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20세기가 21세기에게 - 영문학]

김용규 부산대 교수·영어영문학과 -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혼종문화론: 지구화 시대의 문화연구와 로컬의 문화적 상상력』,『문학에서 문화로: 1960년대 이후 영국문화이론의 정치학』이 있고,『백색신화』 등을 번역했다.

오늘날 영문학(연구)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 이유는 영문학의 외연과 내포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외연이 달라지면 내포도 달라지는 법, 세계가 하나의 지구로 묶이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모든 국가의 문학들이 영문학의 테두리에 포함되면서 영문학의 외연은 크게 확장됐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창조적 기여에 따라 영문학의 내포적 함의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됐다. 가령, 아프리카 작가인 치누아 아체베나 응구기 와 시옹오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J.M.쿳시의 문학도 오늘날 영문학의 테두리에 포함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문학이라는 기표는 더 이상 영국문학과 미국문학만을 기의로 갖지 않는다.


‘영문학’이란 무엇인가?

영문학의 정의가 어려운 것은 영문학의 탄생과정도 한몫 했다. 우리는 영문학이 잉글랜드의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같은 유명 대학에서 생겨나 영국문화의 명성과 패권에 힘입어 전 세계로 확장해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진실과 거리가 있는 얘기다. 영국 본토에서 영문학은 상당 기간 라틴어와 고전적 문헌연구에 비해 주변적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영문학이 현재까지 영국과 미국의 영향 하에 세계적 위상을 누린 것은 사실이지만 영문학의 형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8~19세기 스코틀랜드나 19세기 인도와 같이 대영제국의 (반)주변부였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가 영문학을 가르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스코틀랜드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지방적 후진성과 편협성을 극복하기 위해 영문학 교육을 실시했고, 영국에 병합된 인도에서도 피식민지인들은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문화통치의 차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던 것이다. 잉글랜드에서 영문학 교육이 정착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 가능했다. 영문학의 시작에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중심과 주변, 제국과 식민 간의 문화적 대위법이 작동하고 있었음은 눈여겨볼 바다.
이런 현상은 향후 영문학의 전개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영문학은 영국 국민문화의 우수성이 일방적으로 전시되는 장이 아니라 제국의 중심과 주변에 존재하던 다양한 문화세력들 간의 경쟁과 경합이 펼쳐져온 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영문학의 정의와 범위는 역사에 따라 항상 가변적이고 열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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