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호시노 도모유키의 인간 탐색

호시노 도모유키는 일본 내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를 잇는 유망한 젊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소설 『책이여, 안녕』(2008)에서 자신의 문학적 후계자로 그를 지목하면서 국가를 흔들리게 하는 규모의 소설을 쓰고 있다는 말을 덧붙여 화제가 됐다.
그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바, 고령사회의 어두운 사회적 단면 속에서 사회시스템이 취해야 하는 윤리적·제도적 방안, 소비자본주의의 폐단을 넘어서려는 노력들 등에서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상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KNOU위클리>가 월 1회 ‘호시노 도모유키의 인간 탐색’을 연재하기로 한 이유다. 한일 두 나라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모색이 어떤 사유의 지평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한국에 계신 여러분,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저는 일본의 소설가, 호시노 도모유키(星野智幸)입니다. 어느새 20년 이상 소설을 썼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도 있고, 2012년에는 서울에서 몇 달 살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작가와 문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이렇게 칼럼을 연재하게 되어 날아오를 듯이 기쁩니다.
코로나19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자유한 생활이 1년 이상 이어지는 가운데, 여러분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익숙해진 부분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가 쌓여 뭐라 표현할 길 없이 힘든 느낌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감염자 수의 추이는 상당히 비슷합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방역을 잘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런 만큼 백신 접종이 늦어지고, 경제활동의 제한이 계속되며, 생활고를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고, 정치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도쿄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곤궁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NPO(Non Profit Organization. 시민들과 함께 공익 목적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 옮긴이 주)가 도쿄 도청 부지 내에서 생활 상담을 하는데, 거기에 오는 사람이 매주 늘고 있어서 5월 중순에는 350명을 넘었습니다. 그 단체가 준비할 수 있는 양을 넘었고, 민간이 노력하는 것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비명이 들려옵니다.
곤궁한 사람을 지원하는 NPO는 어디나 의료종사자와 마찬가지로 휴일을 반납하고 한계를 넘어 일하고 있지만 늘어나기만 하는 가난한 이들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원활동을 하는 저의 친구들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 나날이 1년을 넘겼고, 아직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현장의 봉사자들에게 맡겨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공적 기관의 지원이 부족한 가장 큰 원인은 코로나 이전에 있었습니다. 일본은 빈곤에 대한 지원 대책이 부족하긴 하지만, 생활보호라는 마지막 수단은 그런대로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살 곳이 없어지면, 생활보호 신청을 해서 일단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활보호 신청을 담당하는 지자체 복지사무소의 창구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신청서를 받지 않고 쫓아내는 짓을 몇 십년에 걸쳐 일상다반사로 해왔습니다. 이것을 ‘수제작전(水際作)’이라고 부릅니다.

사진 출처=https://www.npomoyai.or.jp

우리 주변이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가치관을 지녔다면,

비폭력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배제의 폭력에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폭력의 비중이 커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것이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분명하게 표면화됐다.


10년 전에는 생활보호 수급자 가운데 벌이가 있으면서도 부당한 방식으로 보호 수급을 받는 사람이 많다고 일부 보수 정치가가 사실과 다른 소문을 내어, 이에 편승한 넷 우익들(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우익세력을 칭하는 말. 인터넷 우익. 옮긴이 주)이 생활보호 수급자를 비난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헛다리짚는 비난을 ‘자기 책임론’이라고 부릅니다. 사실은 행정이 지원해야 할 문제인데, ‘일하려고 하지 않는 당사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난해 힘든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논법입니다. 이 자기 책임론이 일본 사회를 뒤덮은 결과, 코로나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자리를 잃고도 ‘나쁜 것은 힘없는 자신’이라고 생각해서 ‘힘드니까 도와 달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활보호 신청을 하면 사람 구실 못하는 것으로 보여 비난받을 것을 의식하기 때문에 두려워서 신청할 수 없습니다. 혹은 자신은 생활보호를 받을 만큼 ‘바닥에 떨어진’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분명히 어려운 때를 위해 마련한 제도가 있는데도, 정치가나 공무원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다메닝겐(‘루저’에 해당하는 일본어)’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그 제도를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코로나의 소용돌이 속에서 갑자기 빈곤에 빠진 사람도 생활보호 신청은 선택지에 넣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봐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신청하더라도, 코로나 이전처럼 행정 창구에서 신청자의 약점을 잡아 되돌려 보내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되돌려 보내지면 그 사람은 다시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그런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좌시할 수 없는 마음이지만, 행정 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완전히 다릅니다.
긴 세월 ‘수제작전’을 반복한 결과, 복지사무소 사람들은 신청자를 ‘사실은 궁지에 몰리지 않았으면서 그런 척하며 세금을 좀먹는 자들’이라고 정말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세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눈으로 보면, 아무리 약한 모습으로 상담을 하러 가도, 뭐든 속이기 위한 연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왜곡은 보는 사람의 시선에 있는 것이건만, 모두가 왜곡된 시선으로 보면, 그것이 ‘보통’이 되어 버립니다. 생활보호를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사이에 선을 그어서 선 이편에 있는 ‘우리’는 ‘보통’ 사람이고, 선 저편에 있는 사람은 부실한 인간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들 책임이며 도와줄 필요는 없다고 하면서 공감이나 동정을 느낄 상대에서 제외합니다.
인간이 집단적이고 잔혹한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할 때는 대부분 그들의 가치관 속에 이런 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선 저편의 인간으로 보이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저쪽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선 밖의 사람을 공격하고 자신이 선 밖으로 나가버려도 현실에서 눈을 돌려, 자신을 부정하고 상처 주는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이 이런 차별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세뇌당하거나 차별에 가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선 긋기나 타인을 범주화하는 일에는 권력의 달콤함과 쾌감이 있고, 한편으로 선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에 대한 공포는 한이 없어 누군가가 내 앞에서 선을 긋기 전에 자신이 그어 버리고 맙니다.
좋든 나쁘든 인간은 주변을 흉내내고, 주변과 가능한 한 같은 가치관을 공유함으로써 생존하는 생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이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가치관을 지녔다면, 비폭력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배제의 폭력에 지배당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폭력의 비중이 커지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코로나196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세 살 때 일본으로 귀국, 도쿄 인근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1988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 후 2년 6개월간 산케이신문 기자로 근무했고, 1990년대 초 멕시코로 유학을 떠났다. 1995년에 귀국한 뒤에는 자막 번역가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7년 『마지막 한숨』으로 제34회 문예상을 수상했고, 2000년 『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로 제13회 미시마유키오상, 2003년 『판타지스타』로 제25회 노마문예 신인상을 수상, 『오레오레』로 오에 겐자부로상, 『밤은 끝나지 않는다』로 요미우리문학상, 『호노오』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19 팬데믹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분명하게 표면화된 것입니다.
다만, 이런 선 긋기로 자기만 빠져나와서는 코로나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의사표시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입니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진동이 시작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될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지 가장 두려운 방향의 에너지로 전화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번역 김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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