라고 쓰셨어요. 낯선 나라에서 2년 간의 체류라는 작가님의 삶과 시인 그리고 시는 어떻게 연결이 되었나요?
있던 곳을 벗어나면 익숙한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아요. 외국에 나가면 내 존재가 작아지고 나의 언어가 보잘것없어지는 느낌을 받는데,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작고 소외된 존재와 말들에 관심을 두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캐나다에 갔을 때는 말을 잃어버린 선주민 이야기를 접하면서 윤동주를 떠올렸습니다. 시인도 비슷한 위기감을 느끼면서 시를 썼겠구나, 라고 느끼면서 윤동주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죠. 언제나 익숙했던 곳을 벗어나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가 제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요. 좁은 세상에 갇혀 있지 않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9개월 동안 가족들은 면회 한 번 하지 못했고, 시인에게는 시를 쓸 수 없는 고독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시인을 독립운동가, 저항시인으로 기억하고 있는 우리에게 책은 “영웅적 투사의 비장한 최후라기보다는 폭력적인 한 체제가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라고 재해석하셨어요. 조금 더 설명해 주신다면요.
윤동주를 영웅으로 여기거나 신화화하기보다는 조금은 평범한 인물로 생각해 보자는 마음으로 책에 썼는데요. 물론 윤동주가 꼭 평범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 곁에 이런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윤동주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받고 유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사유는 민족 문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독립에 관한 생각을 품고, 그 내용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는 것이었어요.
이런 행동이 ‘선전’, ‘선동’, ‘목적 수행’ 같은 법적 용어들로 재해석되고 정치적 행위로 규정되면서 처벌받은 겁니다. 범죄로 규정된 윤동주의 행동은 실상 인간으로서 추구하고 누려야 할 평범한 일상의 행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치안유지법이라는 체제하에 범죄로 인정돼서 처벌받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피식민자가 처한 생존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거죠.
식민지 시대에 각자의 자리에서 숨 고르며 살아갔을 수많은 생명, 부당하게 죽어간 생명들을 떠올리게 하는 사례로 윤동주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시인을 너무 특별한 존재로 띄우기보다는, 그 시대 이름 없이 죽어간 존재들이 얼마나 많았을지를 생각해 보자는 거죠. 저는 책에서 이들을 ‘이름 없는 윤동주들’이라고 표현했는데요, 그런 계기로 윤동주를 기억하면 어떨까를 제안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습니다.
국경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윤동주라는 한 점에서 만나는 장면들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1995년 시비가 세워진 도시샤대학에서 2015년 시인의 동창생들을 만난 일, 그 곁에서 마주한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고요.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한 시인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또 그 만남들을 통해 교수님이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국적의 독자들이 윤동주에게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우선 윤동주의 삶이 여러 나라에 걸쳐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졸업한 학교를 나온 사람’, ‘내가 사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 ‘내가 사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 같은 이유로요. 처한 자리도 살아온 내력도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윤동주에게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재일코리안 2세들은 조국을 떠나온 뒤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자신들의 모습을 윤동주에게서 발견했어요. 그분들은 윤동주를 알리는 것이 자기 존재를 알리는 일이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일본의 첫 윤동주 시비를 세웠습니다. 갈가리 찢어졌던 총련과 민단이 윤동주 시비 건립 과정에서 한마음으로 합쳐졌다고 제게 강조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본인들은 윤동주를 통해 일본의 과거사를 대면하고, 중국 조선족들도 자신의 역사를 발견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한국인은 윤동주에게서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 할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저는 시인처럼 경계를 넘으면서 여러 곳의 독자들을 만났고,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윤동주를 보게 된 것 같아요.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시인으로만 윤동주를 기억했는데, 윤동주가 남긴 자취가 동아시아에 넓게 펼쳐져 있다는 걸 느꼈죠. 윤동주는 계속 사람들에게 현재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존재 같아요. 일본인은 왜 윤동주를 좋아하는지, 조선족은 왜 윤동주를 기리는지 생각하면서, 각기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윤동주를 매개로 서로 얽혀 있고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 경험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윤동주의 독자인 ‘우리’는 이제 윤동주를 만나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윤동주와 불화하기’를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라고 적으셨어요. 아직 책을 읽지 못한 이들을 위해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이 말은 ‘윤동주와 불화하며 윤동주를 기억하기’라는 소제목을 통해서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의 ‘윤동주’는 박제되고 고정된 윤동주의 ‘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화화되고 상품화된 윤동주의 이미지와 거리를 둔다거나 한 걸음 비켜서서, 윤동주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죠. 윤동주를 그저 추앙하거나 성역화하지 말고, 그의 문학정신을 어떻게 현재의 살아있는 언어로 되살릴 것인지 생각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고르기 쉽진 않겠지만, 시인의 시 중 가장 좋아하는 시는 무엇인가요?
「자화상」을 좋아합니다. 읽을수록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자기에 대한 복잡한 마음, 그러니까 자기가 좋아졌다가, 미워졌다가, 가엾어졌다가 하는 내면의 갈등을 아름다운 음률 속에 잘 표현한 시라고 생각해요.
산문시 「눈 오는 지도」 역시 좋아하는 시입니다. 제가 책에서 아주 공들여 해석한 작품인데요. ‘순이’라는 특별한 존재를 떠나보내야 하는 화자의 상실감과 슬픔, 그리움, 기대가 복합적으로 표현된 시라고 생각해요. 저는 좀 복잡하면서 애매하고, 정답이 없는 시를 좋아하거든요(웃음). 그 무렵에 윤동주가 산문시를 여러 편 썼어요. 시인으로서도 새로운 시도였는데, 산문시의 긴 호흡을 구어체 한글 문장으로 유려한 흐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끌어간 시라고 생각해요.
시는 한 가지 관점으로만 읽으면 재미가 없어져요. 일제강점기에 창작된 시들을 전부 일제와 연관 지어 해석해버리면 재미가 없어지고 비슷한 작품이 되어버리는 것처럼요. 하나의 시도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어요. 여러 겹이 있어서 독자에 따라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연결해서 읽을 여지를 열어두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가 있다면요?
윤동주의 동시들이 참 좋다고 생각해요. 중학 시절 쓴 「굴뚝」, 「편지」 같은 시를 추천하고 싶어요. 윤동주는 연희전문 입학 후에도 동시를 썼는데요, 그 장르에 대해 각별한 태도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동시 쓰면서 말을 다루는 훈련도 많이 됐을 테고요. 윤동주가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노래를 많이 불렀구나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노래 감각을 키우는 데도 동시‧동요 창작이 좋은 연습이 된 거 같거든요, 또 하나 추천하고 싶은 건 산문인데요. 마치 날 것 그대로의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대부분 미발표작입니다. 아마 윤동주가 직접 발표했다면, 좀 더 다듬었겠지만…. 시가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에게는 산문을 추천합니다.
교수님은 정지용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죠. 이후 여러 주제를 거쳐 윤동주로 연구 여정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논문을 쓰셨고, 저서를 남기셨는데, 이 책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윤동주 연구사에서 어떤 지점을 점유하는 책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용을 시작으로 1930년대 시를 주로 연구했어요. 동시대 시 비평도 했고요. 그동안 해온 정지용, 백석, 임화 등에 대한 연구가 이 책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1930년대 문단 속에서 윤동주가 정식 시인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 흐름을 의식하면서 시를 썼을 것이기에, 좀 더 객관적으로 윤동주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 거죠. 그래서 이 책은 그간의 제 연구를 결산하는 하나의 의미가 있고요. 또 제가 연구한 학술적 연구 결과물을 대중 독자와 소통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는 의미도 큽니다. 이 책이 윤동주에 관해 대중 독자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다리가 되는 역할을 할 거라 기대해 봅니다. 윤동주 연구사적인 맥락에서는 사실 제가 평가받아야 하는 입장이겠죠(웃음).
그래도 저자로서 이 책의 강점을 든다면, 윤동주 시어의 기원과 현재적 의미를 규명했다는 것, 그리고 독자 인터뷰를 통해 지금 이 시대에 윤동주 시가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를 기록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오래 공들인 만큼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교수님께 윤동주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
오래된 친구 같아요. ‘글벗’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 책을 쓰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는데, 그때 힘이 됐던 게 윤동주가 언제, 어디서든 ‘쓰는 일상’을 지속했다는 사실이었어요. 작품 끝에 창작 일자를 기록하며 시를 썼던 윤동주를 생각하면서, 저도 규칙적으로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책을 보신 분 중에 글 쓰는 분들이 특히나 위안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윤동주 같은 시인도 원고를 이렇게나 많이 고쳤구나, 한 번에 완성한 게 아니고 꾸준히 썼구나 하는 데서 위안받으시는 거 같더라고요(웃음).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글 쓰는 인간’이라는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를 다시 한번 보면서 글을 쓰는 인간의 자리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관련해서 독자들에게 한말씀해 주신다면요.
책을 쓰고 나서 생각한 거예요. 이 오래된 노트,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게 정말 귀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제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시점에는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몰랐던 시대였는데, 책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AI가 몇 초 만에 말끔하게 글을 완성하는 시대가 되었어요. 글 쓰는 일이 더 이상 인간의 고유한 작업이 아니게 된 것이죠.
이렇게 글 쓰는 인간의 영역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를 가만히 읽다 보면, AI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AI 글쓰기에는 단어 하나를 두고 고민하고 표현을 고치고 무엇을 선택할지 망설이는 과정이 삭제되죠. 가장 인간적인 영역이라고 할 부분인데요. 흠 없이 매끄러운 글이 아니라 조금 부족해도 그 부족함 속에서 계속 쓰고, 고치면서 어느 순간 빛나는 언어를 길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윤동주의 오래된 노트’가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윤동주를 좋아하는 분들, 윤동주를 더 알고 싶은 분들 그리고 글 쓰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윤동주를 새롭게 만나는 경험을 이 책을 통해 할 수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