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대 명저 106선 해제

“그 기이한 배는 담시(譚詩)가 유행하던 시절부터 전혀 변함없이 전해져 왔고, 그토록 진기한 검정색이라 다른 사물들 사이에 있으면 마치 관(棺)처럼 보인다. 베네치아의 이 곤돌라는 물이 철석거리는 밤에 소리 없이 저지르는 범죄적 모험을 연상시키며 죽음 자체, 들것과 침울한 장례식 그리고 최후에 있을 침묵의 여정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토마스 만(1875~1955)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11)은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가 그리스 조각상과도 같은 소년 타치오에게서 순수한 의지의 미를 발견하고 때마침 찾아든 콜레라로 베니스에서 죽어간다는 내용으로, 미적 데카당스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신에게 부과된 유럽 정신을 형상화하고자 작가적 소명을 다한 아셴바흐가 휴양지에서 만난 폴란드 소년에 이끌려 바닷가에서 죽어간 이야기는 예술의 문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문학적 전범에 속했다. 작품의 주요 배경인 리도는 베니스 앞바다에 길게 뻗은 사주(砂洲) 지형으로 매해 8월 이곳에서는 베니스 영화제가 개최되는 등 국제적 명성이 높다.뮌헨에 사는 아셴바흐는 스스로 정한 내적 임무에 따라 긴장과 신중함을 무기로 창작 활동에 전력했다. 그는 까다로운 업무로 기력이 쇠하고 낮잠이 필요한 순간에도 한 잔의 차를 마시고 산책을 택할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인물이었다. 보편적 가치가 통용되는 세계에서 ‘끝까지 견뎌라’는 명령어를 창작의 미덕으로 여겨온 아셴바흐는 자신의 작품에 유희적 향취가 결여됐음을 느끼고, 그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감정의 잔재가 밀려와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새로운 활력소의 필요를 느낀다. 미적 데카당스의 전형토마스 만이 1911년 3월 24일 맏형 하인리히 만에게 쓴 편지에는 일시적 기력 쇠진으로 인한 휴양의 필요성이 언급돼 있다. 실제로 그해 5월 토마스 만 가족은 아드리아 해에 면한 크로아티아의 브리오니로 요양 여행을 떠났고, 이 경로는 소설의 3장에서도 그대로 묘사돼 있다. 아셴바흐에 토마스 만이 어느 정도 투영돼 있음을 가늠하게 한다. 이스트리아 해안에 면한 호텔의 답답하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피해 동화 같은 일탈을 꿈꾸며 아셴바흐는 바다 건너 베니스로 지체 없이 떠난다. 엄격한 직업윤리 속에 잠자고 있던 그의 충동적 기질은 악사의 딸로 태어난 보헤미안 성향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건실한 시민 세계에 이국적이고 예술가적인 기질이 들어와 예술성과 시민성이라는 이원적 구도가 형성되고 예술적 재능이 있는 반시민적 세대로 인해 가계가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은 초기 토마스 만 소설의 특징에 속한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전후해 사회를 지탱하던 기존의 질서와 도덕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가고 세계몰락이라는 막연한 예감 속에서 표현주의를 비롯한 새로운 예술 형식이 대두됐듯이, 아셴바흐의 삶은 타치오를 만난 베니스 여행을 계기로 급격히 변화한다. 뮌헨에서의 작가적 삶과 휴양지에서의 탐미자라는 양가적 태도는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말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형식적 질서와 비극적 도취라는 예술의 상반된 원천과 관련된다. 예컨대 소설 5장의 원시적 꿈 장면은 아셴바흐의 색다른 면을 제시한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낯선 신 디오니소스가 등장하고 한 무리의 인간들이 무절제한 축제의 현장에서 광적인 흥분 상태를 드러낸다. 이러한 분위기는 현실에서도 이어져 도취의 감정이 그를 지배하고 기존의 예술을 위협한다. 이로써 도덕과 이성의 법칙이 그토록 취약한 성질의 것인지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무의식과 인간 존재의 복잡성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금기시된 충동에 사로잡혀 자신의 실존을 위태롭게 한  주인공을 통해 토마스 만은 낭만주의의 검은 모습을 제시하는 한편, 우리 사회가 어떠한 긴장 관계 속에 지탱되고 있는지 역설적으로 답한다.  전염병 모티브와 예술적 이상예술과 예술가의 문제를 다룬 베니스에서의 죽음에는 전염병이라는 예기치 않은 모티브가 구조화돼 있다. 여행지에서의 죽음은 이상의 좌초와 육체의 쇠락을 넘어 질병의 영역으로 이행한다. 베니스에서는 생의 시침이 다르게 돌아가는지라 작가를 지탱했던 엄격한 정신은 타치오에 대한 도취로 변해 있다. 공교롭게도 이 도취적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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