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아이를 등에 업고 나가서 방송대 교재를 구입해다 줬어요. 강의를 녹음 해서 퇴근하면 들을 수 있게도 해줬고요. 그 덕에 방송대 영어영문학과를 마칠 수 있었죠. 늘 고맙게 생각해요.”
경찰청 외사국 외사1과 러시아대사관 담당, 서울청 조폭수사대장, 경기청 의정부 생활안전과장, 용산경찰서 청문감사관……. 한양대 사회교육원(현 미래인재교육원)에서 9년 동안 경찰행정학을 강의했던 김종옥(71세) 교수의 이력은 끝이 없다. 내로라하는 관록을 지닌 그가 방송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것은 2002년, 입학 한 날로부터 꼬박 18년이 걸렸다. 매번 승진 시험에 걸려 학과 공부가 뒤로 밀렸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미 FBI 수사원칙』도 번역
그가 영어와 친숙해진 계기는 방송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기 전, 초임 근무지였던 홍성경찰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관내 광천 벽계리에 ‘Reno Hill’이라는 미군 항공방어부대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던 한 중학생이 미군 차량에 치어 현장에서 즉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어머니가 현장에 달려와 울부짖었지만 수사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SOFA(주한미군지위협정)에 의해 지휘보고만 하면 된다는 미군측 답변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통역관이 있었지만
자신을 미군의 월급 받는 사람으로만 규정하면서 원론만 되풀이하더군요. 그때 저도 국민적 공분에 공감했고, 감정도 끓어올랐어요.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죠. 미군 부대 최고 책임자와 교섭해 영어 스터디 그룹을 결성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경찰 퇴임 후 2010년부터 9년동안
한양대에서 전공 분야인 ‘경찰행정학’
강의하며 후진 양성
초임 시절 미군 사건 접하면서
영어 공부 시작
방송대 영문과 18년 만에 졸업
다시 중국어에 도전 중
재능기부 한다는 마음으로
남 돕기 위해 공부
이후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을 인정받아 경찰청 외사국에 근무하면서 해외 국제세미나에 자주 참석하기도 했다. 미 연방수사국 즉 FBI의 수사 매뉴얼을 소개받아 『미 FBI 수사원칙』을 번역한 것도 이 무렵이다. “매뉴얼 원문은 1천 페이지가 넘어요. 제가 번역한 분량은 1/3 정도죠. 제가 번역에 매달린다고 해도 80대나 돼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후배들이 그 작업을 계속해줬으면 좋겠어요.”
2009년 12월 31일 서울 강동경찰서에서 정년을 맞은 뒤 그는 지인의 소개로 한양대 사회교육원에서 경찰행정학을 강의하게 됐다. 물론 이 자리는 저절로 된 것은 아니었다. 경찰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조직범죄와 강력범죄에 대한 실체 파악, 검거 방법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었다. 정년이 임박해 오던 2004년, 그간 쌓은 지식을 어떻게 하면 후배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한성대 대학원에서 경찰행정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이어 2010년 2월 정책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경찰 현장에서 퇴임하고 곧바로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나설 수 있었던 기회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김종옥’의 삶에서 공부는 이렇듯 늘 어떤 필요성에서 요청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공부는 자신을 위한 이득을 겨냥하지 않은, 순수한 공부였다. 영어 공부에 나선 것도,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2019년 3월 방송대 중어중문학과 3학년에 다시 편입한 것도 모두 ‘순수한 공부’라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한국 찾는 중국인 안내하려고…”
“65세 교수정년을 맞아 이 나이에 무엇을 할까 고민이 되더군요. 딸과 사위가 중국에 거주하고 있어 중국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현지인들과 영어로는 도무지 소통할 수 없더라고요. 중국어의 필요성을 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는 시내 중국어학원을 여러 곳 돌아다녔지만 신통치 않아 다시 모교를 찾았다. 70세에 중국어 공부를 위해 방송대를 다시 찾은 그는 ‘실버 장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업에 매진, 졸업에 필요한 21학점만 남겨둔 상태다.
“중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있어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거리에 중국인이 덜 보이지만, 그래도 시내 병원이나 큰 쇼핑몰에 가면 중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거든요. 중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안내해주고 싶어요. 고궁이나 각종 문화유산, 명동이나 인사동 등지에서 만나게 되는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제대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죠. 일종의 재능기부 같은 거랄까요.(웃음)”
그는 지금도 어김없이 아침 6시면 일어나 집 근처 효창공원을 산책하면서 당일 공부할 내용을 예습한다. 그의 어학 공부 비결은 ‘입과 귀, 손의 반복’으로 정의할 수 있다. “어학은 결코 단숨에 잡을 수 없어요. 저는 휴대폰으로 그날 배울 교재 부분을 찍어서 먼저 1시간 반 동안 외웁니다. 그런 뒤에 방송 강의를 듣고, 또 따라 써보고 하는데요. 지금은 방송교재 『중국어 중급회화』(오문의 외 공저)를 작년 7월 10일부터 시작해서 올해 7월 11일까지 11회째 듣고, 읽고, 쓰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인데, 귀가 거의 뚫려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는 지난 학기 6과목 가운데 5과목을 A+을 받았다. 「중한번역연습」만 B+가 나와 속상하다고 말했다.
김종옥 교수의 꿈은 거창하지 않았다. 시민을 위해 영어를 좀더 잘해보려고, 후배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잘 알려주기 위해서……. 그의 꿈은 이렇듯 소박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도 시민을 위해 영어와 중국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방송대는 ‘내 인생을 바꾼’ 대학
그는 방송대의 슬로건 ‘내 인생을 바꾼 대학’에 백분 공감하고 있다. 누구나 공부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평생 공부할 수 있으며, 시간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효율적인 자기 공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정말 방송대는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더라고요. 방송대를 선택한 걸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후년이면 개교 50주년을 맞는데, 그동안의 부침을 이겨내고 굴지의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애써주신 류수노 총장님과 교직원님들, 방송대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학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남에게 뭔가 베풀 수 있는 공부에 남은 시간을 더 쏟겠다는 그의 인생 후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