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상 뒤에는 완강한 구조가 존재해
고령화는 사회개혁 추진할 수 있는 기회
이 글은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이자 고령화 특위 공동위원장이던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2018년 5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http://www.betterfuture.go.kr)에 게재한 칼럼 「고령화와 고령사회는 또한 기회다」의 일부다. 이 글에서 김 교수는 노인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이와 같은 현상을 만들어낸 과거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 ‘저출산’이나 ‘고령화’라는 현상만을 치유하려는 시도는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고 경계하고 있다. 김 교수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의 유효성 때문에 칼럼의 일부를 소개한다.
첫째, 노인 인구, 고령화, 고령사회를 문제와 부담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자. 거의 모든 것이 ‘경제화’하는 마당이니 경제가 우리 생각과 행동을 압도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성장잠재력, 일자리, 소득 등이 핵심 논의 사항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정치 공동체가 장기간 지속하고 번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무엇이 문제와 부담, 특히 경제 문제를 대신할 수 있을까? 구체적 내용에 앞서 ‘가치’를 강조하고 싶다. 어떤 정책과 대책도 윤리적(또는 정치철학적) 기반 없이는 작동하지 않으며,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도 암묵적인 틀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떤 가치를 바탕으로 정책과 대책을 마련할 것인가? 무엇이 이 시대를 관통하는 윤리적, 정치철학적 지향이 되어야 할 것인가?
나는 이 시기 최소한의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가 ‘권리(또는 인권)’라고 생각한다. 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어떤 정책과 대책도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실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 그 어떤 사람도, 자격에 무관하게, 최소한의 품위 있는 생활과 삶의 질을 누려야 한다는 인권의 보편성 원칙이 ‘문제와 부담’이라는 시각을 대신해야 할 것이다.
둘째, 고령화와 고령사회는 현상이자 구조다. 노인이 인구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고 고령화 속도가 어떻다고 할 수 있으니, 또는 노인 빈곤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산출할 수 있으니, 노인인구와 고령화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압도적 현상임이 틀림없다. 당장 그 현상들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울러 고령화와 고령사회는 또한 구조이기도 하다. 노인 빈곤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며, 돌봄이 필요할 정도로 기능이 떨어지는 것도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현상의 상관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로 보면, 우리가 보는 현상의 배후에는 오래되고 완강한 우리 사회의 구조가 존재한다. 지난 시기 모든 연령군에 걸친 교육과 고용, 경제활동과 소득, 건강관리와 의료, 사회관계와 문화 구조가 지금 고령층의 문제를 산출하며, 또한 미래 고령사회의 특성과 문제를 결정한다.
현상의 배후에 구조가 있을진대, 현상만을 다루는 것은 미봉책을 벗어나기 어렵다. 20~30년 후의 노인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 청장년의 소득과 고용이 중요하며, 이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고령사회 대책이라 말하기 힘들다. 해야 할 일은 모든 연령층을 포괄하는 구조 개혁이며, 그런 의미에서 고령사회는 본격적인 구조 개혁, 사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