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

인류 역사에서 여성의 삶은 평탄할 수 없었다. 문명의 주도권을 잡은 남성의 뒷전에서 ‘제2의 성’으로 살아가야 했던 여성이지만 그녀들의 본질은 식물이고 나무다. 현실에 터전을 두고 끝없는 이상을 꿈꾸었으며, 셀 수 없는 열매를 맺으며 많은 것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왔다. 여성과 식물, 여성성과 식물성은 맞닿아 있다. 특별히 척박한 땅에서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거나 좋은 열매를 맺는 식물들은 우리를 감동시키고도 충분하다. <KNOU위클리> 창간 2주년 기념으로 시작하는 연재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총 20회)은 이러한 연관성에서 기획됐다. △20세기를 살았던 여성 인물 가운데,  △국가와 분야 등을 고려해 시대와 사회의 한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개척한 인물, △ 제3세계, 유색인종, 소수종족의 차별을 극복하고 자신의 동족과 여성의 삶을 위해 기여한 인물 등을 조명할 것이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다. 10회까지 글 싣는 차례① 조지아 오키프② 왕가리 마타이③ 제인 구달④ 코코 샤넬⑤ 박경리⑥ 헬렌 니어링⑦ 시린 에바디⑧ 프리다 칼로⑨ 윤희순⑩ 덩잉차오  20세기 초반 회화의 세계는 여성에게는 닫힌 문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거침없이 뛰어든 여성이 있다. 평론가들에 의해 모던여성으로 일컬어지는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미국에서 여성 인권이 자라날 무렵인 1887년에 태어났다. 이후 1986년에 99세로 죽을 때까지 독립적이고 주관적인 인생을 살았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위해 미국 근대 사진의 개척자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와의 동반을 사양하지 않았다. 이후 스티글리츠와의 불화를 딛고 자연과 야생에서 다시금 일어선다. 이러한 그녀의 독립성과 자주성은 미국과 근대의 정신을 표상한다. 사진작가 스티글리츠와의 만남조지아 오키프의 부모는 재력가로 결혼생활을 시작했으나 아버지의 무능과 불운으로 가족은 점차 몰락의 길을 걷는다. 위스콘신 주 선프레리 농장의 자연 속에서 자라난 오키프는 가족들이 떠도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세 번이나 전학했고 대학도 두 군데를 다녔다. 오키프는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그림의 재능을 인정받고 미술대학에 진학한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생계를 위해 삽화가로 일하기도 하고 교사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의 열망을 지녔던 가난하고 병약한 소녀는 후일 가장 미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1997년에 자신의 미술관을 산타페에 개관하자 수많은 관람객의 방문을 받았고 2001년에는 경매사상 최고의 가격을 받은 여성화가가 된다.   오키프는 젊은 날 스티글리츠의 제자였던 폴 스트랜드(Paul Strand, 1980~1976)를 사랑했다. 스트랜드는 사물의 정수를 끌어내어 정밀하게 묘사하는 사진기법을 썼는데 이것은 오키프의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오키프의 작품들은 꽃을 확대해서 표현했는데 한 송이 전체 모습이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세밀했다. 스트랜드는 오키프를 사랑했으나 가난하고 병약한 오키프의 발전을 위해서는 든든한 후원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자신의 연인을 스티글리츠에게 양보한다. 당시 스티글리츠는 천재적 재능을 지닌 오키프에게 한눈에 반한 상태였다. 어머니의 죽음과 쇠약해진 건강으로 지칠 대로 지친 30대의 오키프가 24세 연상의 저명한 예술인이자 유부남인 스티글리츠의 ‘연인’이 된 것은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병약하고 가난한 그녀의 처절한 현실적 귀결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발굴해 예술혼을 펼칠 여건과 무대를 열어준 스티글리츠를 큰 바위처럼 여기고 의지하게 된다. 세상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6년간의 내연관계를 거쳐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지만, 열정적 사랑과 동반자적 활동을 나누던 그들의 행복은 길지 못했다. 스티글리츠가 화랑의 후원자로 나선 부유하고 젊은 21세의 유부녀 노먼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배신은 오키프에게 치유가 힘든 상처를 남겼고 결과적으로 그녀는 10여 년 간 심신의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뉴멕시코에서 개척한 새로운 삶상처투성이가 된 오키프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출구를 찾는다. 그 곳은 바로 뉴멕시코였다. 드넓고 꾸밈없는 그 곳에서 40대 중반의 오키프는 왕성하게 작품활동에 전념한다. 사랑과 열정이 배신과 상처로 바뀐 이후에도 오키프는 남편과 자신의 방식으로 원만하게 지냈고 그의 임종을 지켰다. 1949년 스티글리츠가 죽은 뒤 뉴멕시코 애비큐에 정착한 그녀의 삶은 세간의 열렬한 관심사였다. 스티글리츠가 운영하는 뉴욕의 291화랑에 그녀의 그림이 처음 걸렸을 때, 그리고 수많은 그녀의 누드가 전시됐을 때, 뉴요커들은 50년 후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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