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2년 6월 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가 퇴역 장교와 싸움을 벌이고 제네바에서 도망간 후 도제 생활을 전전하다 16세에 무일푼으로 제네바에서 탈출해 방랑의 길에 나섰다. 냉철한 이성으로 세계를 혁신하려던 계몽주의 시대에 뜨거운 감성으로 유럽을 뒤흔든 인간적인 철학자이자 문제적 지성인. 위대한 교육서『에밀』에서 누구보다 아이들의 행복과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자신의 다섯 아이는 보육원에 보낸 비정한 아버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정열의 작가 장 자크 루소.
학부에서 관심을 뒀고, 석사 과정부터 본격적으로 파고들어 정년을 앞둔 지금까지 이용철 교수(프랑스언어문화학과)가 장장 40여 년간 천착해 온 장 자크 루소 연구의 진수가 녹아 있는 책『장자크 루소』(arte, 2026.08.20.)가 이 교수의 정년 퇴임을 열흘 앞두고 세상의 빛을 봤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과 사상
10여 년 전,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루소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유럽 도시 곳곳을 소개해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서, 그보다는 루소의 진면목을 조금이라도 더 국내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여러 저작들의 주요 부분들을 함께 소개하고 싶다고 역제안하면서 책은 여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강의, 번역, 논문 집필과 개인 사정이 겹치며 탈고는 기약 없이 늘어졌다. 재작년 연말까지 써둔 분량은 절반. 이 교수는 “학교를 떠나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학교의 배려로 얻은 3개월 단기 연수 덕분에, 쿠알라룸푸르의 한 호젓한 아파트에서 마침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기존 루소 관련 책들은 전기 중심적인 면이 강했다면, 앞서 언급했듯 이 교수의 신간은 작품 설명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비교적 잘 알려진『고백록』,『사회계약론』,『에밀』같은 저서부터『공연에 대하여 달랑베르에게 보내는 편지』,『학문예술론』,『인간 불평등 기원론』,『신엘로이즈』,『고독한 산책자의 몽상』,『대화』등 루소의 거의 모든 저서에서 중요하고 흥미로운 대목들을 선별 발췌하고 전반적인 해설을 달았다.
루소가 머물렀던 주요 도시에 따라서 책은 1부 ‘시민의 아들에서 방랑자로 Geneve’, 2부 ‘아름다운 시절 Annecy to Chambry’, 3부 ‘문명의 이단아 Paris’, 4부 ‘걸작의 시대 Montmorency’, 5부 ‘진정한 자아의 탐구 Mtiers to Ermenonville’로 구성해, 출생지 제네바부터 안시, 샹베리, 파리, 몽모랑시, 모티에를 거쳐 뇌출혈로 죽음을 맞이하는 에름농빌까지, 루소가 머물렀던 장소에서 겪은 주요 사건들을 따라간다.
여기에 “1749년 아직 햇볕이 따갑던 초가을 어느 날, 루소는 절친한 친구 디드로를 만나러 파리 교외에 있는 뱅센을 향해 먼지가 풀풀 날리는 길을 걸었다”, “2016년 무척 뜨겁던 여름날 나는 안시 구시가지에 들어가 루소가 바랑 부인을 처음 만난 곳에 만들어졌다는 ‘도금한 울타리’를 찾아 나섰다”, “마침내 루소와 계몽철학자들 사이에 진짜 전쟁이 벌어졌다. 달랑베르의 글 배후에는 제네바에 극장을 세워 연극을 상연하려는 볼테르의 입김이 작용했음을 확신했다” 등 저자가 루소가 머물렀던 장소와 교류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가는 서술 방식은, 마치 독자가 루소와 같이 걷고, 사랑에 빠지며, 분노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 교수는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진 사람이 어떻게『사회계약론』같은 정치적 책을 저술할 수 있었는지, 아울러 루소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그에게 더 마음을 열고 접근할 수 있도록 책을 썼다”라고 부연했다.

이번 책에는 루소를 포함한 당대 지식인들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해 독서의 재미를 돋운다. 이 교수는 “볼테르나 몽테스키외 같은 부자들은 연금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영위했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귀족들의 문예옹호제도로 후원을 받았다. 루소가 구속받는 삶을 피하려 후원을 거부하고 오로지 인세만으로 먹고살겠다고 한 것도 당시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라고 설명했다.
루소의 여러 저서 가운데 기억에 남는 한 구절로는, 독자들에게 가장 알려주고 싶었던 작품이자 직접 번역한『에밀』의 첫 구절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온전하나,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변질되고 만다(Tout est bien, sortant des mains de l’auteur des choses: tout dgnre entre les mains de l’homme.)”를 꼽았다. 이 교수는 이를 “인간은 선량하게 태어났지만 사회 제도로 인해 타락한다”라며 루소 사상의 핵심 명제로 설명했다.
루소에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다. 그러나 사회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교묘히 조작해 인간을 권력의 도구로 이용한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과는 무관한 욕망을 주입하고, 내면의 자유와 행복을 팔아서라도 그 욕망을 채우라고 유혹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막 태동하던 시대를 살며, 체제에 내재한 모순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했던 루소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와 맞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방식은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기치를 내걸고 수행한 글쓰기였다.
비록 삶의 마지막에는 사회에서 추방돼 자연을 거니는 산책자가 된 루소였지만, 이 교수는 루소의 글쓰기를 “단순한 사상적 표현이 아니라, 분열된 자아를 치유하고 타인의 인정과 자신의 자유를 화해시키려는 평생의 실존적 노력이었다”라고 평가한다. 독자들은 루소의 글과 이를 따라가는 저자의 글을 보며 마치 두 작가가 함께 책을 써 내려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루소를 이해하는 9개의 키워드
루소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만 해도 여러 편의 ‘지적’인 여행기를 읽는 느낌이 드는데, 이 교수는 독자들이 루소의 삶과 사상의 행로를 이해하는 것을 돕기 위해 책의 후반부에서 9개의 키워드를 길어 올렸다. 자기애, 동정심, 이기심, 문명, 자유, 미덕, 사랑, 우정, 행복이 바로 그것.
1990년, 만 29세의 나이에 방송대 교수로 부임한 이 교수는 “처음 만난 학생 중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우들이 꽤 많았고, 내가 40대에 들어서니 50대 학생들이 많아졌다. 50대가 되니 60대 학생들이, 60대에 접어들어서는 70대 학생들이 많아졌기에 교수로서 평생 목에 힘 줄 일이 없었다. 권위주의 없는 방송대에서 지낸 36년을 이 책으로 마무리하게 돼 감사하다”라며 웃었다. 이 교수의 이번 책을 읽고 나면, 어느새 루소의 원저들을 찾아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