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종이문화는 쇠퇴하고 있나?

당신의 아침은 무엇으로 시작하십니까?”

20년 전이라면 당연히 인쇄 내음 가득한 종이신문을 집어 들면서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침대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부터 집어 드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됐다.

그뿐이랴. 전철 안에서 종이책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대부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과연 종이신문과 종이책으로 대표되는 종이산업은 사라지고 말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물론, 급격한 추락세를 막지는 못하겠지만, 여전한 생명력으로 끝까지 생존할 것이고, 디지털 매체와 IT(정보기술) 산업과도 새롭게 공생 내지는 상생의 길을 갈 것이다.

종이신문과 종이책의 위기
우선, 종이신문과 종이책의 위기를 살펴보자.

세계 제1의 신문이라 불리는 <뉴욕타임스(NYT)>의 디지털 변화를 이끌다 최근 물러난 마크 톰슨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종이신문의 미래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지난 810일 미 경제매체인 CNBC에 출연해 "20년 후에도 그것(NYT)이 계속 인쇄된다면, 나는 매우 놀랄 것"이라면서 "NYT는 향후 10년간은 확실히, 그 이후 또 다른 15년간은 꽤 아마인쇄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톰슨 CEO의 이 같은 발언은 종이신문이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2040년경이면, 세계 제1의 신문이라 불리는 <뉴욕타임스(NYT)>도 결국 인쇄판 종이신문이 없어질 것이라는 점을 언급한 셈이다. 종이신문이 없어지는 시기가 늦춰지더라도 그리 길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가 곧 사라질 건 물론 아니다. 그러나 종이신문만 놓고 보면 전성기에 200만 부 넘었던 유료 독자수가 지금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미국 신문 전체로 넓혀 보면 이미 사라진 신문도, 그로 인해 직업을 잃은 신문기자 숫자도 엄청나다.

종이신문의 종말을 알리는 소리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많이 나왔다. 종이신문에 엄청난 위협으로 등장한 인터넷 돌풍을 두고 완전 태풍(perfect storm)’이라 부르기도 했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에서 종이신문이 망하고 있는 이유는 신문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던 광고 수입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데다,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종이신문에서 인터넷, 모바일 등 디지털 방식으로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방 국가 광고 시장의 90%를 페이스북, 구글, 유튜브 등 플랫폼이 흡수해 버렸다는 것이 이제는 통설이 되어 있다.
종이신문의 이런 종말적 운명은 전 세계적 추세다. 종이신문 부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광고는 뭉텅이로 사라지고, 그래서 신문사가 문을 닫거나 기자들을 줄이는 극약처방이 일상화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위기가 이런 추세를 더욱 가속하고 있다.
종이책의 운명은 어떠한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종이책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 우선 전자책의 확산이 만만치 않다. 전자책 보급이 확산되면 결국 종이책은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스마트기기와 같은
발광 매체들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매체에 종속시키고,
멀리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용이하게 해주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분리시켜 놓는다.


그뿐이랴. SNS부터 유튜브, 웹툰 등 세상에는 종이책 말고 시선을 사로잡을 이야기거리와 디지털 매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책과 독서는 점차 생경한 문화가 되고 있다. 당연히 ‘책’의 운명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최근의 독서실태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40%1년간 종이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 걸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인터넷 문화가 전 세계를 강타한 현재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존의 독서는 종이로 만든 책을 읽는 행위를 말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IT의 발달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보편화로 전자책(e북)이 종이책의 자리를 조금씩 차지해 왔다. 최근에는 직접 읽는 수고마저 덜어주는 오디오북이 인기를 얻는 등 독서방식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모양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서점이나 도서관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출입하는 사례가 줄고 있다. 아울러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공간의 제약이 적을 뿐만 아니라 멀티태스킹(다중업무수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진 오디오북 이용자가 지속 증가하고 있다.

이 모든 추세와 현상들은 ‘종이책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하겠다.

 


종이산업의 지속 및 상생 전망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종이신문과 종이책으로 대표되는 종이산업이 여전한 생명력으로 끝까지 생존할 것이고, 디지털 매체와 IT(정보기술) 산업과도 새롭게 공생 내지는 상생의 길을 갈 것이란 추론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첫째는 ‘종이출판물(종이신문, 종이책)에 대한 여전한 선호’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5G 등 정보통신기술이 일상을 바꾸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제지연합회는 지난 6월 16일 ‘종이의 날’을 맞아 3,471명을 대상으로 ‘소비자의 종이매체 호감도에 관한 실태조사’를 온라인으로 실시,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4%는 종이책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전자책을 선호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10%로, 종이책 선호도가 전자책 선호도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응답자들은 종이매체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로 ‘메모가 가능해서’(38.1%)라고 응답했다. 뒤를 이어 보기 편리하기 때문(26.3%) 세대와 관계없이 친숙하기 때문(6.4%)을 꼽았다. 응답자들은 종이 매체를 이용하는 기타 이유로는 업무상 종이 출력물이 필요해서, 책을 넘길 때 주는 종이의 느낌이 좋아서, 정보의 가독성과 일람성이 뛰어나서, 원하는 형태나 크기로의 사용이 용이해서, 촉감이나 필기감 등에서 디지털이 종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미래에 종이가 가장 많이 활용될 분야(복수응답)로는 친환경(생분해성) 포장지가 1위로 꼽혔다. 이는 종이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플라스틱 환경오염에 대한 대체재로서의 기대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종이책은 고유의 향기여운이 있다. 전자책은 여러모로 편리하지만, 종이책을 읽을 때의 향기나 종이책을 읽은 후의 여운을 간직하게 해줄 물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계속해서 디지털 환경을 변화시켜 미래로 나아가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날로그에 대한 선호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둘째는 ‘종이책 독서의 수월성’이다. 스마트 기기에 의한 독서보다는 기존의 종이책 독서가 휠씬 수월성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여러 실험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는 사실이다.
스마트 기기의 주의력과 책의 독서 능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독서는 필연적으로 ‘흡광(吸光)’을 필요로 하는 자연적인 인간 행위이나, 스마트 기기는 스스로 강력한 빛을 발산함으로써 수용자의 주의를 끌어들이는 ‘발광(發光)’ 매체다. 발광 매체들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매체에 종속시키고, 멀리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용이하게 해주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분리시켜 놓는다. 발광 매체가 독자의 이성에 요구하는 것은 즉각적 반응이지 이해의 조성이 아니다.
이에 반해서 흡광의 인쇄매체(종이책)을 통한 독서는 단순한 책 읽기가 아니다. 책을 읽기 위해 밝혀진 주변을 돌아보며 공감을 나누고 겸허하게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는 행위다. 이제 읽기, 쓰기, 셈하기와 더불어 하나의 필수적 문화기술인 ‘소통능력’은 아동기부터 이러한 독서능력을 통해서 형성되는 겸손한 내면의 깨달음으로서 사회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기반이 된다. 아울러 ‘종이책 독서’야말로 인간의 상상력과 추리력, 창조력의 기반이 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셋째는 ‘종이신문과 종이책이 갖는 매체 고유의 특성’이다. 인쇄술의 발명은 중세의 기록문화를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 중세의 기록문화를 예술과 산업의 형태로 변환시켰다. 이후로 인쇄매체의 발달은 곧 오늘의 IT 기술과 4차 산업혁명을 도래케 했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이전 미디어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미디어로 전환된다. 맥루한에 의하면 모든 매체는 그 매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관계없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즉 매체가 다르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결국 메시지를 수용하는 수용자의 인식세계도 달라진다.
이제 이 논리를 책에 적용해 보자. 종이책과 전자책은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하여 전달된다. 같은 콘텐츠이지만, 하나는 아날로그 시스템을 통해 다른 하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전달된다. 당연히 수용자들의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논리에 따르면 종이책과 전자책은 서로 다른 미디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자책이 활성화된다고 해서 종이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 역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습득한다. 그러나 독서를 할 때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른 맥락이다. 내용 이전에 자신이 선호하는 미디어가 다르기 때문이며, ‘종이신문과 종이책이 갖는 매체 고한국출판학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지은 책에는 『역사와 문화로 읽는 출판과 독서』 『한국출판산업사』 등이 있다. 유의 수월성’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종이산업은 ‘종이출판물(종이신문, 종이책)에 대한 여전한 선호’, ‘종이책 독서의 수월성’, ‘종이신문과 종이책이 갖는 매체 고유의 특성’ 등을 통해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며, 한편으로는 디지털 매체와 IT 산업과도 새롭게 공생 내지는 상생의 길을 뚝심 있게 갈 것이다.
종이신문들이 고전하고 있다. 한 신문사 인쇄소에 준비된 신문 용지들이 바퀴처럼 둥글게 말려 있다. 바퀴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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