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선 것이다. 이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프랑스가 100년 넘게 걸린 변화를 한국은 20여 년 만에 겪었다.
문제는 속도만이 아니다. 늙어가는 사회를 누가 돌보느냐는 물음이 함께 따라온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던 시절은 저물었고, 국가가 그 자리를 온전히 메우지도 못한다. 이 틈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것이 로봇이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서 나오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사람과 로봇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 것이냐다.

“외로움 덜어주는 돌봄 로봇의 등장
그런데 인간 일자리는 오히려 늘었다
노인들은 로봇 손길에서 안도감을 느껴
하지만 2043년 요양보호사 99만 명 부족”
일본 요양원 265곳이 보여준 변화
그 답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지난해 국제학술지〈레이버 이코노믹스〉에 실린 일본 요양시설 연구다. 노터데임대·스탠퍼드대·도쿄대 연구진은 2020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의 특별양호노인홈 265곳을 추적조사했다. 이들은 로봇을 세 가지로 나눴다.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일을 돕는 ‘이승(移乘) 로봇’, 목욕과 배설을 보조하는 ‘이동 로봇’, 낙상과 수면을 지켜보는 ‘모니터링 로봇’이다. 로봇을 도입한 시설은 2020년 66.7%에서 2022년 74.0%로 늘었다. 그중 모니터링 로봇이 가장 흔했다. 값이 싸고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다.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다. 로봇을 들인 시설일수록 오히려 돌봄 인력이 늘었다. 통제변수를 반영한 분석에서 로봇 도입 시설은 돌봄 인력이 약 6.5% 더 많았다. 특히 비정규직 채용이 두드러졌다. 이직률도 낮아졌다. 몸을 쓰는 힘든 업무를 돕는 이동 로봇을 들인 곳일수록 요양보호사가 그만두는 비율이 줄었다. 억제대(환자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보호 장치) 사용은 13% 줄었고, 욕창 발생은 26% 감소했다. 로봇이 감시와 기록, 이동 지원 같은 반복 업무를 떠맡으면서, 사람은 대화와 공감, 손길이 필요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이를 ‘휴먼 터치’ 업무로의 재배치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그늘이 없는 건 아니다. 이동 로봇을 쓰는 시설에서는 오히려 낙상이 늘었다. 노쇠한 입소자가 낯선 기기를 다루다 균형을 잃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즉, 사용 초기의 적응 문제다. 실제로 조작법을 익히는 데 몇 달이 걸렸다는 사례도 보고됐다. 또한 숙련된 요양보호사의 임금은 로봇 도입과 함께 오히려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 경력 없는 신입 인력의 임금은 다소 올랐다. 로봇이 미숙련 노동을 보완하면서, 오랜 경험과 연륜이 지녔던 상대적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로봇은 사람을 없애지 않았지만, 누구의 입지를 넓히고 누구의 입지를 좁힐지는 분명했다.
자리를 채우지 못하는 한국의 현장
일본이 실험을 거듭하는 사이, 한국의 상황은 더 급박해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2027년까지 요양보호사가 약 7만5천 명 부족할 것이라 내다봤다. 같은 기관은 2028년 부족 규모를 11만7천 명으로 다시 잡았다. 한국은행은 2032년 돌봄 인력 공백이 최대 71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더 멀리 내다봤다. 2043년이면 최대 99만 명의 요양보호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요양보호사 1명이 감당하는 수요자는 1.5~1.9명이지만, 2040년에는 3.0~3.7명까지 늘어난다. 세 배 가까운 부담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늙은이가 늙은이를 돌보는 ‘노노케어’(老老Care)이다. 요양보호사 중 60세 이상 비중은 2023년 63.1%에서 2043년 72.6%로 늘어날 전망이다. 외국인 요양보호사조차 절반 이상이 60세를 넘겼다. 요양병원 현장은 이미 그 미래를 앞당겨 보여준다. 올해 기준 전국 요양병원 간병인의 79.5%가 60대 이상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월, 2045년 돌봄이 필요한 85세 이상 인구가 372만 명에 이를 것이라 발표했다. 20년 전보다 세 배 넘게 늘어나는 수치다. 공급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요양보호사 규모는 2030년대 중반 정점을 찍은 뒤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수요는 치솟는데 공급은 꺾이는 구조다.
이런 격차 앞에서 로봇을 향한 기대는 더 이상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에이지테크’를 국가 어젠다로 삼았다. 스마트 돌봄기기와 이동약자용 모빌리티를 신성장 동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김영선 경희대 에이지테크 융합센터장의 말처럼, 이 기술은 복지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노년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설계하는 체계로 다뤄지고 있다. 부족한 사람의 손을 기계가 메운다는 발상은, 이제 정책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낯선 접촉에도 마음을 여는 사람들
그렇다면 로봇은 사람의 손길을 얼마나 대신할 수 있을까. 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흥미로운 답을 던진다. 독일 연구진은 68세에서 88세 사이 노인 24명을 대상으로, 보행을 돕는 로봇과의 신체 접촉 방식을 실험했다. 손목을 잡는 방식, 팔짱을 끼는 방식, 팔뚝을 맞대는 방식을 각각 시험한 것이다. 생리 반응에서는 로봇과의 상호작용 중 스트레스 지표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나 정작 참가자들의 주관적 반응은 달랐다. 접촉 강도가 큰 방식일수록 오히려 더 큰 안전감과 신뢰감을 느꼈다. 노년층은 차갑고 거리를 둔 안내보다, 부드럽고 확실한 접촉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정서적 동반자로서의 로봇도 이미 현실이 됐다. 이경준 한국AI·로봇산업협회 본부장에 따르면, 충북 단양군이 2023년 독거노인 110가구에 반려로봇을 보급하자, 평균 우울증 지수가 7.3점에서 3.9점으로 떨어졌다.(<교수신문>,「“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로봇, 외로움을 어루만지다」, 2025.12.23.) 서울 은평구의 한 할머니는 로봇 ‘다솜이’와 하루 대부분을 함께 보낸다. 날씨를 묻고, 약 먹을 시간을 챙기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고독사 사망자가 2017년 2천412명에서 2023년 3천661명으로 급증한 상황에서, 이런 동반자는 단순한 기기 이상의 역할을 한다. 시장조사기관 프로피션트 마켓 인사이츠에 의하면, 세계 동반 로봇 시장은 2025년 5억4천만 달러에서 2034년 21억3천만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기술은 이제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산업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동행 실험
로봇은 동행하는 친구처럼 사람들의 고립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뉴욕시는 소셜 로봇 900여 대를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시 당국이 운영하는 여러 지원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사업이다. 경남도는 2024년 고립도가 높은 중장년 1인 가구를 골라 반려로봇 210대를 보급했다. 두 사례 모두 노인만이 아니라, 고립의 위험에 놓인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돌봄 로봇의 쓰임이 노년기를 넘어, 사회 전반의 고립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뜻이다.
기술과 인간의 관계가 낯설지 않게 자리 잡은 곳도 있다. 앞서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고장 나 더는 움직이지 않는 로봇 강아지를 위해 주인들이 사찰에 모여 단체 장례식을 치른 일이 화제가 됐다. 장례를 주관한 주지 스님은 “물건에도 마음이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단순한 기기 취급을 넘어, 오랜 시간을 함께한 존재에 대한 예의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로봇의 영향력을 살폈다. 4족 보행 로봇이 팀원 한 명에게 짧은 애정 표현을 건네자, 그 사람은 별다른 요구 없이도 자연스럽게 무리를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로봇의 작은 몸짓 하나가 인간 집단의 역학 관계까지 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연구다. 기계가 사람 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존재감은 도구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솔루션 블록’ 넓히고 맞춤형 서비스 제공해야
기술이 앞서가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제도는 아직 성글다. KISTEP이 내놓은 에이지테크 전략은 이 틈을 메우려는 시도다. 두 번째 전략과제는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일이다. 기술 개발과 제도 개선, 사회적 수용성 확보, 성과 확산을 하나의 사슬로 엮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을 돕는 방향이다. 현장에서 검증된 기술과 적용 분야의 결합, 이른바 ‘솔루션 블록’을 다른 업무 영역으로 넓혀가는 방식도 제시됐다. 세 번째 전략과제는 고령자를 하나의 뭉뚱그린 집단으로 보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지식전달형, 기술지원형, 디지털업무형, 사회활동형, 관리보조형으로 업무를 세분화하고, 개인의 생활환경과 역량에 맞춰 참여 경로를 짜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채워야 할 빈틈은 여전히 많다. 로봇이 수집하는 생체 정보와 생활패턴은 고스란히 개인정보로 남는다. 오작동이 낙상이나 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사용법을 몰라 로봇을 방치하는 경우도 흔하다. 기기를 들여놓는 예산만큼, 이를 다루는 교육과 안전 기준을 마련하는 예산도 함께 늘어야 하는 이유다. 기술이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는 순간과, 기술이 새로운 부담을 만드는 순간은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린다. 그 경계를 가르는 몫은 결국 정책과 현장의 손에 달려 있다.
로봇이 낙상을 지켜보는 동안, 사람은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듣는다. 로봇이 밤새 움직임을 살피는 동안, 사람은 아침에 눈을 맞추며 안부를 묻는다. 결국 기술이 넓혀준 여백을 채우는 것은 다시 사람의 몫이다.
돌봄을 다룬 여러 책들도 같은 결을 짚는다.『돌봄 인문학 수업』(위즈덤하우스)은 돌봄을 “약한 존재에 대한 존경과 경탄”이라 정의했다. 이는 효율로 환산되지 않는 감정이다. 손병돈 평택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한국의 비공식 복지』(사회평론아카데미)에서 가족과 이웃이 나누던 사적 돌봄이 오랫동안 국가 복지보다 컸다고 밝혔다. 그 정서적 유대는 로봇이 대신 채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로봇은 유대가 끊어진 자리에 잠시 머무를 뿐, 유대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기계의 손이 사람의 마음을 대신할 수 없다. 다만 사람이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기계가 무거운 짐의 일부를 나눠 질 수는 있다. 초고령사회가 마주한 인력난은 로봇 하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술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돌봄의 온도를 지키는 일, 그것이야말로 어떤 로봇도 완전히 흉내 낼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