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호시노 도모유키의 인간탐색

요약할 수 없는 시의 언어는, 의미만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타오르는 듯한 저녁놀과, 숲이 솟아오른 듯한 오로라는

요약도 설명도 할 수 없습니다.

저녁놀이나 오로라에 둘러싸였을 때의 감정은 나만의 것이며

거꾸로 말하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이런 일에 AI는 낄 자리가 없습니다.

 

 

세탁물을 베란다에 널 때, 갑자기 색에 꽂히는 일이 있습니다. 핑크나 보라색 양말을 빤 날에는 붉은 계열의 색이 예쁘게 그라데이션 되도록 나란히 널지 않으면 개운치가 않습니다. 널어놓고는 ‘뭔가 다른데?’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자리를 바꾸어 널면서 쓸데없는 데다 시간을 써 버립니다. 그리고 정신이 돌아오면, 세탁물이 마르는 데 색 순서가 무슨 상관이며, 아파트 안에 있는 베란다에서 어차피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색의 배열에 나 혼자만 집착하면 뭘 하나, 깨닫습니다.
저는 지갑에 지폐를 넣을 때, 깨끗한 순서대로 넣습니다. 돈을 쓸 때 가장 구깃구깃한 돈을 제일 먼저 쓰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자잘한, 정말 의미 없는 순서를 고집하는 성질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꼼꼼하다기보다는 좀 속박되기 쉬운 성격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사물의 역사나 유래를 알아보는 건 저에게 큰일입니다. 아주아주 처음부터 알아야 속이 시원하거든요.
예를 들면, 저는 작가로 데뷔했을 때, 일본 소설의 역사를 너무 모른다는 게 불안해서 일본 근대문학을 처음부터 읽으려고 애쓴 일이 있습니다. 일본 최초의 근대소설이라 불리는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의 『뜬구름(浮き雲)』이라는 소설로 시작해서 중요한 작품을 연대순으로 읽어 나갔습니다. 일본 문학사에 등장한 순서대로 읽어야만 하니까 오에 겐자부로가 신작 소설을 발표해도, 그것은 가장 마지막에 읽어야 할 작품이므로 아직 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몇 년이 지나도 메이지 시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됐습니다.
결국, 연대순 계획을 단념하고 읽고 싶은 대로 읽기로 했습니다. 그런데도 몇 년 후에는 질리지도 않고 세계문학을 처음부터 읽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연대순으로 세계 고전을 읽으려고 했습니다. 이것도 호메로스 중간에 좌절됐고 세계문학 역시 끄적이다 말았습니다.

‘시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기로 결심
그런 저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2년 전, 시에 눈 떴을 때 저는 스스로 ‘시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을 것’을 결심했습니다. 저는 이제 60세입니다. 소설 이상으로 길고 두터운 역사를 가진 시를, 처음부터 연대순으로 알려고 한다면, 성경조차 다 훑지 못하고 인생이 끝나겠지요.
그래서 시와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만나갈 생각입니다. △만나게 된 시만을 읽어 나간다. △알게 된 시인의 시집을 한 권씩 사서 읽고, 마음에 들면 다시 다른 시집을 사서 읽는다. △낭독회 같은 데 가면 계속해서 시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러면 그 사람들의 시를 읽는다. 아직 시집이 없다면, 선물로 받은 동인지나 잡지를 읽는다.
한국 시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저는 아직 충분하게 한국어를 읽을 수 없고, 번역은 거의 없으니 답답하긴 합니다. 일본의 시인 중에는 번역 앱을 써서 한국어 시를 맹렬히 읽어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매일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번역 앱으로 조심조심 읽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해서 최근 2년간 100권 정도의 시집이 집에 쌓였습니다.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 1931~2024)조차 거의 읽지 않았고(아직 못 만났으니까!) 역사에 무감각해지기로 했기 때문에 중요한 시를 전혀 모른다는 부채감은 항상 있지만, 한편으로 자유롭게, 마음 내키는 대로 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저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문학의 역사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으면서도 시를 쓰는 일.

AI 시대, 자기만의 감각을 찾아서
역사에 대한 부담 없이 시와 마주하면 ‘시란 이런 것이다’ 같은 사명감이나 역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니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완전히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죠. 제가 좋아하는 대로, 제 기분이 가는 대로, 저만을 위해 써도 됩니다. 출판시장에 나오는 소설과는 달리 읽을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은 점입니다.
이런 자유를 얻으면서 시를 마주하는 동안, 저는 중요한 발견에 도달했습니다. AI는 시를 읽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AI가 행하는 것은 의미의 정리입니다. 그러므로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라면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요약할 수 있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AI를 활용해 요약하고, 이른바 ‘콘텐츠’를 단시간에 소비합니다.
하지만 요약해도 의미가 없는, 시라는 표현에, AI는 도움이 안 됩니다. 요약할 수 없는 시의 언어는, 의미만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타오르는 듯한 저녁놀과, 숲이 솟아오른 듯한 오로라는 요약도 설명도 할 수 없습니다. 저녁놀이나 오로라에 둘러싸였을 때의 감정은 나만의 것이며 거꾸로 말하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이런 일에 AI는 낄 자리가 없습니다.
이 시에는 무엇이 쓰여 있는가, 물으면 AI는 뻔한 대답을 하겠지요. 너무나도 시 같은 시도 쓸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시를 읽거나 쓰거나 했을 때 자신의 가슴 속에 생겨나는 자기만의 감각이나 감정을 알 수는 없습니다. 우연히 추측한 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맞췄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듯한 레토릭으로 표시할 뿐입니다.
저는 상담 상대로서의 AI에 대해 생각할 때『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를 연상합니다. 나의 일을 나 이상으로 알고 있는듯한 렉터 박사. 혹은 죤 르 카레가 소설에 쓰는 스파이들.
그러므로 저는 시에 이끌려서 시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작품의 레벨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시를 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번역 김석희

1988년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졸업했다. 2000년『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로 제13회 미시마유키오상, 2003년『판타지스타』로 제25회 노마문예 신인상을 수상,『오레오레』로 오에 겐자부로상,『밤은 끝나지 않는다』로 요미우리문학상,『호노오』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대표 소설집『인간은행』,『디어 프루던스』등이 국내에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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