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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 회사 초창기에 홍보팀의 한 직원이 기발한 광고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속에다 자기 회사 제품 광고를 집어넣자는 것이다. 이게 뭐가 기발하지? 기발한 이유는 우리가 극장에 가서 본영화를 보기 전에 접하게 되는 각종 제품의 광고와 같은 형태가 아니라, 본영화 속에다 제품 광고를 하자는 것 때문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영화를 보는 것은 수많은 필름이 연속적으로 돌아가면서 정지된 필름의 사진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어떤 장면을 잠깐 인식할 수 있으려면 1초당 24프레임의 필름이 돌아가야 하는데, 이 24프레임의 필름 다음 매 25번째 필름에 코카콜라 광고를 넣고 영화를 돌리게 되면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올 뿐 코카콜라 광고를 인식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왜 갑자기 코카콜라가 먹고 싶지?”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매 25번째 필름에 장착된 코카콜라 광고를 인식할 수는 없었지만, 그 광고는 모두 대뇌에 전달되어 그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사건은 인간이 나쁜 마음을 먹고 인간을 조작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인데, 인간 존재에 대한 신뢰와 불신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으로 기억될 만하다. 이후 이와 같은 형태의 광고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광고라는 비판과 함께 그런 종류의 광고를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정신분석학자 에릭슨(E. Erikson)에 의하면,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겪게 되는 심리·사회적 위기는 신뢰감을 형성하느냐 불신감에 사로잡히느냐 하는 것이다. 유아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 주고 온갖 불편함을 보살펴주는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갖는 데서 시작하여, 자신이 그런 보살핌을 받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라는 자신에 대한 신뢰감, 자기는 단지 울기만 할 뿐인데도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이 세상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는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해나간다.

 

하지만 불신감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관성이 없는 양육자의 태도 때문에, 어제 받은 대접과 오늘 경험하는 대접이 일치하지 않게 되면 불신감이 싹튼다. 그런데, 불신감은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전혀 필요 없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남을 못 믿는 마음이 전혀 없다면 매일 속고 살 수도 있다. 공부할 때에도 학자들이 얘기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학문의 발전은 없다. 그러나 신뢰와 불신이라는 심리·사회적 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신감보다는 신뢰감을 더 많이 쌓아나가야 하며, 그 결과 ‘희망’이라는 덕성을 습득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와 인류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바이러스의 가장 위험한 특징은 이른바 ‘무증상 감염’에 있다. 아무런 증상이 없는데도 감염되었거나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무증상 감염’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불신을 유발하는 측면에서 다른 질병보다도 더 유해하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신뢰를 더 많이 형성하고 회복하는 것이다. 서로서로 보살펴주고,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희망을 가꾸어 나가는 길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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