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필사의 글쓰기


문학상과 분투기는 방송대가 구성원에게 돌려주고 있는 교육·문화적 환원 사업의 하나다. 9월 4일부터 예심과 본심이 빠듯하게 이어져 10월 5일 최종 당선작과 수상자를 가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올해 문학상과 분투기 응모자 가운데 ‘재소자 학우’들이 늘어나 눈길을 끌었다. 방송대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에는 전주교도소에서 22년째 복역하고 있는 남택규 학우(국문 1)의 작품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나」가 뽑혔다. 모두 31명의 수상자를 낸 독서 분투기에는 여주교도소에 수용된 박건희(문화교양 1), 이명근 학우(관광 4)가 장려상을 수상했다. 허삼관 매혈기로 잘 알려진 중국 작가 위화가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란 에세이로 글쓰기의 의미를 정리한 바 있듯, 글쓰기는 모든 이들에게 일종의 자기 감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호 커버스토리는 독서의 계절 10월을 맞아 ‘필사의 글쓰기’를 주제로, 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을 낸 남택규 학우와의 옥중 인터뷰, 방송대문학상과 독서 분투기 예심-본심 과정과 심사위원들이 말하는 글쓰기의 의미를 짚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남택규 학우는 1963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57세. 푸르디푸른 삼십대 중반에 수감돼 22년째 복역 중이다. 옥중에서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해 문학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그의 방송대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1984년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986년 법학과에 편입해 졸업한 경력이 있다. 본심 심사를 맡았던 김소연 시인은 “시를 통해 인간다움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문득문득 깨달을 수 있다는 걸 이번 심사를 통해서 한번 더 느꼈다”고 말하면서 “특히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나」는 인간에게 가장 최후에 남는 빛이 어떤 종류의 숭고함인지를 오래 생각하게 한다. 많은 이들과 함께 이 숭고함을 교감하고 싶은 마음에 당선작으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옥중에 있는 사람이 도달한 ‘숭고함’은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에서 올까. 그는 22년을 사회와 격리된 곳에서, 자신의 내부를 향해 필사적인 글쓰기를 시도해 왔다. 그를 인터뷰한 이유다. 방송대문학상이 존재하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22년째 복역 중인 것으로 들었다. 수감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물어봐도 될까?
1990년대 초중반, 서울 광화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토요일 날(그 때는 토요일이 쉬는 날이 아니었음) 일찍 퇴근 후 교보문고에서 책을 고르고 인사동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했던 즐거운 기억이 있다.


지난해 시 부문 당선자를 내지 못해서, 올해 시 부문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작품을 보내고 ‘당선’까지 생각했나?
누구나 내심 당선을 염두에 두고 투고하지 않을까?


방송대문학상 현상공모는 어떻게 알게 됐는지? 학우님에게 과연 시는 무엇인지.
대학본부에서 여기 분교로 알리는 공지사항을 통해서다. 법무부에서 교정기관 수용자들의 문예창작활동 지원을 위해 계간지 <새길>지를 발행하고 있다. 오래 전 거기에 독후감, 수필을 투고하면서 글을 쓰게 됐다. 시는 분량이 적고 단시간에 집중할 수 있어 교도소에서 글쓰기로 적합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자주 들춰보았다. 처음에 시를 쓸 때 일기 겸 넋두리, 편지 삼아 작품성 따질 겨를 없이 무조건 썼다. 시를 본격적으로 습작하면서 시집도 사 읽고, 창작법에 관한 책도 보았다. 가르쳐주는 선생은 없었지만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문 문화면에 실린 시집 서평이었다. 스크랩해 자주 읽고 그 시인이 되어 역할놀이를 했다. 예컨대 2014년 3월에 스크랩한 내용은 이렇다.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제지공으로 산 유홍주 시인은 “제지공장 작업복을 입고 시를 쓴다는 것은 만만치가 않았다. 밤늦게 퇴근을 하다 남강을 바라보면 까닭없이 무언가 밀려 올라 와서 서럽기도 했다.”’ 나는 여기에서 읽기를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인의 서러움이 나의 서러움 그대로였다.

동백림 사건으로 투옥된 이응노 화백은 종이와 밥알로 조각을 하며 험난한 시간을 견뎠다고 한다. 나도 시를 한 편 한 편 쓰면서 고단한 교도소의 시간을 보냈다.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시를 쓰는 순간에는 작은 빛이 서렸다. 성냥으로 켠 것이 아니라 눈물로 쏘아올린 작은 등불, 그 따뜻함과 밝음, 자유라고 해야 할 그것이 나를 살게 했다. 오늘 여기까지 오게 했다.
 

당선작은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나」다. 칼 세이건은 천문학자고, 도킨슨은 진화생물학자다. ‘나’라는 시적 화자는 시인 자신이면서도 동시에 이 거대한 코스모스, 진화의 단계에 있는 우리들 하나하나이리라. 어떤 시인지 약간의 설명을 한다면?
아름다움, 숭고함, 신성(神聖)에 대해 숙고하는 기회가 많았다. 저 아름다운, 저 완전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게다. 우리의 속성은 미완성이 아닐까. 꽃이 핀 시기는 정말 짧다. 꽃 이전의 줄기, 잎, 가시의 세계를 제외한다면 너무 허망하지 않을까. 사람도 긴 진화의 도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남도 찌르고 자신도 찌르는 가시의 세계를 지나고 있다. 먼 먼 천문학적인 시간이 지나고 내가 완전해져 꽃이 핀다면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속수무책, 탄식의 세계에 묶이고 만 먼 과거의 나도 진정으로 속박에서 풀려 해맑게 웃지 않을까. 나는 이 두 분(칼 세이건과 리처드 도킨스)처럼 사람의 선의를 굳게 믿는다. 지금 불완전하고 실패 투성이지만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이런 믿음이 시의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본심 위원은 “생을 냉정하고도 온전하게 바라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지혜가 탄탄하게 자리잡혀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지혜는 저절로 온축된 것이 아니라, 어떤 처절한 싸움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길고 긴 수용 생활에서 온 것일 수도 있는데, 수용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
올해 방송대에 입학하기 전에는 공장생활하면서 수용생활을 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나름의 갈등도 있고 조금의 기쁨도 있다. 나는 그 속에서 하루를 살려고 노력했다. 10년, 20년을 한꺼번에 산다면 그 중압감에 좌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정답은 오늘에 있는 것 같다. 특히 나와 같은 무기수에겐 이 시간을 빼면, 이 오늘을 빼면 다른 삶이 허락되지 않는데, 어찌 한탄만 하고 있겠는가. 오늘을 살자, 살아내자 다짐하며 보낸 지난 22년이었다. 그러면 나의 과거도, 미래도 분명 달라지리라 꿈을 꾸었다. 한동안은 교도소가 더 나를 규정할 것이다.


많은 실용적인 학과가 있는데 왜 하필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나?
방송대는 사회에 있을 때 이미 한 번 마쳤다. 국문학과는 시쓰기와 병행하기 위해 선택했다. 학과 공부는 특별한 애로사항이 없다. 다만 컴퓨터를 오랜만에 쓰게 되어 생소했다. 타자기 용도로만 쓰지 않고 더 잘 활용할 계획이다.


당선 상금 120만원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그동안 인터넷 자료를 찾아주고, 손으로 시를 써서 밖으로 보내면 예쁜 컴퓨터 글씨로 옮겨준 조카에게 작은 선물 하나 마련할 기회가 생겨 기쁘다.


이제 방송대문학상을 발판으로 또 다른 꿈을 꿀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꿈이라면 신춘문예에 등단해서 시집을 내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져 감동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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