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지평을 넓히는 방송대인

“배움에는 정해진 시기가 없습니다. 방송대에서 시작한 작은 배움이 제 삶의 지평을 넓혔듯, 후배 여러분의 시간 또한 언젠가 자신만의 눈부신 길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주경야독하던 30대 초반의 만학도가 20여 년의 세월을 거쳐 4년제 대학 전임교수가 됐다. 방송대 일본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대구대학교 전임교수로 임용된 김경옥 동문이다. 일과 학업의 병행이라는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어 오직 배움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학문적 결실을 이뤄냈다는 점에서도, 원격교육을 통해 틔운 작은 학문의 씨앗이 일본 최고 수준의 학술 현장에서 어떻게 결실을 거뒀는지를 흥미롭고 감동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의 서사에는 매력적인 점이 많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자신만의 학문적 탑을 쌓아 올린 그의 여정은, 오늘날 배움의 갈증을 느끼며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수많은 방송대인과 후배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때로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고,

다른 사람보다 늦게 출발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배움에는 정해진 시기가 없고,

꾸준히 쌓아 온 시간은 언젠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줍니다.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었습니다”
김경옥 동문이 방송대 일본학과에 입학한 것은 30대 초반이던 2000년대 초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사회생활에 전념했던 그의 가슴 한구석에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데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직장 생활을 병행해야 했던 저에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비교적 적고 등록금도 저렴한 방송대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입학 당시 그에게 거창한 목표나 원대한 학문적 야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훗날 대학교수가 되겠다거나 전문 연구자가 되겠다는 대단한 꿈을 안고 출발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순수하게 ‘알아가는 기쁨’, 세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이다.
“사실 방송대에 입학할 당시에는 교수가 되겠다거나 연구자의 길을 걷겠다는 특별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더 많이 배우고 싶었고, 제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방송대에서 시작한 작은 배움이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져서 결국 연구자의 길을 거쳐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거죠.”

원격교육의 한계를 극복한 노하우
2000년대 초의 방송대 학습 환경은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고화질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원활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질문을 남기거나 교수, 학우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어려웠던 시절, 김 동문은 ‘스스로 학습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자율성’과 ‘교재 중심의 철저한 반복 학습’으로 자신만의 공부 뼈대를 단단하게 세워나갔다.
“제가 공부한 방법은 교재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이었어요.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교재를 미리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시험 전에 다시 읽는 방식으로 공부한 거죠. 누군가 정해준 방식에 따라가기보다는 스스로 학습계획을 세우고, 관심 있는 분야는 더 깊이 공부했습니다.”
특히 그가 오늘날 공부의 길에서 방황하는 후배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학습 비결은 바로 ‘최소한 교재 세 번 읽기’였다. 교재를 세 번 반복해서 읽는 과정은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학문의 입체적 구조를 체화하는 깊은 사유의 과정이었다.
“저는 방송대 교재가 참 좋았어요. 각 과목의 핵심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어서 교재를 충실히 읽는 것만으로도 해당 분야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거든요. 그래서 저만의 공부 방법은 교재를 최소한 세 번은 읽는 것이었습니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누구보다 먼저 교재를 구입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세부적인 내용을 모두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어떤 내용을 배우게 될지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죠. 학기가 시작되면 강의를 들으면서 교재를 다시 읽었어요. 미리 교재를 읽어 뒀기 때문에 강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고, 처음 읽었을 때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도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시험을 앞두고 교재를 한 번 더 읽으면서 중요한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중간평가나 기말평가를 준비할 때는 기출문제를 풀어봤죠.”
하지만 원격교육 환경에서 혼자서 하는 공부는 고독하고, 외로움이 짙을 수밖에 없다. 그런 독학의 고독을 달래주고 배움의 열정을 온기로 채워준 것은 당시 연신내에 있던 서부학습관에서의 스터디 활동과 동료 학우들이었다. 그곳에서 함께 일본어를 읽고, 출석수업에 참여하고, 토론하며 나눈 배움의 정은 그를 지탱해 준 또 하나의 큰 기둥이었다.
“학부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지금은 사라진 연신내의 서부학습관입니다. 저는 주로 그곳에서 공부했는데, 일본학과 학우들을 만나 함께 일본어 스터디를 하고 출석수업도 참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거든요. 학습관에 가면 같은 관심사를 가진 학우들이 있었기에 공부하는 즐거움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학우들과 함께 떠났던 일본 여행인데요.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한 여행이었어요. 교재와 강의에서 배운 일본어를 현지에서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흥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공부의 길에서 방황하는 후배들에게 그가 강력히 추천하는

학습 비결은 바로 ‘최소한 교재 세 번 읽기’였다.

교재를 세 번 반복해서 읽는 과정은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학문의 입체적 구조를 체화하는 깊은 사유의 과정이었다.

 

 

포기 대신 ‘탐구의 즐거움’으로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중도 포기의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다. 피로가 누적되고 생계의 무게가 어깨를 누를 때마다 ‘과연 이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밀려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김 동문에게 방송대 일본학과의 넓고 깊은 교육과정은 포기할 수 없는 열정의 원천이자 탐구의 장이었다.
“저는 방송대에서 공부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어요. 일본학과의 교육과정이 일본어라는 어학 분야에만 집중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 등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한 나라를 여러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가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일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의 지적 호기심은 그 어떤 고단함도 넘어서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었다. 당시 졸업 과정에서 높은 장벽처럼 느껴졌던 시험 과제들도 집념으로 하나씩 격파해 나갔다. 특히 졸업논문을 면제받기 위해 도전했던 JLPT(일본어능력시험) 1급 청해 시험은 그에게 커다란 도전 과제였다.
“당시에는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을 취득하면 졸업논문을 면제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저도 1급 취득을 목표로 공부했었죠. 독해나 문법, 한자 등은 비교적 수월했지만, 청해는 쉽지 않았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본어를 자유롭게 듣고 반복해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청해 실력을 높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어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청해 음원을 수없이 반복해 들으며 감각을 익혔던 당시의 치열했던 경험은, 훗날 낯선 일본 땅에서 유학 생활을 버텨내는 단단한 원동력이 됐다.

도쿄대 유학과 8년 반의 격전
2006년 2월, 방송대를 졸업한 김경옥 동문은 여기서 배움을 멈추지 않고 숙명여대 대학원에 진학해 학문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리고 일본 학문의 최전선이자 세계적 명문으로 손꼽히는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낯선 타국, 그리고 자신보다 띠동갑 이상 어린 동기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도쿄대의 연구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 대상인 일본의 현지 자료를 직접 분석하고 최고의 연구자들과 학문적 불꽃을 튀겨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그의 심장을 뜨겁게 뛰게 만들었다.
“방송대에서 일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일본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연구 대상인 일본에서 직접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일본의 역사와 사회를 연구하는 만큼 일본의 학문적 환경 속에서 자료를 접하고, 일본 연구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해 보고 싶었던 거죠. 그런 생각이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였어요. 늦은 나이에 유학길에 나서다 보니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과는 띠동갑 이상 나이 차이가 나기도 했고요. 낯선 환경에서 젊은 학생들과 경쟁하며 공부하고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고, 그래서 마음이 지치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붙들어 준 것은 신앙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더 알고 싶다는 학문적 호기심이 저를 일본으로 이끌었다면, 신앙은 그곳에서 긴 시간을 견디고 끝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지탱해 준 힘이었던 것 같아요.”
유학 생활 내내 그를 압박했던 또 하나의 현실적 장벽은 만만치 않은 유학 경비였다. ‘나이 제한’이라는 수많은 장학금의 연령 장벽 앞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연령 제한을 뚫고 다양한 장학금을 직접 유치해 냈을 뿐만 아니라, 대학 연구보조원(RA)과 수업보조원(TA), 나아가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学)의 강사로 강단에 서며 8년 반에 걸친 유학 생활을 오롯이 자력으로 완주해 냈다.
마침내 2018년 11월, 그는 「전시기 여성노동과 보육에 관한 사적 연구」라는 획기적인 논문으로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일본의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여성들의 노동과 보육 실태를 정밀하게 추적한 이 논문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방송대는 내 인생의 모태이자 친정”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교원대 인문사회과학교육연구소 전임연구원, 서울대 일본연구소 선임연구원 등 국내 유수의 연구 기관을 거치며 견고한 연구 업적을 쌓아올리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학문적 고향인 방송대 일본학과의 행사를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방송대 일본학과의 대표적 학술 네트워크인 ‘동아시아사랑방포럼’에도 꾸준히 참석하며 스승, 학우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배움의 정을 나눴다.
“방송대는 오늘의 저를 있게 한 모태이자 언제든 돌아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친정집 같은 곳이죠. 방송대에서 일본학을 처음 접하고, 공부하는 즐거움과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학문의 길을 걸어오지 못했을 거예요. 특히 졸업한 뒤에도 동아시아사랑방포럼에 참석하면서 이경수 교수님과 강상규 교수님, 그리고 동문들을 만나고, 서로의 배움과 성장을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어요. 졸업으로 인연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매개로 오랫동안 이어지는 관계가 방송대 일본학과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적 고향에 대한 그의 애정은 연구와 집념의 성과로도 나타났다. 그는 학과 사제동행의 대명사인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집필에 저자로 참여해 후배들과 지식을 나눴으며, 다수의 우수한 학술 논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특히 그가 출간한 저서 『전쟁, 여성, 그리고 아이들―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의 여성노동과 인구정책』은 2026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며 학계에 다시 한번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러한 그의 행보에 대해 일본학과 이경수 명예교수와 강상규 교수는 “김경옥 동문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직 배움에 대한 집념과 학문적 진정성으로 학업에 전념해 방송대인 전체에 큰 귀감이 됐다”라며, “학자이자 연구자로서 앞으로도 우리 사회와 학계에 중요한 역할을 훌륭히 해낼 것”이라고 아낌없는 격려와 깊은 자부심을 표했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방송대를 졸업한 지 20년 7개월 만인 2026년 9월, 김경옥 동문은 대구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전임교수로 임용됐다. 30대 초반 직장과 학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만학도가 마침내 대학 강단에 서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출발선에 선 그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자를 넘어, 학생들의 가능성을 발굴하고 삶의 지평을 넓혀주는 진정한 길잡이가 되고자 한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인 동시에, 학생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교수가 되고 싶어요. 특히 일본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와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아울러 그는 연구자로서의 향후 과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로드맵을 세워두고 있다. 전시기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후 일본 사회로 문제의식을 확장할 계획이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과 그 자녀들이 전후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갔으며, 국가와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포섭했는지를 다각도로 살펴보는 연구를 이어가고자 한다.
인터뷰의 끝자락,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터와 서재를 오가며 밤늦게 불을 밝히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방송대의 수많은 후배에게 가슴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후배 여러분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때로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고, 다른 사람보다 늦게 출발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배움에는 정해진 시기가 없고, 꾸준히 쌓아 온 시간은 언젠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줍니다. 방송대에서의 공부가 단순한 졸업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분의 인생을 더 넓고 깊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은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해 방송대 학부를 거쳐 도쿄대에 도전해 마침내 대학교수라는 결실을 거둔 김경옥 동문의 삶. 정신적 고단함과 현실의 장벽 앞에서도 결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의 여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방송대인과 배움을 꿈꾸는 이들에게 ‘꿈을 꾸는 한 늦은 때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하고 아름다운 증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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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7s4***
    영문학과에서 단어 하나하나와 씨름하느라 지쳐가고 있는데 힘들 얻고 갑니다.
    2026-10-28 08:55:04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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