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시험이란 압박감에서 무장해제를 당하듯 아니면 버리듯, 도망치듯 벗어난 것이 마냥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의 해방감이 두고두고 썩 편치 않았던 건 지금의 내 모습 때문이겠지요.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거느린 식솔들이 있으니 책임감으로 살아왔습니다. 셋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건강한 가장이 돼야 이들을 지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검도라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물리적인 위험으로부터 지켜줘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참으로 힘든 고비들이 많았습니다. 맞고, 때리고, 멍들고, 상처받고, 시합 나가 좌절하고 심사에서 떨어지고… 지치면 초심을 잃지 말아야지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되뇌고 하다 보니 어느새 공인 4단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 그로 인해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가 생각하지 못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아빠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는 좋은 신호를 주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저는 아이들의 미래도 생각해 보았을 때 직업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특별하게 버팀목이 되어 줄 수는 없지만 건강하고 당당한 아빠라는 모습만으로도 뒤를 받쳐 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아이들이 좋은 배우자와 그의 가족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도, 나도 괜찮은 일가(一家)를 만들고 싶어지게 돼서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방송대 일본학과 공부였습니다. 걱정 한가득, 기대 한가득 안고 시험에 임했습니다. 솔직히 중·고등학교 때보다는 떨림은 없었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연륜이라는 게 이런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담담하게 시험을 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첫 검도 시
합에서 저에게 첫 패배를 안겨준 이가 ‘임종봉’인데, 그 이름 석자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면 반드시 이기리라 다짐하며 무딘 칼을 갈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런 각오로 시험을 치르고 나니 확실히 공부 한 만큼 보이는 게 정답인 듯합니다.
조금 더 일찍 방송대를 선택해 새로운 시험에 도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밀려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