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필사의 글쓰기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중국 작가 위화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에서 글쓰는 행위를 ‘글쓰기의 감옥’에 갇힌 작업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글쓰는 일 혹은 글쓰기는 상당한 에너지와 집중력, 그리고 지구력을 요구한다. 위화는 이 책에서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서 글쓰는 일이 저에게는 아주 중요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만난 첫 번째 장애물이었지요. 이 장애물을 뛰어넘으면 새로운 길이 열리지만 넘지 못하면 그 자리를 맴도는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제44회 방송대문학상 현상공모에 응모한 방송대 학우들 역시 이러한 자기와의 첫 싸움을 지난 이들이다. 일부는 그만 엉덩이가 의자와 친해지기도 전에 포기했을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첫 번째 장애물’을 넘어 자신의 사유와 창조의 길을 열었다. 그 길이 어느 정도 완전한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시 작품들 특히 ‘빛났다’
코로나19 국면 속에서 계절을 앞당긴 문학상 공모 시도였다. 겨울 신춘문예라는 좀더 큰 무대로 가는 디딤돌의 의미를 자처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제44회 방송대문학상은 결론부터 말한다면, 시와 에세이, 단편동화 부문에서는 ‘수작(秀作)’을 수확했다(관련 기사 <KNOU위클리> 61호, 2020.9.7. https://weekly.knou.ac.kr/articles/view.do?artcUn=1377). 응모 편수도 대폭 증가했지만, 질적인 잡도리가 탄탄했던 게 주 요인이다. 예심과 본심을 맡은 심사위원들의 평이기도 하다.

 

시·에세이 부문 수작들 많아
단편소설 응모작 늘었지만
아쉬움 커

문장의 기본과 실험 정신, 
글쓰기의 ‘진정성’이 중요

 


8월 31일 소인이 찍힌 등기물이 도착한 이튿날부터 분류 작업에 들어갔다. 예심과 본심 위원은 현상공모 공고를 낼 때 이미 섭외를 마쳤다. 연속성을 중시해, 응모작의 유의미한 변화를 읽어내기 위해 가능한 43회 심사에 참여했던 본심 위원들을 다시 모셨다. 김종광 소설가, 박명진 중앙대 교수, 전병호 아동문학가와 김소연 시인이다. 김소연 시인만 올해 새로 참여했다. 심사 척도는 △주제의식 △창조성 △실험정신 △표현력 △구성력이다.
예심은 응모 편수가 많은 시(570편), 단편소설(43편), 에세이(71) 부문만 진행했다. 9월 5일 방송대 동문 작가인 방현희 소설가와 유형진 시인, 그리고 기자가 참여했다.
“응모자들의 수준 편차가 심한 편이었지만, 코로나19로 사회적으로 위축된 가운데 시를 쓰시는 분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라웠다”고 운을 뗀 유형진 심사위원은 응모작들이 다양한 소재를 시적 화제로 소환한 것에 주목했다. 그는 이 가운데 고르고 골라 독창적이고 참신한 이야기를 시로 쓴 이들을 본심에 미는 것이 좋다고 판단해서 9명의 작품을 뽑았다.
그는 “이번 공모전에 안타깝게 미끄러진 분들에게도 건필을 기원하며, 꾸준히 습작을 하신다면 다른 문학 작품 공모전에서도 뵐 수 있을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격려도 빠뜨리지 않았다.

단편소설은 ‘진정성 추구하는 허구’
단편소설 부문은 응모작이 증가했지만 기대와 달리 예심부터 불안하게 출발했다. 판타지물이 많은 반면, 단편소설의 미학과 글쓰기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방현희 심사위원은 “전반적으로 자신들의 일상에서 벌어진 일에서 소재를 취했다. 자신의 삶에 애착을 가지고 그 의미를 찾으려 하는 깊고 오랜 열정이 느껴졌다”고 말하면서, “단편소설의 미적 성취를 이룬 작품이 드물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다양한 영역에서 글쓰기를 시도한 12편의 작품을 골라내고, 이 가운데서 최종적으로 5편의 작품을 본심에 넘겼다.
그는 “한 편의 글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 수 없는 작품이 많았다. 소설은 ‘허구’(虛構)를 통해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덧붙여 조금쯤 완성도가 떨어져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소재나 주제여도, 글쓴이의 핍진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이 좋은 글”임을 거듭 강조했다.
에세이는 다른 장르와 달리 ‘소재’가 정해져 있는데, 올해는 ‘코로나19’를 글감으로 제시했다. 문학 전공자인 기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에세이 부문 작품 심사에 참여했다. 전체적인 느낌은 작년보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질적 수준이 상향 평준화됐다는 것, 현실에서 깊이 체감한 ‘사건’을 소재화한 탓에 다들 설득력 있고 정연한 에세이에 접근했다는 것, 특히 재난에 직면해 ‘가족의 의미’를 성찰하고 공유하는 글들이 많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 에세이 부문 응모작들은 ‘신변잡기’는 보여 주었으되, 그것을 넘어서는 예리한 문제의식과 글맛의 지평으로 나아가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아쉬운 대목이다. 71편 가운데 체험의 확대를 통한 문제의식의 공유 가능성이 높고,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완성도와, 진정성이 엿보이는 작품 9편을 본심에 넘겼다.


고심에 고심 반복한 본심
본심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시점과 겹쳤다. 본심에 오른 작품을 ‘디지털 파일’로 요청해, 이를 심사위원들에게 전달한 뒤 9월 12일부터 25일까지 심사가 이어졌다.
단편동화 부문 응모작은 지난해와 엇비슷한 15편이었다. 희곡·시나리오 부문은 7편이 응모됐다. 이들 장르가 문학계에서도 ‘소수자’인 현실을 고려한다면, 방송대문학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병호 심사위원은 “응모작의 수준이 예년에 비해 많이 향상된 것 같아 반가웠다”고 평가했다. 그는 작품의 완성도와 이야기를 전개하는 힘에 특히 주목했다.
방송대 대학원 문예콘텐츠학과 외부교수이기도 한 김종광 심사위원은 “자기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최선으로 써내려면, 시간보다는 튼튼한 일상 속의 창의적 열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본심에 오른 5편 가운데 솔직히 선뜻 당선작을 내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단편소설은 단편으로서의 자기 완결성을 갖춰야 한다는 뜻.
이런 아쉬움은 희곡·시나리오 부문에서도 나타났다. 희곡 전공자이자 영화평론가인 박명진 심사위원은 “응모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장르적 장치들이나 표현 기법, 그리고 작품의 메시지 구축 등에서 아쉬움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 제44회 방송대문학상 당선작

시  
당선작 남택규(국문)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나 」
가  작 이정미(국문) 「울음의 질량」

단편소설 
당선작 없음
가  작 백승휘(국문) 「명암방죽」  이선의(국문) 「귀로」
 
에세이 
당선작 이상근(일본) 「가족」
가  작 강수지(국문) 「코로나19와 마녀」
 
단편동화  
당선작 김경한(청소년) 「보들보들 동동이」
가  작 김정식(사회복지) 「내 맘대로」
 
희곡·시나리오  
당선작 없음
가  작 김가인(문화교양) 「약속」

 

□ 제44회 방송대문학상 심사위원

 

유형진 시인
2001년 <현대문학>에서 등단했다. 시집 『피터래빗 저격사건』,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우유는 슬픔 기쁨은 조각보』가 있으며, e-book 시집 『피터 판과 친구들』이 있다.


방현희 소설가

방송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2001년 <동서문학>에서 「새홀리기」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내 마지막 공랭식 포르쉐」로 2018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소연 시인
1993년 등단 이후 줄곧 시를 쓰며 살아왔다.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 등의 시집과, 『마음사전』 등의 산문집을 발표했다.

김종광 소설가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 소설 부문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처음의 아해들』 등 다양한 중·장편 작품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박명진 교수
희곡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월간문학>에 희곡으로 등단했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에 당선됐다. 저서로 『한국희곡의 근대성과 탈식민성』 등 다수를 발표했다.

전병호 아동문학가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방정환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백두산 돌은 따듯하다』 『들꽃 초등학교』 등의 동시집을 발표했다.

 

 

※ 방송대문학상과 독서 분투기에 ‘재소 학우’들이 대거 응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김용준 전주교도소 교위님과 나정희 여주교도소 교위님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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