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돈 버는 건 기술, 돈 쓰는 건 예술이다.” 한 농원대표가 서울의 모 대학에 거금 30억 원을 기부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이쑤시개조차 8개로 쪼개서 사용할 만큼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 돈을 예술처럼 썼다. 내 돈을 남을 위해 쓴 모범이다.


돈은 현악기와 같다.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이는 불협화음만 낼뿐이다. 플라톤은 돈을 가리켜 파르마콘(pharmakon), 즉 독(poison)이자 해독제(remedy)라고 했다. 우리 주변에서도 돈 때문에 파멸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인간욕망의 정점에는 돈 중독이 자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욕망의 목표 자리를 수단이 차지하는 꼴이다.


서머셋 모옴은 『달과 6펜스』에서 돈이란 육감과 같아서 그것 없이는 오감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육감을 다 믿지는 못하지만 오감이 작동하지 않고선 행복을 느끼지도 못하기에 돈에서 자유롭기는 여간해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돈은 최선의 하인인 동시에 최악의 주인이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선택의 자유』에서 돈 쓰는 네 가지 방법을 말했다. 첫째, 내 돈을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여기에는 윤리와 도덕적인 의식이 뒷받침돼야 정당성을 얻는다. 내 돈이라고 함부로 아무 데나 쓴다면 공동체로부터 지탄받기 쉽다. 둘째, 내 돈을 남을 위해 쓰는 일이다. 따뜻한 자본주의의 실천이다.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이 지향할 종착점이기도 하다. 앞에서 소개한 농원대표가 이에 해당한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존경받는 이유다. 셋째, 남의 돈을 나를 위해 쓰는 방법이다. 도적(盜賊)의 실천이다. 이 경우도 오래 가지 않아 바로 횡령과 유용의 민낯이 들통난다. 기부금이나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되는 공익단체나 시민단체가 범할 수 있는 잘못이다. 넷째, 남의 돈을 남을 위해 쓰는 일이다. 남의 돈을 쓰면서 흔히 돈을 아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낭비와 비효율이 생긴다. 정부의 예산집행은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공직자에게 효율과 절약 그리고 책임성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행정기관의 예산집행 과정에서 자칫 투명성과 정직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책임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드시 발생한다. 한때 정부의 예산감시를 위한 시민단체의 활동이 활발하듯 하다가 요즘에 와서는 조용하다. 국민과 시민을 대표한다는 의회 의원들의 공약에도 돈 쓰는 방법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유권자들이 할 수 없다는 것이 투표과정에서의 문제다.

 

돈은 현악기와 같다.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이는 불협화음만 낼 뿐이다.

플라톤은 돈을 가리켜 파르마콘(pharmakon),
즉 독(poison)이자 해독제(remedy)라고 했다.


돈에 관한 한 모든 사람이 같은 종교를 믿는다. 우주적 신을 믿는 전통적 종교를 ‘큰 종교’라 하고, 돈을 믿는 종교를 ‘작은 종교’라고 한다. 특히 유대인들은 돈을 주머니 속의 작은 종교라고 부른다. 모든 스킨십의 궁극적 경지는 돈을 만질 때 온다고 믿는다. 유대인은 돈은 버는 게 아니라 불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학교에서는 돈 버는 기술을 주로 가르친다. 더 나아가 요즘 대학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가는 형국이다. 이게 단지 신자유주의의 사조 때문만은 아니다. 종교조직에서도 돈을 밝히는 게 예삿일이 된 지 오래다.


학자들에 의한 소득과 교육의 상관성을 밝히는 연구가 넘쳐난다. ‘배워야 산다’가 아니라 ‘배워야 번다’의 공식을 주입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소득이루브르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환전상의 아내는 지금 세속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뒤쪽 찬장에 있는 불 꺼진 양초는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과 인간이 죽으면 이러한 세속의 물질적인 일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늘어난다고 반드시 행복 수준이 같이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다. 연 7만5천 달러까지는 돈이 많을수록 행복이 늘어가지만, 그걸 넘으면 오십보백보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돈이 주는 행복감의 유효기간을 2년 정도라고 했다. 그 뒤로는 애초의 행복감이 40% 수준으로 감소한다는 것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지만, 돈이 많으면 행복할 가능성은 커진다. 돈으로 행복을 사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고, 이야깃거리를 남기는 소비를 하면 된다. 즉, 사연이 담긴 구매를 경험한다면 행복감을 얻게 된다. 이 대목에서 예술처럼 돈 쓰는 법에 대한 교육이 강조돼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기술과 예술은 동전의 양면이다. 기술은 예술에 봉사할 때만이 정당성을 얻는다. 예술 없는 기술은 사막처럼 황량하고 거칠다. 거기엔 인간의 정과 온기가 없다.


돈을 벌고 쌓아두면 근심과 걱정도 그만큼 는다. 돈을 버는 궁극적인 이유는 돈을 씀으로써 얻게 될 자유 때문이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가 ‘돈은 주조된 자유’라고 했는지 모른다.


‘돈 쓰는 건 예술’이란 말의 원전은 한 목사가 거부 록펠러에게 한 말이다. 이후 록펠러가 대학과 병원, 사회단체 등에 엄청난 액수를 기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 대학 본관 벽면에는 발전기금을 낸 이의 명패가 매달려 있다. 60만 졸업생 규모를 생각하면 돈 잘 쓰는 이의 명패로 채워질 빈자리가 넓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2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