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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 작품에서

무한경쟁 속에 흙수저와 금수저가 나뉘고,

때로는 가짜와 진짜의 경계마저 전복된

21세기 한국이 자꾸 아른거리는 것이

 ‘웃픈’ 현실로 다가온다.


중국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가까운 나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타자의 땅이다. 때때로 코로나19 사태로 격해진 혐중 감정이 목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도 ‘이곳’처럼 사람이 사는 곳이다. 시장과 정치의 시선을 잠시 내려두고 그곳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
5월 대학로 일대에서 개최되는 제41회 서울연극제에 중국 연극이 1편 선정됐다. 중국 국가1급 극작가인 사예신(沙葉新) 선생의 1979년도 대표작 「만약 내가 진짜라면」이다. 1979년 중국은 극좌적인 계급운동이었던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을 눈앞에 두고 있던 사회 전환기였다. 이 당시 중국은 새롭게 다가올 새 시대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약동하던 시대였다.
연극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간의 침묵을 깨고 중국이 통과해온 순탄치 않은 시간들을 담아낸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만약 내가 진짜라면」 또한 그 중 한 작품이다. 당시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 리다(李達) 장군의 자제를 사칭해 많은 사람들을 사기친 사건이 있었다. 사예신 선생은 그 청년을 인터뷰하고 이 작품을 집필했다.

블랙코미디 「만약 내가 진짜라면」은 문화대혁명 시기 상산하향(上山下鄕)운동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상산하향운동은 정신 개조를 위해 젊은이들을 농촌에 보내 노동에 종사하도록 한 운동이다.
1970년 중반에 접어들면 농촌의 현실에 실망하고 좌절한 지식청년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간부의 자제들은 여러 방법을 동원해 도시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권력과 인맥이 없는 지식청년들은 대부분 변방 농촌지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만약 내가 진짜라면」의 주인공 리샤오장 역시 상산하향운동으로 농촌에서 생활하던 지식청년이다.
이야기는 도시로 올라가고 싶었던 리샤오장이 고위간부의 자제를 사칭하면서 시작된다. 그의 거짓신분은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연극 한 편을 보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은 종국에 그가 그렇게 원하던 도시 복귀를 가능하게 만든다. 한편 그가 여자 친구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든 가짜 마오타이주는 상관의 환심을 사려던 사람들의 손을 거쳐 점점 더 고위계층에게 전달된다. 특권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입체적이고 치밀한 짜임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것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낯선 역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남의 나라 중국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무한경쟁 속에 흙수저와 금수저가 나뉘고, 때로는 가짜와 진짜의 경계마저 전복된 21세기 한국이 자꾸 아른거리는 것이 웃픈 현실로 다가온다. 사예신 선생은 작품을 이렇게 시작한다.
연극은 삶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이 연극도 살아 숨 쉬는 실제 삶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막이 오르기 전 실제 삶에서 이 연극을 시작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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