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과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그 팽창이 단 하나의 우주에서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무수히 많은 우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팽창하고 있는 것일까. 우주팽창 이론과 다중우주론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존재의 근원을 묻는다.

2019년 4월, 인류는 처음으로 블랙홀의 ‘그림자’를 포착했다. 사건지평선망원경(EHT) 프로젝트가 공개한 M87 은하 중심부 블랙홀 사진은 전 세계를 흥분시켰다. 2022년에는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 궁수자리 A*까지 촬영에 성공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론 속에만 존재하던 것들이 이제는 사진으로 남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우주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1920년대 에드윈 허블의 관측에서 비롯됐다. 은하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고, 멀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허블의 발견은 정적인 우주를 가정했던 아인슈타인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가 우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끼워넣었던 우주상수가 우주팽창의 실마리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진 것도 아이러니다.
그런데 우주팽창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현재 과학자들은 그 답을 ‘암흑에너지’에서 찾는다. 우주 전체 에너지의 약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암흑에너지는 빈 공간 자체가 갖는 일종의 척력(밀어내는 힘)이며,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빅뱅 후 약 80억~90억 년이 지나면서 암흑에너지가 중력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우주의 팽창은 가속되고 있다.
우주의 또 다른 수수께끼는 암흑물질이다. 우주 전체 에너지-질량 구성의 약 27%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빛과 전혀 반응하지 않아 직접 관측이 불가능하다. 은하가 원심력에 의해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는 이유, 은하 바깥쪽의 별들이 중심부 별들과 비슷한 속도로 공전하는 이유가 모두 암흑물질의 중력 덕분으로 설명된다. 암흑물질은 은하 형성과 우주 구조의 진화를 설명하는 핵심 요소다.
빅뱅, 시공간을 낳은 하나의 사건
빅뱅 이론은 종종 오해를 받는다. 우주가 어느 한 ‘지점’에서 폭발해 퍼져나갔다고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빅뱅은 공간 어딘가에서 일어난 폭발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자체가 생겨난 사건이다. 즉 빅뱅의 ‘바깥’이나 ‘이전’을 묻는 것은, 지구의 ‘북극 너머’가 어디냐고 묻는 것만큼 범주를 벗어난 질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빅뱅은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일까. 급팽창(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빅뱅 후 약 10-36초 무렵 우주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폭발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 급팽창은 지금도 어떤 형태로 ‘영원히’ 지속되고 있으며, 팽창이 국지적으로 멈춘 자리에서 각각의 ‘주머니 우주(pocket universe)’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의 핵심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그 수많은 주머니 우주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2023년 국제 펄서 타이밍 어레이(PTA)는 나노헤르츠 중력파 배경 신호 검출을 발표했다. 해석은 분분하지만, 우주 초기의 흔적을 탐구할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호킹의 마지막 질문, ‘다중우주를 줄여라’
2018년 3월, 스티븐 호킹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생애 마지막 시기에 토마스 헤르토그 벨기에 KU 루벤대 교수와 함께 완성한 논문「영원한 인플레이션으로부터의 순조로운 탈출」의 핵심 주장은 ‘다중우주의 가능성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다중우주의 수는 M 이론이 예측하는 10500개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에 이른다. 호킹과 헤르토그는 홀로그래피 개념을 이용해 우주의 초기 조건 자체를 다시 정의함으로써, 이 수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수학적 논증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다중우주가 있다면 그 수는 무한이 아니라 유한하게 통제 가능한 범위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호킹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라는 육체적 한계 속에서도 평생 우주의 시작과 끝을 탐구했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중력과 결합해 블랙홀이 ‘호킹 복사’를 방출한다는 이론을 내놓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다중우주의 문을 좁히려 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논문은 단순한 학술 성과가 아니라, 인간 지성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평행우주
에르빈 슈뢰딩거의 1952년 강연 내용을 쉽게 옮기면, ‘나라는 존재가 서울에서 강의를 듣는 동시에 제주도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을 수 있다’고 풀어쓸 수 있다. 다중우주론은 이 도발적 상상에 물리적 근거를 부여하려는 시도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왔다면, 어딘가에는 뒷면이 나온 세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황당하게 들리지만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 상태에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상자 안에서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듯이, 관측이라는 행위가 하나의 현실을 ‘선택’하는 순간 나머지 가능성들은 어디로 가는가? 미국의 물리학자 휴 에버렛 3세는 1957년 파동함수는 결코 붕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모든 가능성이 각자의 우주에서 동시에 실현된다는 것이다. 에버렛의 이 ‘다세계 해석’은 당시 물리학계에서 외면받았고, 그는 결국 학계를 떠났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아이디어는 다중우주론의 핵심 축으로 되살아났다.
테그마크의 4단계 다중우주는 각기 다른 이론에 근거한다.『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맥스 테그마크 지음, 김낙우 옮김, 동아시아, 2017)에 따르면, 1단계는 급팽창으로 인한 무한한 공간 속 또 다른 우주들, 2단계는 끈 이론의 ‘경관(landscape)’에서 나오는 물리법칙이 다른 우주들, 3단계는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에 근거한 평행우주들, 4단계는 수학적 구조 자체가 실체라는 주장에서 도출되는, 가능한 모든 수학적 구조로 이뤄진 우주들이다.
비교 항목 | 우주팽창 이론(cosmic expansion) | 다중우주론(multiverse) |
핵심 개념 | 우리가 속한 단 하나의 우주 시공간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거대하게 커지고 있다는 이론 |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 너머에 또 다른 무수한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이론 |
주요 배경 및 이론 | 허블의 법칙, 표준우주론(람다-CDM), 급팽창(인플레이션) 이론 | 영원한 인플레이션 이론,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 끈 이론(M 이론) |
우주의 수 | 단 하나(유일무이) | 매우 많음(유한 혹은 무한) |
원동력 및 메커니즘 | 암흑에너지의 척력(우주 전체 에너지의 약 70%)에 의한 가속 팽창 | 국지적으로 멈추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급팽창 과정에서 주머니 우주(pocket universe) 형성 |
물리법칙의 적용 | 하나의 우주 안에서 동일한 물리상수와 근본 법칙이 적용됨 | 우주마다 서로 다른 물리법칙이나 미세조정(fine-tuning)된 상수를 가질 수 있음 |
과학적 입지 및 검증 | 은하 관측, 블랙홀 촬영(EHT) 등 실질적인 관측 데이터로 증명된 과학계의 정설 | 인간의 기술로는 직접 관측이나 실험적 검증/반증이 불가능해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 있음 |
이 각각의 다중우주는 서로 다른 이론적 토대를 갖지만, 공통적으로 ‘우리 우주는 유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도전을 제기한다.
끈 이론은 과학인가, 철학인가
다중우주론의 배경에는 끈 이론이 있다. 끈 이론은 우주를 이루는 근본 단위가 점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1차원의 ‘끈’이라고 가정한다.
끈이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라 전자, 쿼크, 광자 등 다양한 입자가 만들어진다. 더 나아가 끈 이론(특히 M 이론)은 시간 1차원과 공간 10차원, 합계 11차원의 세계를 상정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3차원 공간(시간을 포함하면 4차원 시공간) 외에 나머지 7차원은 10-33센티미터라는 극미한 규모로 돌돌 말려 있다는 것이다.
끈 이론은 중력을 포함한 자연계의 4가지 힘을 하나로 통합하는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의 유력 후보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현재 인류의 기술로는 실험적으로 검증하거나 반증할 방법이 없다. 입자 가속기로는 끈 이론이 예측하는 에너지 수준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부 물리학자들은 끈 이론이 물리학이 아니라 수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비판한다. ‘증명도, 반증도 되지 않는 이론을 과학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과학철학의 오래된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한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들은 기존 표준우주론(람다-CDM 모형)에 균열을 내는 결과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초기 우주에서 예상보다 훨씬 크고 성숙한 은하들이 발견되면서, 현재의 우주 형성 이론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기존 우주론 수정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경계
우주팽창 이론과 다중우주론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서로를 전제한다. 영원한 인플레이션이 다중우주를 낳고, 다중우주론은 왜 우리 우주의 물리상수들이 생명이 존재하기에 딱 맞는 값을 갖는지를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라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자연의 근본상수는 현재까지 30여 개가 알려져 있다. 전자의 질량, 빛의 속도, 중력상수 등 이 상수들 가운데 단 하나만 조금 달랐더라도 탄소와 산소는 존재하지 않았고, 별도 행성도 생명도 없었을 것이다. 이 ‘미세조정(fine-tuning)’ 문제를 다중우주론은 이렇게 설명한다. 가능한 모든 물리법칙의 조합으로 이뤄진 수많은 우주들 가운데, 우리는 우연히 생명이 가능한 우주에 태어난 것이라고.
우주를 안다는 것은 지구 생명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것이고, 나아가 우리가 얼마나 작고 동시에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지를 아는 일이기도 하다. 우주가 더 넓어질수록 우리는 더 겸손해진다. 그리고 어쩌면, 그 겸손이야말로 우주를 탐구하는 가장 좋은 이유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