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대 명저 106선 해제

 저자가 지적한 '하지(恥)의 문화는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짐작하듯, 이분법적인 분석 자체를 비판하기도 하고, 저자가 온(恩)을 더 강조했는데, 읽는 이들이 하지를 지나치게 일본적인 것의 고갱이로 받아들였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식민지배를 통렬하게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행태를 볼라치면 상당히 의미 있는 분석틀이다.      “다른 적군을 상대할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왜 아니겠는가? 유럽전선에서 힘겨운 전투를 하던 미국에 회심의 일격을 가했고, 이후 태평양에서 벌어진 일전에서 지금까지 싸워온 국가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적의 실체가 사뭇 궁금했을 테다. 전투를 하면 할수록 “얼마나 무서운 적과 싸우고 있는가를 잘 알게 되었다.” 왜 아니겠는가? 패색이 짙어졌는데도 계속 전투를 했고, 포로가 되기보다 차라리 자결했다. 말하자면 문명충돌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군의 피해가 적은 방법을 찾아야 하건만, 이런 식이라면 앞날이 난망했다. “그리하여 1944년 6월경 우리에게는 일본이라는 적에 관한 수많은 의문에 답해야 할 필요성이 시급해졌다.” 미국 국무성의 전시정보국은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 1887~1948)에게 그 일을 맡겼고, 그는 일본을 한 번도 직접 방문하지 않고, 미국에 있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연구해 일본문화의 유형을 밝혀냈다. 일본인을 일본인답게 만든 요소를 분석한 명저 『국화와 칼』이 탄생한 배경이다. 미국 국무성의 의뢰로 탄생한 책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가 한 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제목이 상징하는 바,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는 그 국민이 “칼을 숭배하며 사무라이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 모순, 그러니까 점잖으면서도 호전적이고, 탐미적이면서도 군국주의적이기도 하고, 예의 바르면서도 불손한 모순이 모두 “참이 된다는 말이다.” 왜 아니겠는가? 한 국가 구성원의 에토스를 분석하다보면, 상극적인 요소가 병존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일본인은 그 정도가 특기할 정도로 심하다는 점이다. 일본인의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각자 알맞은 자리를 취하기’이다. 각자에게 알맞은 자리와 위치를 지시해주는 계층적 위계질서가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를 결정했다는 말인데, 자유와 평등을 더 중요시하는 서구적 신념과 전형적으로 충돌하는 부분이다. 일본인의 위계적 질서체계는 가정에서 찾을 수 있다. 가정에서 이뤄지는 예의범절과 엄격한 효의 실천이 이를 입증한다. 이 질서체계는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계층관계에서도 관철됐다. 저자는 일본을 “전체역사를 통틀어 현저한 계급적 카스트 사회”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일본인의 생활양식은 “각자에게 알맞은 권위를 할당하고 각각의 권위에 알맞은 영역을 규정했다.”저자에게 이 점이 중요했던 것은, 일본인이 국제관계도 계층적 위계질서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서였다.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일본은 국제적 위계질서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여겼다. 일본인이 빚어낸 계층적 위계질서의 상상력은 국제질서에도 관통돼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위계질서의 체계에 복속시켜 각 나라에 적절한 위치를 정해주면 된다고 보았다. 일본인은 당연히 여겼지만, 상대 국민은 저항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고 식민지배를 한 민족심성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이 요인은 종전 후 일본의 태도를 짐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질서체계의 맨 윗자리를 미국이 차지한 이상 일본은 그 질서를 받아들여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따를 것이니 말이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푸들’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을 보면 이 분석의 탁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仁)’의 의미가 결여된 일본다른 분석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일본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일본은 7세기경부터 중국의 윤리체계를 받아들였다. 천황에 대한 충과,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본디 중국의 윤리였다. 그런데 중국은 충효보다 상위에 있는 개념이 있으니, 바로 인(仁)이다. 부모가 인해야 하며, 지배자도 인해야 한다. 공자가 군군신신(君君臣臣) 부부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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