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세상을 이해하는 데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세상을 해석하는 다양한 해답을 찾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는 뇌를 퇴화시키는 교육은

인간교육의 틀을 벗어나기 때문에
참교육이라 할 수 없다.

 

 

인류의 책이 불탔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한 권의 책이다. 빅토르 위고는 구텐베르크 활자 이전엔 건축이 인류의 기억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책 귀퉁이에서 종지기인 콰지모드를 찾아냈다. 그를 한참 올려다보며 어릴 적 시골 교회에서 종을 치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성당 입구로 향했다. 문은 세 개. 맨 왼쪽의 ‘성모의 문’ 좌측에 있는 조각상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의 목을 양손에 들고 있다. 생드니(Saint-Denis) 신부다. 그는 로마군의 개종 강요에 맞서서 파리 초대 교구장의 신앙심을 지키며 순교했다. 그가 순교한 곳이 지금엔 직업 화가들의 집합소로 변했지만, 이름만큼은 신앙인들의 ‘순교 산(Montmartre)’이 됐다. 그는 여기서 6km 남짓 떨어진 수도원까지 자신의 잘린 목을 든 채 걸어갔다고 한다. 그가 걸었던 길이라고 해서 지금은 생드니 거리다.

생드니출처=wikimedia commons 신부의 조각상을 머리와 아이폰에 저장했다. 엑상프로방스를 여행하는 내내 그를 생각했다. 필자는 삼대 기독교인이어서 모태 신앙인이다. 직분을 맡아서 교회 일을 하라는 요구를 받을 때면 “모태요(‘못해요’의 발음)”라고 말하곤 하는 지경이니 종교인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다. 게다가 매일매일 죄에 패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유구무언이다. 주머니 속의 아이폰은 백과사전, 사진기, 우체국, 전화번호부, 지도책이다. 더욱이 강의 노트와 참고서를 저장한 도서관 역할까지 한다.
우리는 두 개의 뇌를 지니고 산다. 하나는 생각하는 뇌, 다른 하나는 기억하는 뇌 또는 저장하는 뇌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는 ‘엄지 세대’의 등장으로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를 낙관한다. 하지만 기억의 뇌가 강력해질수록 생각의 뇌는 퇴화한다.
생드니 신부는 자신의 손에 든 머리로 불굴의 신앙심을 오래도록 후대에 전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를 가슴에 품는 이유다. 우리는 두 개의 뇌를 가지고 무엇을 이루고 있는가? 기억의 양이 똑똑함의 척도일 순 없다. 저장의 기술이 지혜로 연결되지 않는다. 기억은 인공지능의 몫이 될 것이다.
대학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뇌에 과거가 잘 입력됐는지 확인하는 기억력 테스트를 실력을 평가하는 제일 척도로 삼는 관행을 포기해야 한다. 스페인 출신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가 말했듯이, 기억 그 자체는 몸속의 소문일 뿐이다. 기억은 실제를 가감하거나 왜곡해서 형성된 소문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데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기에 세상을 해석하는 다양한 해답을 찾는 게 중요하다. 그 해답은 창의적인 해석으로 나타날 때 감동을 준다. 이런데도 교육기관이 평가 도구와 기술에 포획돼 학생들을 ‘정답 찍기’ 평가로 내모는 데 골몰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생각하는 뇌를 퇴화시키는 교육은 인간교육의 틀을 벗어나기 때문에 참교육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배움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세상을 보며 생각하고,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하며, 그 행동으로 인해 원하는 나를 형성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변화를 꾀하지 못하는 교육이나 배움, 이론과 지식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이를 가리켜 토플러는 ‘무용 지식(obsoledge: obsolete와 knowledge의 합성어)’이라고 했다.
지난 1월에 연구실에 있던 책들의 공동묘지인 서가의 책들을 납골 처리했다. 책이 많다고 생각이 깊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색의 공간을 넓혀 생각의 깊이와 폭을 넓히려는 소망이 나를 이끌었다. 책을 버리다 보니 잘 정돈된 나를 남기고 싶은 마음에 남의 생각과 사람까지도 정돈하고 싶었다. 세네갈에서는 한 사람이 죽으면 그분의 도서관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기억과 의식, 세상을 보는 관점, 삶의 태도와 가치 등이 순간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통해 기억을 유지하고 전달할 수 있다지만, 기억이 모두 정확하고 옳은 게 아니다. 더군다나 책에 담긴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다. 상상력에 상응하는 게 시(poetry)라면, 기억에 상응하는 학문은 역사학이다. 역사학에서도 연구방법에 따라 역사적 기술내용이 달라지는 이유는 밑바탕인 기억에 접근하는 관점의 변화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아벨과 카인을 통해 두 종류의 인간 조건이 인류 최초의 생활방식인 ‘양치기의 생활방식’과 ‘농부의 생활방식’에 비유된다. 시간적 여유가 많은 양치기는 양이 풀을 뜯는 동안 하늘을 명상했다는 점에서 명상적 삶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책에 담긴 어휘는 관념의 이미지요, 문자는 어휘의 이미지일 뿐이다. 상상과 사색은 우리 주머니 속에 든 ‘외장 뇌’가 아닌, 우리 몸 본체에 붙어 있는 뇌의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상상은 마음의 공기다. 사색에 있어서만 인간은 신이 된다. 행동과 욕망에서는 인간은 환경의 노예일 따름이다. 하늘을 우러러 상상과 사색의 창을 열어야 한다. 상상과 사색이 기억의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는 창의적인 삶으로의 이정표를 제시할 것이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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