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도서정가제 폐지 주장’ 문제 있다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이 더 많이 출간되어야 하고

독자가 어디에서나 책을 볼 수 있게 서점이 더 늘어나야 한다.

이것이 우리 출판계가 생각하는 독자의 ‘독서권’이다.

도서정가제를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만 보지 말고

문화의 논리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20년 여름은 동네서점주들에게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두 달 넘게 이어진 장마나 코로나19의 수도권 확산으로 서점에 손님이 끊겨서만이 아니라 갑자기 닥친 도서정가제 개악 사태 때문이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1년 동안 출판, 서점, 전자책, 소비자 단체 등이 문체부에 모여서 16차례 토의를 하며 합의안을 만들었으나 정부가 국민청원과 소비자 후생 등을 이유로 합의안을 인정하지 않고 재검토에 나섰기 때문이다. 법 개정 절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0월 초까지 이 개정안에 대한 정부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한국출판인회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만약 이 법안이 정부의 안대로 통과되면 전자책뿐 아니라 종이책 시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고 빠른 시일 내에 동네서점 1,000곳이 문을 닫게 된다. 이런 기준은 면적 50평 미만의 작은 서점만 따진 것이다. 서점의 줄폐업은 출판사의 경영을 악화시킬 것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새 책 출간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게 할 것이며 이는 저자들의 신간 출간 기회 감소로 이어질 것임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결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 생태계의 최종 소비자인 독자들이 읽을 책이 줄어들 것이다.

 

소설을 쓰자는 게 아니다. 지난 2014년 구간의 무분별한 할인 등을 줄이고 모든 도서를 10%+5%(경제상 이익)까지의 할인으로 규정한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었다. 6년이 흐른 지금 신간은 33%가 증가해 해마다 8만 종이 넘는 새 책이 서점과 도서관에 진열되고 작은 출판사는 2만 곳이 증가했으며 독립서점 500곳 이상이 새로 문을 열었다. 2014년 이전에는 사그라져 가던 독서의 불씨가 도로 되살아나 지금은 서서히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다. 저자와 출판사와 서점들이 가까스로 피워낸 희망의 불꽃을 정부가 나서서 지켜주지 못할망정 소비자 후생이라는 미명 아래 짓밟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소비자 후생이란 다름 아닌 ‘추가 할인’과 도서정가제 ‘예외’, 웹 연재물 ‘유예’ 등의 조항인데 하나같이 도서정가제를 완화하려는 시도로, 나비효과처럼 약간만 완화해도 작은 서점들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똑같은 전자책으로 ISBN을 부여받고 부가세 면세를 받는 웹툰·웹소설만 적용을 유예하면 다른 전자책들은 설 자리가 좁아진다. 다른 전자책도 같이 도서정가제 예외로 두거나 추가 할인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이번엔 할인율이 적은 종이책이 죽는다.

 
도서정가제에서는 경제 논리를 내세워 예외 조항을 두면 연쇄적인 위기를 부르게 마련이다. 이는 1977년에 시작해 43년 넘게 이어져 온 정가제의 역사가 증명한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서점에 할인 규제를 풀어주면서 동네서점의 절반인 2천 곳 이상이 문을 닫았고 오래된 책을 추가 할인했더니 신간은 대폭 줄어들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의 국가에서 도서정가제를 정부가 나서서 지키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여기 방송대가 있는 혜화동에는 대학보다 오래된 서점이 있다. 혜화동 로터리를 67년 넘게 지키고 있는 ‘동양서림’이 그 주인공이다. 화가 장욱진 선생의 부인 이순경이 1953년에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도 등재됐는데 재작년 동양서림 안 계단 위에 시인 유희경의 시집 전문서점 ‘위트앤시니컬’이 세 들어오면서 전통과 젊은 서점의 콜라보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올 봄에 그곳을 찾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동네서점의 발전을 기원하며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공약하고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 결정의 더 위 단계에서 반대한다며 민관 합의안을 부인하고 서점을 위기로 몰아넣을 도서정가제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유희경 시인은 정부의 오판으로 도서정가제가 무너지면 동양서림도 위트앤시니컬도 모두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할인은 언제나 달콤하고 ‘소비자’는 왕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책의 세계에서는 조금 달라서 독자가 우선이다.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이 더 많이 출간되어야 하고 독자가 어디에서나 책을 볼 수 있게 서점이 더 늘어나야 한다. 이것이 우리 출판계가 생각하는 독자의 ‘독서권’이다. 도서정가제를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만 보지 말고 문화의 논리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1천 곳의 동네 서점과 1만 개의 작은 출판사가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진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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