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방’ 씁니다(웃음). 책을 거실에 쌓아뒀더니, 남편이 편하게 공부하라고, 신혼 때 산 3단 서랍을 개조해서 책상을 만들어주더라고요. 남편한테 제일 많이 한 말이 ‘TV 끄고 책 좀 봐!’였는데, 집을 넓혀 이사하면서 제 방이 생겼어요. 저는 제 방에서, 남편은 남편 방에서, 대학원생 아들은 아들 방에서, 이렇게 ‘각자 공부방’ 생활을 하고 있어요.”
2024년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윤명희 학우는 사실 방송대와 인연이 있다. 1994년 교육학과에 입학했는데,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공부는 흐지부지됐다. 시어머니를 간병하던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허전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점점 나이는 들어가고, 골병이라도 들면 뭘 해야 할지 고민됐다. TV를 틀면 나오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가수 임영웅 ‘덕질’도 해봤지만, 허전했다. 가만히 돌아봤다. 젊었을 때 해보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바로 공부였다. 그렇게 30년 만에 다시 방송대로 돌아왔다.
30년 만에 돌아온 방송대
다시 시작한 공부는 너무 재밌었다. 사회복지라는 학문이 언제부터, 왜 생겨났는지 초창기 역사부터 배우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냥 지나쳤던 일들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윤 학우는 “참치캔 뚜껑이 날카로워서 베일 위험이 늘 있었는데, 최근 포일로 바뀌었죠. 처음부터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할 수 있었던 건데, ‘사용자가 부주의해서 다쳤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1학년 2학기에 1학년 대표로, 2학년 때는 강원지역대학 사회복지학과 학생회장으로 봉사했다. 사회복지학과가 1~4학년 ‘완전체’가 됐던 해인데, 2학년에서 학생회장이 나온 건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현재는 강원총학생회 교무부총으로 봉사하며 학생회와 학과 활동도 열심이다. 특히 고령 학우들에 마음이 간다. 시도 때도 없이,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전화가 울리는데, 열 개를 설명해서 하나라도 알아들으시면 행복하다.
남편 이승춘 학우는 작년 가을에 같은 학과 1학년으로 입학해 세 번째 학기를 맞았다. 아내 윤 학우가 ‘낮술’로 꼬셨다. 사회복지학과 마중물 호프데이가 열리는 날, 남편에게 용돈 10만원과 맥주 무제한권을 선사하겠다며. 운전이 서툰 아내를 위해 어디든 기사를 자처하는 이 학우는 호프데이에서 사회복지학과 교수님들을 만났고, 이후 특강에 종종 참석하며 “언론에서 나오는 세상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학우는 “전혀 감이 안 잡히는 과제는 강의를 다시 듣고 생각하다 보면, 처음에는 별이나 달처럼 멀리 느껴졌던 것들이, 지상 어디쯤, 산 꼭대기쯤으로 내려온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 조금만 올라가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라며 웃었다. ‘아내 찬스’도 적극 활용하면서, 문화체육국장으로 봉사도 하고 있다.
부부는 사회복지학과 교수진에 대해 “유범상 교수님은 굉장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면서도 가장 친근한 형 같은 느낌으로 농담도 해주시고, 인지훈 교수님은 정이 많은 게 느껴지는데, 약간 ‘교회 오빠’ 같은 스타일이에요(웃음). 에너지 넘치는 강상준 교수님도 너무 좋고요”라며 웃었다.
독서가 선물한 가정의 평화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교수님들이 권해준 책들은 전부 구매했다. 윤 학우에게는 유범상 교수가 쓴 『세상을 묻는 너에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남아 있다. 두더지 아빠가 딸에게 역사를 알려주는 책인데, 아들이 어렸을 때 이렇게 역사를 알려줬더라면, 더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도 했다.
독서는 데면데면했던 아들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줬다. 아들의 피아노 연주회에 갔는데, 막 『선배시민』과 『행복계약을 맺은 사람들』을 감명 깊게 읽은 뒤였다. 연주회에서 만난 아들 친구들과 책에 있는 내용을 나누면서 한 시간을 넘게 대화했는데, 그 모습을 본 아들이 “엄마, 내 친구들하고 무슨 이야기 했어?”라고 궁금해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했지 뭐”라는 답변에 아들은 “걔네들이 자기 부모님하고도 한 시간 대화를 안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래?”라며 더 의아해했다. 아들 친구들과 나눴던 책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와, 엄마 진짜!”라는 감탄사와 함께 지금은 엄마의 과제물을 챙기고, 교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는 등 대화가 풍성해졌다.
부자 관계도 ‘평화’로워졌다. 정치 성향부터 여러 부분에서 생각하는 게 서로 달랐던 아버지와 아들은 윤 학우의 표현을 빌리면 ‘면도날과 면도날이 부딪히는 것처럼‘ 다투곤 했는데, 요즘은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대화한다. 가끔 이 학우의 언성이 높아갈 때면, 아들이 “아빠, 이럴 때 힘들지? 나랑 싸울 것도 아니잖아”라며 먼저 굽히고 들어온다. 그러면 이 학우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부드럽게 달라진 남편과 살가워진 아들이라는 새로운 풍경을 보는 윤 학우는 흐뭇하다.
나란히 공부하고 있는 부부에게는 선배시민협회 강원 지부 설립이라는 꿈이 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돼 전국적으로 선배시민협회 지부가 형성 중인데, 강원 지역에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부부는 강원지역 학우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아내가 가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함께하는 ‘사랑꾼’ 남편도 힘을 보탤 예정이다.
춘천=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