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 청년으로 와서 예순다섯에 나가게 되니 제 인생의 반 이상을 방송대와 함께한 셈이네요. 라디오 강의로 시작해 TV와 멀티미디어, AR/VR 가상실험실까지 스쳐 지나간 수많은 제자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힘들고 고된 길이었지만, 방송대는 제게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가장 감사한 ‘천직(天職)’이었습니다.”
방송대 보건환경안전학과에서 33년 10개월간의 길고도 뜻깊은 학문적 여정과 교육 봉사를 마치고 8월 말 정년퇴임을 맞는 권수열 교수는 교무처장, 출판문화원장, 강원지역대학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대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붙는 가장 빛나는 수식어는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호흡한 스승’이다. 퇴임을 앞둔 권수열 교수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제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방송대의 미래를 향한 진심 어린 당부와 조언을 들었다.
최익현 선임기자bukhak@knou.ac.kr
방송대는 전 국민 누구나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찾아와
삶의 변화를 이뤄내는 유일무이한 대학입니다.
교직원 모두가 사명감을 품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과 손길을 내밀어 준다면,
우리 방송대의 미래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서른한 살 청년 학자와 방송대의 만남
31세의 젊은 권수열 교수가 방송대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9개월이 지난 1992년 11월이었다. 당시 방송대는 기존 5년제 전문대학 체제를 넘어 4년제 정규 대학으로 막 도약하던 격변기였다. 그해 방송대에는 보건위생학과(현 보건환경안전학과)가 처음 신설됐고, 권수열 교수는 학과의 기틀을 잡을 인재로 전격 임용됐다.
“1992년 2월에 박사학위를 받고 석사장교 제도로 군 복무를 일찍 마친 덕에 남들보다 빠르게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수로 올 수 있었습니다. 서른한 살에 와서 예순다섯에 나가게 되니 제 인생의 반 이상인 34년 가까운 세월을 여기서 지낸 셈이죠. 지나고 보니 정말 모든 것이 감사할 일뿐입니다.”
그가 처음 부임했던 1992년은 학과 자체가 막 첫 단추를 꿰던 시절이었다. 당시 학과명은 ‘보건위생학과’로, 보건학 전공과 간호학 전공이 한 지붕 아래 섞여 있던 구조였다.
“당시 한 해에 교수를 세 명이나 한꺼번에 뽑았어요. 제가 11월에 들어왔죠. 완전히 다른 두 분야가 한 학과에서 운영되다 2002년 즈음에 분과했습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제가 일찍부터 학과의 어른 역할을 맡게 됐어요. 지난번 학과 퇴임식 때 1992년, 1993년에 입학했던 92학번, 93학번 동문들이 찾아왔는데, 당시 저랑 나이가 비슷했던 20대 후반 학생들이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이 되어 저를 반겨주더군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또 ‘수질오염은 줄여도 교수님(에 대한) 그리움은 못 줄입니다’라는 플래카드도 저를 울렸습니다.”
권수열 교수의 학부 전공은 토목공학이었다. 1980년대 당시 주변에서는 토목이라고 하면 흔히 건설 공사를 먼저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환경공학 학위를 받고 귀국한 국내 최초의 환경공학 전문가였던 스승을 만나면서 ‘환경 오염과 물 관리’라는 새로운 학문적 지평에 눈을 떴다.
“토목공학 안에 환경공학이 포함돼 있습니다. 정수장이나 하수처리장을 건설하고, 오폐수 관로를 설계하고 시공하는 플랜트 건설이 다 토목 기반이기 때문이죠.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가 한창 도시화, 산업화되면서 수질오염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오염된 물을 마시면 병이 생긴다는 위생 수준을 넘어, 그 오염을 공학적으로 제어하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환경공학’이 절실해진 거죠. 제가 석사과정을 시작한 게 1984년인데 환경부가 신설된 건 1990년이니까,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학문에 뛰어든 덕에 학회나 사회적으로 국가에 기여할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그는 이후 한국물환경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정부 위원회에서 활약하는 등 물환경 분야 권위자로 입지를 다졌다. 열악한 연구 환경에서도 외부 공동 연구와 자체 연구비 수주를 통해 연구를 이어가며 방송대 제자들을 가르치는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학업 완주 당부와 포기를 잊게 만든 격려
방송대는 10대 고교 졸업생부터 90대 만학도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전 국민의 배움터다. 다채로운 학생들을 대하며 권 교수가 33년이 넘도록 간직해 온 최우선 철학은 ‘학교와 학생을 맨 앞에 두는 자세’였다. 특히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20~30대 젊은 제자들에게는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했다.
“젊은 친구들에게는 ‘적어도 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학생이라는 신분을 최우선 순위에 둬라’고 강조합니다. 그러기 위해 매일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강의를 듣는 것이 출석과 같다고 말했죠. 때로는 ‘밖에서 술을 많이 마시더라도 하루에 한 번, 30분이라도 교수 목소리를 듣고 잠자리에 들어라’고 과격하게 권하기도 했습니다. 하루 30분 공부하는 게 당장 학점에 큰 차이를 주지는 않겠지만, ‘내가 학생이다’라는 사실을 매일 각인시켜 주어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제때 졸업하게 도와주거든요.”
반면 삶의 루틴을 만들고 배움 자체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만학도들에게는 전혀 다른 맞춤형 처방을 내렸다.
“어르신 학생들에게 한 학기에 5~6과목을 다 이수하라고 스트레스를 주면 금방 지쳐서 학업을 놓아버리십니다. 그분들께는 ‘조급해하지 마시고 천천히 한 과목씩 즐기시라’고 안내합니다. 혼자 책을 읽으면 힘들지만, 방송대에 오면 시험도 보고 교수가 공부하라고 메일도 보내주니 삶에 건강한 자극이 되죠.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노년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는 데 방송대만 한 곳이 없습니다.”
에피소드도 많다. 당시에는 전화로 상담을 많이 하던 시절이라, 부산의 한 학생이 전화로 어찌나 많이 질문하던지 졸업식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목소리만으로도 알아볼 정도였다. 제주지역대학으로 실험 특강을 위해 펌프, 시약을 가지고 가다 비행기 검색대에서 문제가 돼 낭패를 겪었던 기억도 있다. 지방 학생들과 면담하기로 하고 내려가던 중 갑작스레 내린 폭설로 약속 시간보다 4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더니, 학생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려줬던 추억도 새롭다.
원격교육 특성상 중도 포기자가 나오기 쉽다. 권 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찍부터 구글 그룹스를 활용한 ‘디지털 소통’을 적극 도입했다. 개강 전 이메일 개설을 독려하고 한 학기 내내 직접 작성한 소통 메일을 보냈다.
“시험 기간이 되면 학생들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100점 맞으려고 하지 마라. 중간시험 제출 전에 절대 포기하지 말고, 단 몇 줄이라도 쓴 게 있다면 일단 내라’고요. 학기 후 ‘포기하려다 교수님 메일 덕분에 학기를 잘 마쳤다’는 답장을 받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습니다. 교수 한 사람의 관심이 학생 한 명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매번 느꼈죠.”
그는 교수의 사명감과 함께 학생 관리 시스템(LMS 및 통합 이메일 체계) 구축의 중요성도 끊임없이 피력해 왔다. 교수가 먼저 손을 내밀면 중도 포기율은 확실히 낮아진다는 소신 때문이다.
최근 강원지역대학장을 맡았을 때는 신·편입생 모집을 위해 현장을 직접 발로 뛰었다. 강원 전역의 방송고를 찾았고, 군부대가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부사관 유치에도 앞장섰다.
“훈련이나 비상 대기 때문에 학사 일정을 못 맞춰 사이버대로 빠져나가는 군인이 많았습니다. 방송대도 훈련 증빙 서류를 내면 과제로 대체하는 유연한 제도가 잘 갖춰져 있음을 알리기 위해, 직접 춘천의 한 여단을 찾아가 부사관 40여 명을 모아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관성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길을 열어보고 싶었죠.”
변화와 함께한 긴 여정, 그리고 당부
권수열 교수의 재직 기간은 방송대 교육 매체의 역사적 변천사와 궤를 같이한다. EBS 라디오 방송 강좌로 시작해 TV, 멀티미디어를 거쳐 최근에는 VR(가상현실) 기반 교육과 가상실험실 구축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앞서가는 매체를 적극 수용해 왔다. 정년퇴임을 앞둔 마지막 학기까지도 VR 가상실험 콘텐츠 제작 사업을 직접 완성해 냈다.
“라디오 녹음부터 VR 가상실험실까지 방송대의 매체는 끊임없이 변해왔고, 저는 그 변화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늘 즐거웠습니다. 돌아보니 방송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자 ‘천직’이었습니다. 긴 세월 동안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단 한 번도 서운한 일을 당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강의 시간이 너무 길다는 불평(?)은 여러 번 들었지만요. 퇴임식 날 제자들이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할 때 ‘내가 그래도 인생을 잘 살고 떠나는구나’ 싶어 참 감사했죠.”
학교와 학생을 언제나 인생의 맨 앞에 두고 달려왔던 권수열 교수. 강단을 떠나는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방송대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지향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방송대는 전 국민 누구나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찾아와 삶의 변화를 이뤄내는 유일무이한 대학입니다. 교직원 모두가 사명감을 품고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과 손길을 내밀어 준다면, 우리 방송대의 미래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33년 10개월 동안 참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제자들과 방송대에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