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나물 리뷰]는 ‘영화가 나에게 물었다’의 앞 글자를 딴 연재로 최근 개봉한 영화를 리뷰하는 기사다. 한 편의 영화에는 하나의 세상이 담겨 있다. 그리고 감독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관갞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나물 리뷰]는 영화가 던지는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정답은 없다. 백 명의 관객에게서 백 개의 영화평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기에. 세상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면서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띄우는 시네마 레터.

두 가족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적 복수를 하는 두 편의 한국 영화가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습니다. 8월 26일 개봉한 「경주기행」(감독 김미조)과 9월 2일 개봉한 「비광」(감독 이지원)이 그 주인공입니다. 두 영화는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지 묻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내 가족을 부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과정에서 행해지는 사적 복수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이번 「영나물: 영화가 나에게 물었다」에서는 두 영화의 사적 복수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딸의 살해범을 죽이려는 엄마
먼저 ‘가족 복수극’ 「경주기행」은 딸만 넷인 화목한 딸부잣집 옥실(이정은)네 가족에서 중학생 막내딸 경주가 수학여행에서 살해당한 지 8년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옥실과 세 딸은 경주로 2박3일 가족 여행을 떠납니다. 큼지막하게 ‘Family’라는 글자를 새긴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첨성대, 동궁과 월지 등 천년고도 경주의 명소 곳곳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네 모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단란한 가족 여행으로 보이지만, 사실 치밀하게 기획된 알리바이입니다. 봉고차 트렁크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한 살인범이 꽁꽁 묶여 있었으니까요.

8년 전, 판사는 여중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이코패스에게 징역 16년을 선고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을 잃은 아빠는 “대한민국 사법부는 죽었다!”라고 울부짖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렇게 행복했던 한 가정은 산산이 부서집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엄마가 살인범의 형량을 줄여달라는 처벌불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이지요. 마치 「밀양」에서 신애(전도연)가 아이를 납치한 살인범을 용서한 것처럼 하나님의 기적이라도 임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살인범을 자신들의 손으로 죽일 계획입니다. 16년은 기다리기에 너무 긴 시간이니, 사적 복수를 실행하기 위해 형을 줄여달라는 속내를 감춘 것입니다.
8년으로 줄어든 형량을 채우고 출소한 살인범을 납치해, 우여곡절 끝에 경주까지 도착합니다. 그 여정에서 막내와 아빠의 죽음 이후 묵묵히 가장 노릇을 하며 엄마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듣는 맏이 장주(공효진), 엄마의 계획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철저한 계획을 짜는 법대 출신 엘리트 백수 둘째 영주(박소담), 머리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프로레슬러 셋째 동주(이연), 그리고 오로지 복수만을 목표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아냈던 엄마는 오랫동안 묻어뒀던 각자의 상처를 비로소 마주하게 되죠.
「경주기행」은 2021년 데뷔작 「갈매기」로 들꽃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은 김미조 감독의 첫 상업영화입니다. 영화 곳곳에 김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과 추억이 녹아 있는데요, 블랙코미디적 위트가 돋보이는 토함산 도굴 씬이나, 소나기로 똑같은 우비를 사 입는 모습은 실제 가족 여행에서 착안했다고 해요.

김 감독은 “간혹 법이 쉽게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처럼 보였던 순간들에 의문을 품었고, 한 인간으로서 끝까지 가본 사람은 무엇을 마주하게 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이 영화의 출발점을 설명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후반부 살인범과 독대하며 토해내는 옥실의 울분 섞인 대사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의 ‘동등 보복의 원칙’이 떠오릅니다.
복수극의 외피를 입었지만, 결국 지독한 가족 간의 사랑을 담은 「경주기행」에서는 세 딸이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에게 진심을 전하는 장면들이 마음을 울립니다. 장녀라면 맏딸 장주(공효진)가 응어리를 쏟아내는 역대급 장면에서 눈물이 흐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동의하지 못하는 둘째, 늘 막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숨기며 살아온 셋째의 마음도 절절하게 스크린을 뚫고 관객에게 전해집니다. 완벽하게만 보였던 가족 여행에서 돌발 변수들이 터져 나오면서, 뜻하지 않은 희생자들이 생기는 부분에 대해 실관람객들의 평이 갈립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사적 복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것 같습니다. 영화니까요.
딸을 지키기 위해 나락으로 떨어진 부부
‘가족 느와르’ 「비광」은 2018년 데뷔작 「미쓰백」으로 연대와 구원 속 어른의 책임을 묵직하게 그려내며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받은 이지원 감독의 두 번째 영화입니다.

톱 여배우 남미(하지원)와 한국 간판 야구 스타 황중구(류승룡)은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부부였습니다. 중구에게 숨겨진 딸 동주(김시아)가 있다는 보도가 터지면서, 두 사람은 파경을 맞고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중구는 초등학교 야구부 코치 자리를 전전하며 술로 인생을 보내지만, 딸 동주를 위하는 마음만은 여느 아빠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제는 한물간 생계형 연예인이 된 남미는 무더운 여름날 산속에 처박혀 굼벵이, 개구리 먹방을 찍으며 재기를 노려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을 각자 견뎌냈는데, 세상은 아직 그들을 용서해 줄 생각이 없나 봅니다. 중학생이 된 동주가 친구 살인범으로 몰려 경찰서에 갇히게 되거든요. 이 사건은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잊혔던 톱 여배우와 스포츠 스타를 한 번 더 소환합니다.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 사건이지만, 이야깃거리가 되니까요.
중구는 야구선수 시절 법무팀의 변호사 친구를 대동해 경찰서에 갑니다. 딸이 살인을 했을 리는 만무하니까요. 당연히 무죄를 입증할 거로 믿었는데, 변호사 친구는 유죄가 나올 거라고 판단합니다. 동주 친구의 죽음은 사실 한 거대 기업의 치부를 덮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었고, 기업은 언론과 결탁해 선정적인 보도를 뿌리고, 속전속결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죠.
「비광」에서의 사적 복수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처절할 정도입니다. 이 감독이 드라마틱한 반전 대신 씁쓸한 현실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남미는 다시 드라마 주인공을 시켜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어두운 연예계의 뒷 세계에 발을 들입니다. 딸을 찾아 함께 도망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빠 중구는 8년 전 자신을 파멸시켰던 사람을 찾아가고요. 한여름에도 없이 보일 수 없다며 털 빠지는 밍크코트를 입고 경찰서에 간 할머니(김해숙)는 어떻게든 손녀를 구해내기 위해 지역 유지들 모임에 나가 광대 노릇을 하며 눈물 나게 춤을 춥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의미가 묵직하게 전해집니다.

세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영화의 제목이 왜 ‘비광’인지 이해가 됩니다. 화투패 중 하나인 비광은 일반 패라 하기에도, 완전한 광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패죠. 비광을 제외한 광은 3장이 모이면 날 수 있지만, 비광이 포함되면 2점이니까요. 그런데 5광을 완성하려면 반드시 비광이 필요합니다. 중구와 남미, 할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홀로일 때는 완전하지 않지만, 함께하면서 비로소 제 역할을 해내는데, 그 과정이 영화의 제목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이 감독이 “「비광」에서도 「미쓰백」처럼 감정적으로 깊이 몰입하고 긴 여운이 남는 순간들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도 이런 가족이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지는 위로를 받기 바란다”라고 밝힌 이유겠죠.
영화는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들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술 매체입니다. 우리는 왜 사적 복수에 열광할까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에 극장에서 대리만족하는 걸까요?「경주기행」에서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유독 관대한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뒷북 치는 경찰로 대변되는 공권력에 대한 분노가 사적 복수의 근거가 됩니다. 거대한 사회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당한다는 시각입니다. 「비광」의 사적 복수의 여정은 어떻게 볼수 있을까요? 정재계에 큰 사건이 생길 때면 때맞춰 터지는 연예인 스캔들…. 아마도 많은 분들 머리에 떠오르는 언론사들이 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실무근으로 밝혀질 때도 있지만, 연예인들은 이미 업계에서 퇴출당하거나, 안타깝게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가을의 초입에서 만난 「경주기행」과 「비광」은 누군가 내 가족을 부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사적 복수의 차원을 넘어 거대해진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 속에서 온전히 개인을 지키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지도 함께 묻고 있습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