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제의 신간

지난 6월 11일 시작된 2026 북중미 월드컵이 한 달여의 대장정을 마쳤다. 최종 승자는 단 하나, 그 밖의 팀과 팬들은 최종 순위와는 상관없이 패배감을 맛봐야 했고, 각국 언론은 자국 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국가 간의 갈등이나 인종적 편견이 저명 인사의 발언이나 군중 심리를 통해 표출되기도 한다. 방송대 정준영 교수(문화교양학과)와 박상현 교수(생활체육지도과)가 월드컵 직전에 함께 출간한 『세트플레이: 한국 축구와 정치·경제·문화의 역동적 전술』(지식의날개, 2026)은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인 축구의 기원에서 시작해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현대 축구에 내재된 산업적·문화적·정치적 특성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두 저자가 책을 통해 풀어내고자 했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공동 집필의 계기는 무엇인가요
정준영 교수(이하 정): 전 대중문화와 스포츠사회학을, 박 교수님은 스포츠 산업과 소비자 행동을 주된 연구 영역으로 해왔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축구를 좋아하고요. 한국 축구에 관한 책을 함께 집필해보지 않겠냐는 출판문화원 측 제안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전 축구의 기원과 역사, 박 교수님은 축구의 산업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고 문화적 요소에 관해선 함께 집필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목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박상현 교수(이하 박): 90분의 경기 중 선수들이 가장 치밀하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일단 공을 멈추고 진행하는 ‘세트플레이’입니다. 짧은 정적 속에서 각 선수의 동선과 역할이 모두 미리 설계된 채 진행되죠. 축구가 하나의 스포츠 종목일 뿐 아니라 역사·문화·정치·산업과 맞물린 복합적인 구조 속에서 정교하게 설계돼 움직이는 거대한 세트플레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제목입니다.


축구에 대한 관심은 유독 열광적인 것 같습니다
정: 이 책의 초반부에선 축구의 원형에 해당하는 놀이가 고대부터 전 세계에서 성행했다는 사실, 영국에서 귀족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축구가 현대화되면서 노동자 계층을 사로잡은 이유, 남성성의 배출구이자 국가 간 경쟁의 도구가 된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축구는 복잡한 장비 없이도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규칙을 갖고 있습니다. 또 20세기 초엽부터 허용돼 중요한 전술의 일부로 활용돼온 ‘전진패스’ 등으로 인해 수세에 몰렸던 팀의 역전 가능성이 크고, 대표 팀 전력 강화가 용이하다는 점 등 약소국과 사회적 약자가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요소가 많죠.

박: 이번 월드컵을 예로 들면 ‘카보베르데’ 같은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가 강팀들을 상대로 선전을 거듭하며 32강에 진출했습니다. 2002년 한국의 4강 신화도 해외 팬들에겐 그 이상으로 극적인 사건이었을 겁니다. 축구에 비해 야구 같은 종목은 수년 동안 즐겨온 팬들도 모두 숙지하기 힘들 만큼 규칙이 복잡한 편이죠.


축구에 대한 정치 권력의 관점이 변천해온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정: 중세 유럽의 군주들은 민란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해 축구(혹은 축구와 비슷한 놀이)를 즐기는 것을 금지한 사례가 많습니다. 반면에, 근현대에선 축구와 월드컵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면서 심지어 전쟁의 계기가 되기도 했었죠. 축구 외에도 특정 국가의 대표적인 스포츠 종목들은 다분히 정치성을 띱니다. 자연적·역사적 환경에 따라 다수 국민이 즐기게 된 종목의 국제대회 성적은 국민의 사기에 큰 영향을 주니까요. 때로는 역사적·국가적 열등감을 극복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죠. 우리의 88 올림픽이나 2002 월드컵처럼요.


월드컵과 각국 프로리그의 개선점을 제안한다면요
특히 유럽 프로리그 ‘명문 구단’ 한두 팀의 우승 독식, 월드컵을 주관하는 FIFA의 지나친 상업성과 부패 문제는 잘 알려져 있죠. 하나의 리그에서 특정 팀들만 번갈아가며 우승한다면 의외성이라는 흥미 요소가 퇴색되고 팀 간 재정 격차가 더 커지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또 월드컵 참가국이 늘어나면 상당수의 팀이 ‘승점 자판기’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는 어느 정도 현실로 증명된 것 같습니다. 유럽의 프로리그에서 도입한 ‘재정적 페어플레이 규정’은 각 구단의 지출을 수익의 일정 비율로 제한하는 제도입니다. 선수단 연봉 총액의 상한선을 정하는 ‘샐러리 캡’이 프로 스포츠의 꽃인 슈퍼스타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는 단점을 보완한 제도라고 할 수 있죠. FIFA가 월드컵 참가국 수를 늘리는 경향은 비판의 여지도 있지만, 더 많은 국가가 조별 리그에 참여해 세계 축구의 트렌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이론과 현실이 다르기도 하고, 축구에 관한 한 특정한 관점만 옳다고 볼 수는 없죠.


생활체육이 엘리트 체육보다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엘리트 체육 또는 엘리트 스포츠라는 말은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띱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대화 이전의 축구는 귀족 자제들이나 즐기는 스포츠였고 그 의미에선 ‘엘리트 스포츠’였죠. 일반적인 의미에선, 국제대회 입상을 목표로 소수의 대표 선수 육성에 중점을 두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고요. 현재 우리나라의 위상을 고려할 때 국제대회 성적 못지않게 저변 확대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축구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과 참여가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인 경향입니다.
현대의 프로 스포츠 자체가 엘리트 스포츠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꼭 슈퍼스타가 아니라 평범한 프로 선수조차도 천부적인 재능과 장기간의 노력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요. 생활체육 관점에서 제가 활동하는 풋살 동호회의 일화나 고령자를 위한 변형 축구인 ‘워킹 풋볼’ 등을 다뤘지만, 프로 축구와 생활체육으로서의 축구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죠.


한국 축구의 문제를 다룬 8장은 일종의 예언 같습니다. 2026 월드컵에서 한국은 실패한 것인가요
다수의 매체가 보도했던 32강이나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생각하면 실패였다고 볼 수 있겠지만, 성적보다 월드컵이라는 축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실패가 아닐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실, 한국보다 전력이 강하다고 평가된 일본의 도전도 32강에서 멈췄고, 그 외의 전통 강호 중에도 조별 예선에서 탈락한 국가가 꽤 있으니 당연시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감독 등 특정인에 국한된 마녀 사냥은 실익이 없고, 절망과 비난에 앞서 성찰이 우선시돼야 합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와 필요 이상의 절망을 반복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한걸음씩 나아가는 근본적 개선을 모색하는 편이 낫겠죠. 한국 축구의 시스템 개선에서도 ‘전진패스’가 필요하다고 할까요? 진정한 혁신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점에선 ‘세트플레이’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고요.


책의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죠. 축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 『세트플레이』를 읽어보시면, 축구 경기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축구라는 원초적 스포츠가 환희와 웃음뿐만 아니라 때로는 절망과 분노를 가져오는 이유, 축구의 변천사와 관련된 사회적 배경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같은 경기도 다르게 보일 겁니다.
우리의 책은 ‘히딩크 리더십’이나 ‘박지성의 도전정신’ 류의 책들과는 달리, 교훈이나 시사점을 제시하기보다는 축구라는 스포츠의 다층적인 본질에 초점을 둡니다. 축구를 매개로 또 다른 주장을 펴기보단, 축구 자체에 내재된 서사를 폴어내고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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