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유고연방의「마르코 끄랄례비치」서사시의 경우, 영웅의 출생에서 시련과 고난, 과업의 성취, 죽음과 같은 일대기가 한 시인에 의해 순차적으로 노래되지는 않는다. 마르코 끄랄례비치의 행적과 관련한 일종의 에피소드가 독립된 하나의 연창 단락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 연창본을 합본하게 되면 영웅의 행적과 관련한 다양한 내용의 서사시 전승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영웅 마르코의 출생과 관련된 부모의 결연은 특별하다. 마르코의 부친인 부카쉰 왕은 헤르쩨고비나의 몸췰로 사령관을 부당한 방법으로 제압하고 그의 누이를 아내로 취한다. 능력이 우월한 몸췰로가 패배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여인인 비도사바의 배신과 계략 때문이다. 부당하게 쟁취한 부카쉰 왕의 승리지만 도덕적 비난이 가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몸췰로 스스로가 부카쉰에게 자신의 누이인 예브로시마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권고한다. 승패의 결과가 중요할 뿐 수단의 부당함과 비윤리적 행적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부카쉰 왕이 튀르크인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의 검을탈취당한 상황을 마르코나 세르비아 민족이 바로잡았다고 하는 사실을 널리 드러내어야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되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역전시켜 대응하는 구비서사시의 전략이기도 하다. “사령관 몸췰로가 말했네 / 당신의 소원대로, 부카쉰 왕이시여 / 나의 비도사바를 취하지 못할 것이오 / 비도사바를, 나의 간부(姦婦)를 / 왜냐면 그녀가 당신을 죽일 것이오 / 오늘 나를 당신에게 넘긴 것처럼 / 내일은 당신을 다른 이에게 넘길 것이오 / 나의 다정한 누이를 취하시오 / 나의 다정한 누이, 예브로시마를 / 그녀는 당신에게 어디서든 신의를 지킬게요 / 나와 같은 영웅을 나아줄게요.” 누이를 통해 자신의 혈통을 지속시키려는 의지가 특별한 점이어서 마르코의 출생과 고귀한 혈통에 관한 설정이 고대적 원천에 이어져 있음을 암시한다. 능력의 열세를 넘어서기 위해 선택한 부당한 방식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고 승패의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겨, 승리한 자를 영웅으로 인정하는 설정은 한국·몽골의 창세신화나 주몽·탈해 등과 같은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보편적인 요소여서 이 서사시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출생과 관련한 태몽도 영웅성 강조“그녀와 많은 자손을 낳았네 / 마르코와 안드리아를 낳았네 / 마르코는 외삼촌을 닮았네 / 외삼촌 사령관 몸췰로를…” 마르코는 부카쉰뿐만 아니라 몸췰로의 영웅적 자질을 아울러 물려받은 영웅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부각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마르코가 옛 유고연방 민족의 영웅으로 온전하게 설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데 적극 활용했다. 그런 사정이 있어서 마르코가 아버지인 부카쉰이 아니라 외삼촌 몸췰로 쪽으로 혈통적 친연성을 강조하는 설정은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영웅적 자질은 외삼촌을 견인하고, 역사적으로 튀르크에 대항하는 민족의 정통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카쉰-마르코’로 계승되고 있음을 확정하는 이중의 전략을 구사했다. 마르코의 출생과 관련한 태몽 역시 영웅성을 강조하는 방편으로 널리 활용된다. “므르냐브쳬비치의 부인이 꿈을 꿨네/ 커다란 도시 쁘리즈렌에서 / 꿈을 꿨네, 꿈에서 보았네 / 성난 용을 낳는 것을 / 튀르크인의 머리를 자르고 있는 / 아침에 날이 밝았을 때 / 부인은 부카쉰에게 이야기했네 / 어떤 꿈을 꾸고, 꿈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 부카쉰 왕이 말했네 / ‘진실한 부인이여, 쁘리즈렌의 태양이여! / 꿈속에서 당신이 용을 본 것은 / 용감한 영웅을 낳으려는 것이요 / 그 용이 튀르크인의 머리를 벤 것은 / 그 아이가 튀르크인의 머리를 베는 것이요 / 튀르크인들이 그 아이에게 도시를 나눠줄 것이요 / 바다에 세 개, 다뉴브 강가에 한 개를.’”부카쉰 므르냐브쳬비치의 부인은 몸췰로의 누이인 예브로시마로서 마르코의 모친이다. 영웅의 출생과 관련한 태몽을 통해 마르코가 세르비아 민족의 영웅으로 튀르크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세르비아 민족의 영웅이 될 것임을 예징(例徵)하고 있다. 튀르크의 침략에 맞서 싸운 결과가 무엇인지도 분명하게 예견함으로써 마르코의 영웅적 행적이 특별한 방식으로 펼쳐질 것임을 암시한다. 비범함의 현시, 영웅서사시의 보편적 성격물론 특별한 태몽을 통해 영웅의 자질을 그렇게 드러내었다고 해서 영웅적 자질이 온전하게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마르코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는 제약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이를 넘어서야 시대적 상황에 합당한 영웅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 특별한 설정이 필요했다. 마르코가 대단한 능력을 지니게 된 연유는 비단 혈통에 국한돼 있는 것만이 아니다. 마르코가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현시하는 대목은 영웅서사시의 보편적 성격이다. 예사롭지 않은 혈통을 이어받은 결과 누구도 가지지 못한 능력을 지니게 됐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설정을 했다. “(튀르크)황제의 군대가 도착했을 때/ 모두가 검을 쳐다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