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화제의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35년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새하얘졌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설국』을 발표했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에도 그는 이 작품을 계속 고치고 또 고쳤다. 서구를 흉내 낸 일본이 아니라, 고유한 모습의 일본을 포착하려 했던 『설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일본적 풍경이 됐다.

인형에서 환경까지, 45명의 다양한 시선
한 권의 책이 문화적 풍경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아마도, 하나의 세계를 명증하게 보여주는 원근법적 구도, 어떤 왜곡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원형, 그로부터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와 겹쳐질 수 있는 의미 지평을 가리킬 것이다. 이경수·강상규 방송대 교수(일본학과)와 이들이 주축이 된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 회원들이 함께 쓴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이하 『일본 문화』)가 눈길을 끄는 이유도 비슷하다. 책 자체가 다양한 스토리를 끊임없이 들려주면서 하나의 풍경이 되기 때문이다.
편견과 왜곡 없이 일본을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독자들을 안내하는 이 책은 45명의 한국인과 일본인이 저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일본어와 일본문학, 일본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일본을 연구하고 체험해 온 전문가들이다. 저자들은 교수에서부터 번역가, 전 무역회사 CEO, 퇴임한 교장 선생님, 일본 TV 스포츠 기자, 다도 전문가, 건축가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일부는 방송대 일본학과 ‘학생’으로도 있다. 집단지성의 힘을 빌린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책은 모두 13장에 걸쳐 일본의 디테일한 모습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다. 예술로 거듭난 쓰레기 섬 나오시마, 친환경 도시로 변모한 나고야, 일본 인형의 특징, 이세신궁, 일본의 차(茶)문화, 고령화와 빈집 문제, 생활 속의 발명품, 마쓰리라는 축제, 간다의 헌책방 거리, 일본인의 사죄 표현, 만년 꼴찌 구단 히로시마 카프, 순교의 땅 나가사키 등 일본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소재들이 소환된다. 이해를 돕는 다양한 사진도 적재적소에 배치돼 있다.
예컨대 이렇다. 일본을 가리켜 인형의 나라라고도 부르는데, 낡고 망가진 인형은 전용 병원에 이송되거나 신사나 사찰에서 의식을 거쳐 정성스럽게 화장될 정도다. 자신을 돌봐줄 새 주인에게 입양되기 위해 전문 업체에 기증되거나 옥션에 나가는 인형도 있다(「인형의 나라 일본」). 이세신궁은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면서 후세에 건축 기술을 온전히 전수하기 위해 20년마다 새로 지어지는 ‘카피’이지만, 2,000년 전부터 존재해 온 신이 그 안에 여전히 진좌하는 ‘오리지널’로 인식하는 일본인들의 강한 믿음을 대표하는 곳이다(「카피(copy)이면서 오리지널인 이세신궁」). 또한, 일본인은 대화할 때 거절의 순간에 애매한 말투로 말을 줄이면서 미완성의 문장을 구사하는데, 여기에는 구체적인 사정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 오해하지 않고 사적 영역을 존중하는 일본인의 언어문화가 숨어 있다. 또 지나칠 정도로 맞장구를 자주 치는데, 맞장구는 일본에서 인간관계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하나로 이해된다(「일본인의 애매한 말투와 맞장구」). 이처럼 일본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면면을 채우고 있다.

 

한·중·일이 문화전쟁을 하고 있는 지금,
경직된 접근보다는 각자가 서로를 다른 시각으로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인 것이다.

 


책 만들면서 교감 깊어진 저자들
그렇다면 『일본 문화』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 책의 탄생을 이해하려면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포럼은 한·중·일 3개국의 언어, 문화, 역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토론하는 학술모임으로, 현재 35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2017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 학술대회를 열어 서로 연구하고 토론했던 성과를 정리한 게 바로 『일본 문화』다.
그렇지만 책으로 완성되는 데는 2년이 걸렸다. 45명이 저자로 참여하다 보니 글도 천차만별이었다. 7명의 편집위원을 뽑아 100여 편이 넘는 글 가운데서 고르고 또 골라냈다.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주영 방송대 대학원 일본언어문화학과 원우는 “특히 너무 어렵거나 지나치게 전문적인 글들은 진짜 조심스러웠다. 일반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게끔 수정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자들은 자연스레 서로 마음의 교감을 쌓았다. 외부 전문가로 필진에 참여한 조용란 다도 전문가는 “45명의 저자 모두가 책을 완성해가면서 일본 다도의 정신인 이치고이치에(一期一. 생애 한 번뿐인 만남이란 의미)의 마음이 통한 것 같아 흐뭇했다. 저자로 참여하길 잘했다”라고 말했다.
이경수 교수는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교양적 글쓰기를 지향했다. 집필진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서로 다른 저자들의 글을 교차로 읽어야 했다. 독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비판하면서 글을 수정했다. 퇴짜도 많이 놓았다”라고 털어놨다. 강상규 교수는 “중요한 것은 글의 ‘수준’이 아니라, 일본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풍요롭게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냐다. 그건 자신감의 표현이다. 한·중·일이 문화전쟁을 하고 있는 지금, 경직된 접근보다는 각자가 서로를 다른 시각으로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라고 책의 의미를 매겼다.

“학우들, 비판적 독자가 되어 달라”
책은 언제나 독자와 떨어질 수 없는 운명공동체다. 저자들은 방송대 학우들이 이 책의 비판적인 독자가 돼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특히 두 교수는 “방송대는 다채로운 독자층이 모여 있는 곳이라 『일본 문화』를 읽는다면 방송대에서 출간한 책이라고 무조건 수긍하고 수동적으로 읽고 끝내기보다는 좀더 적극적인 독서를 하면 좋지 않을까?”라면서 제안을 하나 덧붙였다. 자신이 알고 있었던 일본과, 책에 소개된 일본은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고 비슷한지 분석해보자는 것. 만일 자신이 훗날 일본에 관한 글을 의뢰받는다면 어떤 방향으로 쓸 것인지도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좋겠다는 뜻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집필진 가운데는 중년의 나이에 방송대에서 일본학을 전공하고 기존의 자기 직업과 일본 사이의 접점을 찾아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에서 적극적으로 발표해 글을 청탁받은 경우가 적지 않다”라고 말하면서, “이 책이 방송대 학우들에게 미래의 저자가 되고 싶다는 자극을 줬으면 좋겠다”라고 기대감을 비쳤다.
저자들은 올해 안에 다음 책을 내겠다는 포부를 다지고 있다. 21세기판 조선통신사 45명의 일본 문화 이야기는 이제 막 새롭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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