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마로니에

어린 시절, 좋아하는 분야의 쇠락을 지켜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좀더 오래, 좀더 높은 퀄리티로 즐기려면 그만큼의 노력과 소비가 뒷받침돼야 함을 깨달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야 마냥 좋다는 이유 하나로 하나둘씩 사 모으고 있던 만화책인데 중학생쯤 되니 시장의 축소를 이유로 가격이 오르고, 잘 나오던 잡지가 갑자기 휴간하거나 단행본까지도 절판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저절로 익힌 태도였으리라. 다음 이야기를 남겨 둔 채 끝을 맺지 못한 작품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작가의 사정 때문이라면 욕이라도 했을텐데….


만화로 시작한 취미생활 덕분인지 내 주변에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여 파고드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동아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널리 알리고 퍼뜨리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좀 더 잘 알고자, 혹은 알리고자 관련 분야를 깊고 넓게 파고드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다양한 전공자를 한자리에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학과 학생이었던 나는 약학과 선배와 당시 생경하기만 했던 포토샵을 공부하고, 화학과인 선배와 전쟁사를 읽으며 전자공학과 동기와 그림을 그렸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재미있는 조합이며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좋아하는 법을 배운 시기가 아니었을까 자평하지만 단순히 타인의 관점에서 남다른 취향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고 설파하는 과정은 설왕설래 복잡한 토론이기도 했고, 이해할 수 없는 취향에 대한 납득이었으며 다른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데 그다지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으며, 그저 빠져드는 것만 인정해도 됐다. 한껏 좋아하다가 싫증이 나더라도 파고드는 방법과 지식은 남았다. 이런 활동의 효용도 굳이 첨언하자면 다종다양한 학문 분야를 접하는 게 낯설지 않아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던 듯하다.


좋아하는 것을 잘 이어간다면 연령대와 매체를 엮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매체의 수준은 콘텐츠의 질에 달린 것이고, 콘텐츠의 질이 만족스럽다면 나의 취향을 위해 적절한 소비를 유지할 수 있다. 이 태도를 나는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내 책상, 내 휴대전화, 내 집 곳곳이 나의 취향과 좋아하는 것을 위한 공간이며 그 좋아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내 일상의 행복과 만족도가 유지된다면 적절한 지출은 오히려 큰 효과를 보는 셈이다.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것들은 여전히 좋다. 요즘은 새롭게 좋아하는 것도 생기고 있다. 몇 년간 카카오 친구들의 작은 이모티콘 동작에도 캐릭터의 스토리텔링을 즐겼다. 작년 이맘때에는 「젤다의 전설」을 하며 게임 속 초록 풍경과 닌텐도 스위치 기기의 구현 능력에 감탄하며 콘텐츠를 즐기는 기술과 방식의 확대를 실감하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느꼈다. 작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유튜브 플랫폼의 위력과 예측할 수 없는 캐릭터의 생동감이 결합하면 어떤 시너지를 일으키는지 감탄하며 ‘펭하’를 외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꾸준히 생기고 있다는 것만으로 언택트 시대를 잘 보낼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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