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열정에는 끝이 없다고 하지만, 스스로 배움의 길을 개척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길을 함께 걸어가며 등불을 밝혀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방송대 중어중문학과에는 배움에 목마른 학우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학과와 스터디의 발전을 위해 오랜 시간 소리 없이 솔선수범해 온 인물이 있다. 바로 중어중문학과 대표 스터디인 ‘백천(白天)’의 명예직 관장으로 있는 하미희 동문이다. 원격교육 중심의 방송대 특성상 홀로 학업을 이어가며 외롭게 싸워야 하는 수많은 학우들에게 하 동문은 단순한 선배 이상인 가슴 따뜻한 멘토다. 그는 아무런 대가나 보수도 없는 명예관장직을 자원해 스터디의 안정적인 운영은 물론 신·편입생 유치와 학과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혼자서 골방에 앉아 공부하면 외롭고 힘들어서
작은 장애물에도 쉽게 포기하고 싶어지죠.
하지만 함께 모여 서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면
아무리 힘든 과정이라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어요.

2001년 방송대와의 운명적 만남
진주가 고향인 하미희 동문의 배움을 향한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친 그는 서울로 올라와 고교를 다녔고, 성균관대에 진학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자퇴’하고 말았다. 이후 배움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호기심은 늘 가슴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으나, 생업과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학업의 꿈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리틀야구를 하던 초등학생 아들이 대만 전지훈련을 떠날 때 따라가 현지에 머물면서 자신이 ‘한문’과 친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중국어라는 낯설고도 매력적인 언어와 문화를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는 열망은 세월이 흘러도 가슴 한구석에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는 변곡점에 섰다. 결국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하겠다는 각오로 2001년 방송대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하 동문의 학업열은 대단했다. 생업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단 한 번의 수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밤을 새워 한자를 외우고 성조와 발음을 교정하며 학업에 매진한 결과, 그는 총장배 전국어학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눈부신 학업 성과를 거뒀다.
“그 과정에서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바로 스터디 ‘백천’이었어요. 홀로 공부했다면 도중에 지쳤을지도 모르는 길이었지만, 백천 스터디에서 만난 동문·학우들과 함께 공부하고 고민을 나누며 배움의 참된 즐거움을 깨닫게 됐죠.”
대학원 실용중국어학과 1기로 입학
2005년 좋은 성적으로 학과를 졸업한 후에도 하미희 동문의 중국어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심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더욱 깊은 학문적 도약을 위해 차분히 때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무려 7년 동안 이어졌다. 마침내 방송대 대학원에 ‘실용중국어학과’가 신설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하미희 동문은 주저 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2년 방송대 대학원 실용중국어학과 ‘1기’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1기라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주경야독의 열정을 불태웠고, 마침내 입학한 지 2년 6개월 만에 영예로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원 실용중국어학과 1기로 입학해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대학원의 시간은 제 인생에서 학문적 깊이를 완성해준 가장 가슴 뛰는 순간이었죠. 배움에는 나이도, 시기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제 삶으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석사학위까지 취득하며 중국어 전문가로 거듭난 그는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이미 석사과정 때부터 차의과대학에 교양 중국어 강사로 출강하면서 경력을 쌓아왔던 그는 자신이 거둔 학문적 성과와 노하우를 혼자만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고 다시 학교와 후배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그런 하 동문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백천 스터디였다.
많은 이들이 ‘석사학위까지 취득했으니 이제 개인적인 발전이나 다른 대외 활동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금전적 보상도, 화려한 명예도 없는 일에 왜 그렇게 모든 열정과 시간, 사비를 쏟아붓느냐?’고 묻곤 했다. 하지만 백천 스터디의 궂은일을 기꺼이 자원해 맡은 그의 대답은 늘 명확하고 단호했다.
“제가 학교와 스터디로부터 받은 과분하고 소중한 선물을 후배들과 새로 들어오는 신·편입생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예요. 만약 어떤 보수나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었다면 진작에 내려놓았을 겁니다. 후배들이 즐겁게 공부하고 성장의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제겐 그 어떤 세상의 대가보다 값진 보상이자 기쁨이니까요.”
하 동문의 중국어 수업을 듣고 실력을 쌓은 후배들 가운데 몇몇은 박사학위를 취득해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을 정도로, 그의 중국어 지도는 정평이 나 있다.
‘명예관장’으로 꾸준히 스터디 봉사
하 동문이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백천 스터디와 함께한 시간은 올해로 25년이 된다. 학부 때는 ‘배움을 갈구하는’ 학생으로, 대학원을 마친 뒤에는 그런 배움을 찾는 후배들을 돕는 ‘라오쉬(老師)’로 그렇게 시간을 두텁게 쌓아왔다. 그런 그에게 선배와 동료, 후배들은 스터디를 너무 잘 알고, 살림살이까지 알뜰하게 챙긴다고 해서 ‘명예관장’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하 동문이 맡은 백천 스터디 명예관장 자리는 철저히 순수한 자원봉사와 헌신으로 유지되는 직책이다. 그는 스터디의 연간 학습 일정을 기획하고, 방대한 공부 자료와 시험 대비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공유할 뿐만 아니라, 학원이나 개인 강습 못지않은 무료 특강까지 직접 진행하며 후배들의 학업을 이끌어주고 있다.
“정말 많은 분이 스터디에 도움의 손길을 보태고 있어요. 컴퓨터가 말썽이면 새 컴퓨터를, 냉장고가 고장 나면 냉장고를… 그렇게 살림을 꾸려갈 수 있게 도와주는 분들이 있기에 스터디가 유지된다고 생각해요. 늘 고맙고 감사하죠. 그러니까 저는 더욱 몸이 ‘뽀사져라’ 스터디를 챙겨왔던 거죠. (웃음)”
하 동문 역시 학과 신·편입생이 줄면서 걱정이 많아졌다. 그래도 걱정만 하지 않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 스터디 동료들과 함께 서울 광장시장에서부터 도봉산 등산로 입구까지 곳곳을 돌며 전방위적인 신·편입생 유치에 나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백천 스터디가 단순히 교재를 펼쳐놓고 지식을 암기하는 단조로운 공부방이 아니라, 학우들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용기를 북돋우며 따뜻한 정을 공유하는 ‘삶과 배움의 공동체’가 되도록 가꿔왔다.
“혼자서 골방에 앉아 공부하면 외롭고 힘들어서 작은 장애물에도 쉽게 포기하고 싶어지죠. 하지만 함께 모여 서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면 아무리 힘든 과정이라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어요. 스터디는 단순한 공부 모임을 넘어, 서로의 꿈과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하나의 가족입니다. 새로운 학우들이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저희 스터디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발 벗고 홍보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죠.”
한결같은 ‘학교·학과·스터디 사랑’
하미희 동문의 행보는 단순히 스터디 관리자로서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학과에서 개최하는 오리엔테이션, 학술제, 모임 등 크고 작은 행사마다 솔선수범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학교의 발전이 곧 학우들의 자부심이 되고, 학과의 번창이 곧 후배들의 자산이 된다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
백천 스터디의 한 후배 학우는 “하미희 관장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중도에 공부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라며, “아무런 대가도 없이 언제나 밝은 미소로 맞이해주시고, 질문 하나에도 성심껏 답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배움의 진정한 가치와 나눔의 미덕을 함께 배우고 있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하 동문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방송대는 저에게 단순히 지식을 얻는 장소를 넘어, 제2의 인생을 열어준 고마운 모교이자 삶의 가장 큰 전환점이죠. 2001년 입학해 흘린 땀방울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시간, 그리고 백천 스터디에서 학우들과 함께 쌓아 올린 추억들은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소중한 보물이랍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제 체력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학교와 학과, 그리고 사랑하는 백천 스터디의 발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려 합니다.”
미지의 밤을 밝히는 작지만 강렬한 등불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돛을 올려 당당히 나아가게 하는 희망의 신호탄이다. 하미희 동문도 그런 등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