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저자를 만나다

2012년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서울대출판문화원)을 시작으로 2018년 『에세이, 셰익스피어를 만나다』(홍익출판사)를 거쳐 올해 『문화, 셰익스피어를 말하다』(지식의날개)로 ‘셰익스피어 3부작’을 완간한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72세). 서울법대 학장, 한국헌법학회장, 제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국제인권기구조정위원회(ICC) 부의장을 역임했고, 정년퇴임 후에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인권법률가협회(ICJ)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여성권익디딤돌상과 대한민국법률가대상(인권 부문)을 수상했다. 다양한 저술 활동으로도 유명한 그는 이문열 작가, 조영래 인권변호사 등 당대의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인물 평전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문학과 법학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어서고자 했던 것으로 더 알려져 있다. 서울대 법대 재직 시절에는 「법과 문학」 강좌를 개설해 인문학적 소양과 통합적 지성을 배양하는 데 힘썼다. 그런 그가 셰익스피어 3부작을 집필한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에 매달린 세월이 어느덧 40년. 그 결과물로 내놓은 게 3부작 완결인 셈이다. 그렇지만 고희(古稀)를 넘긴 그의 인생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셰익스피어를 3부작으로 털어낸다는 건 어불성설. 셰익스피어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는 어떻게 셰익스피어에 빠지게 됐을까? 셰익스피어를 통해 오늘의 한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초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9월 22일 오후, 셰익스피어를 사랑한 법학자, 안 명예교수의 자택을 찾았다.

 

‘셰익스피어 3부작’을 드디어 완결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첫 책이 2012년에 나왔을 뿐이지 그 구상은 훨씬 오래전부터였어요. 원래 셰익스피어 법률 주석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던 게 1980년대 중반쯤이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굉장히 다양하지만,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하는 데 있어서는 다소 척박했던 우리나라에 뭔가 기여할 수 있다면, 내 전공인 법학과 셰익스피어 작품이 만나는 법률 주석서를 쓰자고 작심했던 거죠. 계속해서 자료를 모으고, 관련 강의도 하면서 지내다가 본격 법률 주석서를 내기 전에, 조금 쉽게 읽히도록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서 쓴 것이 이번에 출간된 『문화, 셰익스피어를 말하다』로 완결된 겁니다.

 

처음 셰익스피어를 접한 건 언제, 어떤 작품이었나요?
억지를 부리자면 초등학생 때 영화 「햄릿」을 본 거였어요. 집에 손님이 오셔서 어머니가 극장 구경을 시켜주셨거든요. 햄릿이 뭔지도 몰랐던 땐데, 포스터에 한 남자가 칼을 들고 있길래, 칼싸움 영환 줄 알고 좋아서 따라나섰죠. 웬걸 영화가 시작하고 보니 왕자가 잠옷만 입고 말만 많이 하며 설치더라고요.(웃음) 그 사람이 로렌스 올리비에라는 건 나중에나 알게 됐고요.

 

그러면 셰익스피어가 좀더 강하게 다가온 때는요?
중학생 때까지도 밀양 시골에 있어서 제대로 셰익스피어를 읽는 사람이 없었어요. 독서클럽에 나가봐도 『로미오와 줄리엣』 읽어봤냐고 질문하면 ‘로미오는 읽었는데 줄리엣은 아직’이란 식으로 이야기하던 시절이죠. 그러다 부산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어요. 학교에서 원어민 강사가 토요일 오후에 학교에 남으라고 하더라고요. 영어 한마디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호기심에 남았더니, 하버드대 졸업생들이 와서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셰익스피어 희곡 한 장면을 선보이더라고요. 줄리어스 시저의 장례식 장면을 연출했는데, 한 명은 브루투스, 한 명은 안토니우스 이렇게 역을 맡으면서요. 한국 명문고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의 한 장면을 보여준 건데, 우린 말 그대로 ‘깡통’ 수준이어서 관심도 없었죠. 어쨌든 셰익스피어를 알게 됐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정음사에서 나온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미국 가서 원서를 읽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를 만나신 곳은 미국이었군요.
그런 셈이죠. 제가 대학원을 다니다가 대기업 회사원 생활을 좀 했어요. 그러다가 10·26 사태가 일어났고,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만 서른둘이던 1980년에 도미했습니다. 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학부에서 인문학 과정을 밟았어요. 기초대학영어를 배운 거죠. 그동안 제가 쌓은 영어 실력이 시험만을 위한, 균형 없는 영어란 걸 알게 됐죠. 이걸 극복하는 과정에 셰익스피어가 있었습니다. 미국 지식인들과 지적 교류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성경, 그리스·로마 고전 그리고 셰익스피어예요.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셰익스피어 3부작’의 완결편인 『문화, 셰익스피어를 말하다』에서 안 명예교수는 가장 아끼는 작품인 『맥베스』와 우리에게도 친숙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시작으로 셰익스피어의 대표 사극 8편을 포함한 17편의 작품을 다뤘다. 그는 ‘문화’라는 키워드 안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비친 16~17세기의 영국과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특히 「프롤로그」에서는 베일에 싸인 셰익스피어를 당시 영국의 시대 상황이었던 △르네상스 △종교개혁 △제한군주제 △법학원 등 다양한 프리즘 안에서 들여다본다. 3부작의 1권에 희곡 12편, 2권에 13편을 담았고, 3권까지 희곡 총 39편과 시작(詩作)들을 살펴보면서 셰익스피어 둘레길 산책을 마감했다.

 

3부작 중 1권은 ‘법’, 2권은 ‘에세이’, 3권은 ‘문화’라는 일종의 열쇳말을 부여하셨습니다. 사실 1권을 읽어보고는 거의 논문 수준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3권에서는 그런 형식적인 틀을 많이 벗어나신 것 같습니다.
3부작을 아우르는 일관된 체계는 없어요. 다만 말씀하신 대로 1권은 법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최대한 주석서에 가깝게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다소 딱딱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2권에서는 좀 더 느슨하게 초점을 다소 풀었고요, 3권에서는 그나마의 구속까지 풀어버린 거죠. 사실 ‘문화’라는 용어 자체가 ‘법’이나 ‘에세이’보다 훨씬 포괄적인 주제어잖아요.


16세기 인물을 21세기 대한민국에 소환하셨습니다. 결국 ‘셰익스피어 3부작’으로 2020년 한국 사회에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언젠가 한 젊은 영문학 교수를 ‘셰익스피어 전공’이라고 소개하기에 농담 삼아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은 적이 있어요. 셰익스피어는 모든 영문학도의 필수인데 별도의 전공이 있을 수 있냐는 뜻이었죠. 제발 셰익스피어를 영문학자만의 몫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신·구약 성경이 어디 목사와 신부만의 몫인가요?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경전 아닌가요? 셰익스피어도 마찬가집니다. ‘세속경전’이라고 할까요. 이슬람 세계에서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죠. 어떤 측면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용인할 부분이 많아져요. 대학에서 지나치게 전공이 세분됐어요. 무슨 과니 무슨 과니 하는, 한국적 병폐 중 하나죠. 물론 이론이나 체계는 있겠지만,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는 가장 보편적입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87년에 그는 모교인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학교와는 인연이 끝난 거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전형적인 교수 양성 코스를 밟은 것도 아니었고, 민법·상법·형법 등 전형적인 법 분석보다는 역사와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헌법 연구에 매진해왔기 때문이었다. 안 명예교수는 당시 교수들이 아카데미 외부에서 온 ‘이질적’이었던 그를 선택한 이유를 지금 곰곰이 돌이켜보니, 그라면 법학의 폐쇄성과 경직성을 완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학 소년이었을 것만 같은 그가 법학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문학을 전공했어도 잘 하셨을 것 같은데요.
기본적으로 문학이 뭐냐고 할 때, 창작 또는 평론을 떠올려요. 우리 시대에 창작은 엄청난 경험, 체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평론은 그게 아니라 읽으면 되는 거고요. 네. 이른바 문학 소년이었던 거 같습니다. 백일장 수상도 단골이었고, 중학생 때까지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결국 학교라는 제도 울타리 안에서 살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창작에서 멀어지게 됐어요.

 

창작에 있어 체험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실입니다.
저희 세대는 아버지 세대처럼 전쟁이라는 엄청난 체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6·25 이후의 비참함만 알잖아요. 이걸 보충하려고 월남 파병에 지원했는데 못 갔죠.

 

이문열 작가와 대담도 많이 하셨는데요.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셨죠?
중학교 1, 2학년 때 만났어요. 나이는 같지만 제가 2학년이고 이문열 씨가 1학년이었죠. 결국 이문열 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나갔잖아요. 지나고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우리 세대에서 문학으로 성공한 이들을 꼽으라면 이문열 작가나 황석영 작가가 빠지지 않죠. 원동력이요? 제도교육의 희생을 덜 받았다는 점이에요. 문학을 통해 스스로 대안적 세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성적표를 집에 가져다줘야 하는 ‘범생’의 삶에서는 창작을 못 하겠다는 생각이 굳어졌죠.

 

그래서 선택하신 게 법학이었군요.
네. 저는 전형적인 문과 그러니까 인문학,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게 낫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결국 법대를 택한 건, 우리 윗세대들이 인문학을 공부해서 인생이 복잡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고요.(웃음) 사실 고3 때 이병주 작가의 중편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서였습니다. 작가가 5·16 이후 자신의 옥중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허구로 창작해낸 거죠. 이 작품을 보면서 법학에서도 길이 있겠다 싶었죠. 흔히 전공을 말할 때 문학과 법학을 다른 걸로 보는데, 전 통합인문학이라고 생각해요. 교수 재직 시절에 「법과 문학」이라는 강좌를 만든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고요. 전형적인 법대생의 길을 걷진 않았죠. 문학이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사적 텍스트라면, 법학은 안정성을 추구하는 공적 텍스트죠. 법은 셰익스피어 예술에 심층적으로 다가서기 위해 반드시 거머쥐어야 할 중요한 열쇠입니다.

 

안 명예교수는 여러 권의 책을 썼지만, 문학 작품이라고 발표한 것은 없다. 하지만 ‘제2의 창작’으로 일컬어지는 번역은 3권이나 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허먼 멜빌의 중·단편집이 그것. 그는 「미국에서의 ‘법과 문학’ 운동」(1998)이라는 논문에서 “번역이란 텍스트, 언어, 사람 사이의 연결 불능의 간극을 다루는 예술”이라고 썼다. 그가 번역하고 2013년에 출간한 『동물농장』(홍익출판사)을 기자에게 건네며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에게 숙제로 가장 많이 읽으라고 권하는 책이라고 귀띔했다.

어떤 연유로 번역을 시작하셨습니까?
전공인 법학 관련 도서야 당연히 했죠. 하지만 문학 작품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기존에 나온 번역서로는 내가 생각하는 작가와 그 작품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작품들과 기존 번역서가 구별되는 지점은 어디인지요?
저는 번역하면서 새로운 주석서를 쓴다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번역한 작품들의 국내 번역서를 다 찾아봤는데, 친절한 안내가 없더라고요. 『동물농장』을 예로 들면, 장마다 해설을 붙였습니다. 당시 러시아혁명 시대 인물과 대비를 시켰죠. 사실 러시아 혁명사를 모르면서 어찌 동물농장을 읽을 수 있을까요? 과제를 낸 선생님은 과연 알고 낸 걸까 하는 생각도 했죠. ‘평등한 동물과 더 평등한 동물이 있다’는 구절은 제가 법학자로 평생 매달린 화두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의 시대상을 모르고도 소설을 읽을 수 있듯이, 고전, 특히 우화에는 어떤 보편적인 정서가 담겨 있기에 시간을 넘어서 읽히는 것 같아요.

 

고전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고전인지는 사람마다 합의가 다를 수 있죠. 제가 정의하는 고전이란, 비록 한 작가의 특정 시대에 특정인에 의해 쓰였고 그 당시 시대가 투영됐지만, 시대가 흘러도 거기서 무언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게 고전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김과 손때가 묻어 내려오면서 지금도 거기에 삶에 도움이 되는 경구가 담긴 게 고전이라면, 어느 정도 합의를 본 고전 목록은 나올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고전 중의 고전이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셰익스피어는 원래 연극을 통해 확산시켰어요. 나중에 연극이 에세이 형태로 변형됐고, 영화로 만들어졌고, 뮤지컬로 무대에 올라갔듯이, 매체도, 메시지도 끝없이 현대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봐요. 태어날 때뿐만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각색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서울대 교수직에서 퇴임한 이듬해인 2014년부터 매년 봄 학기에는 중국 베이징이공대학 대학원 과정에서 국제인권법을 강의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작은 독서 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 고향집 등 4개의 서재에서 골고루 돌아가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독서 모임도 만들어 볼까 고민 중이다.

 

앞으로는 어떤 책을 쓸 계획이세요?
네 번째 인물전기를 쓰고 있어요. 아까 얘기한 이병주 작가에 관한 이야기죠. 앞선 세 권의 인물 전기에서는 같은 시대 사람인 조영래 인권변호사, 박정희의 멘토였다 버림받은 황용주 초대문화방송 사장, 그리고 저를 사상과 정서적으로 유혹했던 유럽 대신 미국에서 법공부를 하도록 유인한 윌리엄 더글러스 미연방대법원 판사를 다뤘습니다. 세 권 모두에 제 자전적 요소가 조금씩 들어있죠. 네 번째 인물 전기 주인공인 이병주 작가는 감옥을 다녀와서 소설을 썼어요.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 대학생은 두 부류라고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병주 작품을 많이 읽은 사람과 적게 읽은 사람으로요. 그는 199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사람과 작품을 통해 한 시대에 대한 정리가 가능하지 않겠나 싶어서 쓰고 있어요. 내년이 작가 탄생 100주년인 해기도 하니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 법률 주석서는 내겠다는 출판사가 있다면 도전해 봐야죠.

 

배움의 때를 놓친 분들이나, 평생 공부를 목적으로 방송대를 찾는 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저는 우리나라 대학 사회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방송대를 만든 것으로 생각해요. 한국이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방송대는 첫째로 경직된 사회계층의 이완과 일상의 민주화라는 점에 기여했고요. 둘째로는 지식의 보편화와 교양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죠. 마지막으로는 평생 동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공부할 수 있다는 접근성의 기회를 매우 높여줬죠. 셰익스피어 희곡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에 나오는 대사로 할까요? “세상은 무대!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누구나 연기를 계속하라! 끝나면 즐기라! 모두 흥겹게 잔치나 즐기자!” 셰익스피어 독서 모임을 만들까 생각 중인데요, 혹시 방송대생이 많이 신청한다면 즐겁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2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