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 국민적 공분을 샀던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소셜미디어와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수천여 개가 유포된 혐의로 피해자만 100여 명에 달한다. 대통령의 백신접종과 관련해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아닌 다른 백신을 맞았다는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사회적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역량과 콘텐츠를 선별적으로 수용·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해 일어났다는 데 있다. 이른바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제대로 갖췄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이번 커버스토리는 미디어를 바라보는 적극적 안목을 키우자는 데 방점을 뒀다. 1면은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디지털 시민성이 왜 중요한지를 다뤘다. 2면은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데이터를 읽어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 리터러시’에 대한 전문가의 제언을 듣는다. 3면은 설진아 방송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과 실천의 필요성을 짚었다.
가짜뉴스 범람 시대
다양화·복잡화되는 일상생활에서 미디어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2월 발표한 ‘2020년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를 살펴보자. TV와 스마트폰의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은 각각 2시간 51분, 1시간 55분으로 나타났다. 뉴미디어 이용량은 더욱 눈에 띈다. 16세부터 64세 이용자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하루 평균 2시간 24분을 쏟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기술 발달로 인해 미디어가 양적으로 팽창해 사람들의 미디어 이용 시간 자체가 늘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미디어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콘텐츠를 분별하고 비판하는 능력도 중요해졌다. 여기에 더해 대중의 불안감을 악용하는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도 간과할 수 없다. 가짜뉴스는 사회적 공동체를 파괴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반사회적 범죄이기 때문이다. 일부 유튜버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조작 방송까지 서슴지 않는다.
특히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의 경우 그 파급력이 막대해 가짜뉴스나 잘못된 정보가 팩트로 둔갑할 수 있다. 하지만 가짜뉴스는 통상 ‘뉴스’의 형태를 띠고 있어 이를 접한 사람들은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를 분별 있게 바라보면서 콘텐츠를 제대로 만들고 소비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해야 할 때다. 이런 작금의 미디어 상황을 관통하는 단어가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다.
‘미디어 활용’보다 ‘비판적 사고’에 무게
미디어 리터러시는 말 그대로 미디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다. 다만 ICT기술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달라졌다. 과거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미디어에 접근해 이용·제작하고, 활용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췄다.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신문과 텔레비전, 인터넷을 활용한 뉴스나 지식·정보 텍스트 수집 방법과 읽기 그리고 비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고 매체가 다변화되면서 그 의미가 훨씬 넓어졌다.
이와 함께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 또는 밀레니얼 Z세대를 합친 ‘MZ세대’의 등장은 보다 확장된 개념의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해졌다. 따라서 현 시기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단순히 미디어를 읽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창의적으로 생산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방점을 둔다.
최근 비판적 사고력 강화로서의 미디어 리터러시가 강조되는 데는 미디어에 대한 시민들의 깊은 불신도 작용한다. 미디어비평가인 이장환 경희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뉴스를 보는 방식이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뉴스가 전통적 방식뿐만 아니라 일상처럼 생활 뉴스 형식으로 제공되고 있는데, 이는 정보의 과부하와 뉴스의 파편화 등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이제 수용자는 정보의 출처가 불명확할 경우 사실과 거짓에 대한 팩트 체크 능력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뉴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비판적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시민성 키워내야
최근 미디어 리터러시의 흐름을 읽는 키워드로 유튜브를 꼽을 수 있다. 아동과 청소년들의 유튜브 사용률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유튜브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매니저도 예전과는 다른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과거에는 사회가, 학교가 혹은 부모세대나 선배세대가 알려주는 가치를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며 “유튜브는 이용자에게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온갖 방식으로 데이터를 취사선택해 영상을 편집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자기 객관화라는 측면에서 관련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관, 행동 양식, 사고 방식 등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소위 얘기하는 ‘디지털 시민성’이다. 이것은 미디어가 재현하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역량,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 사회적 관계에서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역량 등의 확장과 깊게 관련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늘날 ‘디지털 시민성’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힌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도 디지털 시민성을 키우는 방안의 하나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조한다. 그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상위개념이 디지털 시민성이다. 리터러시, 참여, 윤리 등 하위 카테고리가 몇 개 있다”며 “권리와 의무, 참여와 협력 등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이 더욱 필요하게 됐다”라고 설명한다.
21세기 핵심 역량으로 부각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사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핀란드와 호주의 경우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국가 수준 교육과정으로 규정돼 있다. 프랑스는 ‘클레미’라는 국가기관에서 전 연령에 맞는 미디어 교육 자료를 제공한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전 국민을 위한 디지털 시민을 위한 교육용 키트를 무료로 제공하며, 여기에는 많은 영상자료, 리플릿, 게임 자료 등이 있다.
영국도 전통적으로 미디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실시해 온 나라다. 미국에선 학교도서관, 공공도서관을 거점으로 한 미디어 교육이 활발하고, 대부분의 공립학교의 경우 E-Rate라는 정보통신 지원기금을 받기 위한 자격요건의 하나로 디지털 시민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유네스코, OECD 등 국제기구와 호주, 핀란드 등 외국의 교육 과정에서 21세기 핵심 역량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대마다 교육 내용은 달라지고, 나라마다 교육 방법론은 다르지만 미디어 리터러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핵심은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다르게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데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미디어 리터러시가 디지털 시민의 역량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