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제의 신간

세네갈 월로프족 민담과 설화 수록
서아프리카인의 문화적 전통 보여줘
대학원 번역 스터디팀에서 ‘과외’로 작업
아프리카인에게 직접 자문 구하기도


세네갈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공부한 아프리카의 작가 비라고 디아프(1906~1989)의 『아마두 쿰바의 옛이야기』(1973)가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에서 출간됐다. 세네갈 월로프족의 민담과 설화를 구성한 이번 작품은 한국방송통신대 대학원 아프리카·불어권언어문화학과에서 ‘사제동행(師弟同行)’으로 번역해 더욱 눈길을 끈다.
『아마두 쿰바의 옛이야기』는, 예전 우리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던 할머니들이 있었던 것처럼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에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리오(griot)’가 존재하는데, 바로 이 그리오(아마드 쿰바)의 입을 통해 월로프족의 민담과 설화에서 온 18편의 이야기와, 작가 비라고 디아프가 직접 쓴 서사 2편을 소개한다. 생활 세계에 밀접한 동물들을 의인화한 우화의 형식에다 조상으로부터 전해지는 삶의 교훈을 섞은 독특한 이야기들이다.

아프리카 구전문학 새롭게 해석
사실 민담과 설화는 구전문학의 큰 축이다. 이것은 특정 공동체의 오랜 민속지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민속학자 블라디미르 프로프가 ‘민담 형태론’에서 잘 분석했듯, 어느 지역에서든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취하기도 한다. 아마두 쿰바의 옛이야기도 그런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마멜」, 「선행의 대가」등은 우리나라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 「토끼의 재판」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이 책이 좀더 친근하게 읽힐 수 있는 지점이다. 또한 지리적 원근감을 반영한,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권의 특징을 반영한 이야기도 있다. 주로 이슬람 정서에 가까운 이야기들, 신붓값이나 할례와 같이 아프리카 전통에 뿌리를 둔 내용도 있다(「당나귀 하리」, 「어떤 판결」, 「꼬마 신랑」등).
그렇다면 『아마두 쿰바의 옛이야기』는 노을 속으로 사라진 한 부족의 그렇고 그런 옛이야기로만 읽힐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작품이 마지막에 배치된 「사르장」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리오인 ‘아마두 쿰바’의 목소리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직접적인 목소리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르장은 프랑스군 중사(sarzan)로 전역한 티에모코 케이타가 자신의 부족에게로 돌아온 뒤 공동체가 믿고 숭상하고 따르는 옛 전통을 ‘미개한 것, 문명화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붙이다가 마침내 미쳐버리고 만다는 내용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케이타에게 식민지 구역 사령관은 이렇게 말한다. “고향 사람들에게 백인들이 사는 방식을 좀 가르치게. 그들을 좀 ‘문명화’시키라는 말이지.” 그러나 케이타 중사와 동행한 화자인 작가는 “옛것은 사라져 갔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는 새것에 가까이 가지도 못한 채 옛것을 지나쳐 버린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하면서, 케이타가 미신과 구습으로 내몬 조상대대로의 풍습을 제대로 껴안으려고 한다.
선영아 교수는 『아마두 쿰바의 옛이야기』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디오프의 ‘참여’는 보다 근원적인 ‘아프리카성으로의 회귀’에서 찾을 수 있다. 디오프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문학사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아프리카 구술 이야기를 서구적 글쓰기 안으로 끌어들여 근대적 의미의 소설로 재구성해냈다는 점에 있다.『아마두 쿰바의 옛이야기』를 통해 디오프가 하려고 했던 것은 월로프족의 전래 민담을 채록하고, 그것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문자언어로 정박시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 아프리카의 풍요로운 구술 문학이 보존되고, 민속학의 연구대상이 아니라 온전한 문학작품으로 인정받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디오프는 문어체 프랑스어라는 낯선 언어적 수단 안에서 그리오의 구술성을 섬세하게 텍스트화해, 아프리카 문학의 자산을 풍성하게 불렸다고 할 수 있다.”


난해한 텍스트 번역하며 동료애 다져
『아마두 쿰바의 옛이야기』는 앞에서도 말했듯, 사제동행의 결실이다. 선영아 교수를 비롯 권소연, 김혜정, 문성호, 이나비, 장현경, 최보윤 등의 원우가 함께 참여한 대학원 번역 스터디팀이 3년간 ‘과외’ 시간을 활용해 유려한 이야기 문체로 선보였다.
아프리카·불어권언어문화학과에서는 대학원 개설 이후 번역 스터디를 계속 운영해 왔다. 학과의 취지에 맞게 주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와 관련된 글을 찾아 읽었다. 마침 아프리카 문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아마두 쿰바의 옛이야기』를 만나게 돼 번역에 이른 것. 선 교수는 “번역 스터디를 하면서, 아프리카 민담을 엮어놓은 이 책이 아프리카, 특히 서아프리카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출판문화원에 번역제안서를 제출했다. 고맙게도 이 제안서가 채택된 덕에 번역본을 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의 ‘번역 스터디’가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번역 스터디팀에 참가한 원우들의 프랑스어 실력도 제각각이었다. 선 교수가 진행하는 대학원의 번역 관련 수업(「불한전문번역」, 「한불번역연습」)을 수강해 번역을 공부한 이들도 있었지만, 이제 막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한 원우도 있었다. 어쨌거나 모두가 ‘전문적인 번역’이란 걸 경험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선 교수는 “번역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외국의 텍스트와 문화를 옮겨오는 작업이다.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이 번역자의 ‘책무’다. 원문의 의미가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면 그것은 번역자의 책임이라는 것, 번역본도 하나의 독자적 텍스트로서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번역 결과물이 흠잡을 데 없이 유려하게,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처럼 읽힐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출판문화원의 신경진 편집자도 “책의 화자인 아마두 쿰바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입말의 느낌이 나도록 교정을 하는 데 집중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비라고 디아프의 『아마두 쿰바의 옛이야기』는, 비록 그 자신이 아프리카인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후천형질’이 결합돼 텍스트 자체가 만만하지 않다. 선 교수는 “어린이들을 위해 쉬운 문체로 쓴 ‘동화집’이 아니라, 프랑스어 글쓰기의 미학적 규범에 맞춰 쓴 문어체 문장들로 이뤄져 있는 작품인 데다가 서아프리카의 고유한 어휘와 표현들도 많고, 서구적 소설기법을 따르는 부분과 아프리카 문학의 특성인 구술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들이 섞여 있어서 여러 가지로 번역하기 힘든 작품이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원우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와 주었다고 고마워했다.
번역 작업은 꼬박 3년이 걸렸다. 선 교수가 매주 시간을 내 스터디를 지도했고, 이후 이야기 몇 편을 끝내고 스터디팀이 자리잡은 뒤에는 원우들끼리 진도를 나갔다. 각자 번역해온 것을 읽어보고 잘못된 부분을 고친 뒤, 잘 모르는 부분은 선 교수에게 확인해 가면서 초벌 번역을 끝냈다. 초벌 번역이 끝난 뒤에는, 다시 선 교수와 함께 스터디를 하면서 의미가 불분명하거나 어색한 부분을 계속 고쳐나갔다. 그렇게 3년이 훌쩍 지났다. 번역에 참가했던 권소연 학우, 김혜정, 장현경 원우는 “교수님께서는 아직 학생 신분인 우리 모두를 각각의 번역자로 존중해 주셨다. 해답을 바로 제시해 주기보다, 지켜보면서 저희의 역량을 충분히 키울 기회를 주셨기에 오늘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다”라고 선영아 교수에게 공을 돌렸다. 이들은 “고치면 고칠수록 번역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서로서로 응원하고 서로를 북돋워가면서 작업을 해온 덕분에 이 일을 끝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번역과 관련된 뒷이야기도 풍부하다. 그만큼 이번 번역은 ‘교육적 의미’를 두텁게 내장하고 있다. 특히 세네갈과 월로프족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자료 조사가 필요했다. 대학원 과목 중 「아프리카 문화인류학」 강의를 맡은 한건수 강원대 교수와 다른 서아프리카 전문가에게도 자문을 구했고, 또 프랑스에 있는 원우들을 통해 세네갈인에게도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사제동행의 값진 성과가 어떻게 이어지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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