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내면 깊은 곳에서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힘의 집합을 ‘인간 본성’이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권력을 향한 욕망의 힘이 가장 세다. 지위를 통해 조직 내에서 나의 서열과 가치를 가늠하려는 욕구는 모든 수렵-채집 문화에서 발견되는 특징으로 침팬지에서도 볼 수 있다.


인간 욕망 중독의 최정점엔 권력이 자리한다. 탐욕과 욕망을 지배할 것 같은 식탐이나 성욕을 넘어선 거기엔 권력욕이 있다는 말이다. 권력은 궁극의 최음제(aphrodisiac)다. 노인복지관에서도 반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노인이 있는 걸 보면 지배 욕망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게 분명하다.


권력은 클수록 블랙홀(blackhole)처럼 주변 공간을 왜곡한다. 그 곁에 가까이 갈수록 모든 게 심하게 뒤틀린다. 그리고 권력의 중심에만 머물러 있으면 세계를 보는 눈이 극도로 왜곡된다.


공직이 주는 알량한 권력을 추구하는 관료나 대권을 향해 질주하는 후보자들의 종착점은 모두 인간 욕구 중독의 최정점이란 점에서 같다.


권력자가 된다는 것은 가면을 쓴다는 뜻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정적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이집트로 떠나 클레오파트라와 시시덕거릴 때 그를 비웃었다. 최고지도자가 된 후 아우구스투스는 인민의 아들인 양 라틴어 방언을 쓰고 소박한 생활을 했다. 물론 쇼였다. 이집트 등 이국 출신의 정부(情婦)도 줄줄이 있었고 별장 생활을 더 많이 했다. 연극을 광적으로 좋아했던 그는 가면을 쓴 쇼맨십의 달인이었다. 죽기 전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내가 내 역할을 잘했는가?”라고 했으니까.


인격(personality)은 라틴어 ‘가면(persona)’에서 비롯된 말이다. 남 앞에서 누구나 가면을 쓴다. 페르소나를 쓰고 역할 연기를 잘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가까이 보지 못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코앞에서 나를 본다면 불안할 것이기에. 실제로 맡은 역할을 잘 연기하면 더 많은 힘이 생기고, 힘이 있으면 나의 기이한 면까지 더 많이 표현해도 되는 자유가 생긴다.

 

다윗의 반지에 새긴 이 말은,
후대에 '모든 게 한때'라는 의미가 덧붙여졌다.
권력이란 통화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뜻이다.

 

검이 언제 자신을 향해 떨어질지 모르기에 왕은 늘 불안감을 안고 산다는 걸 보여주는 그림이다.


권력은 원하는 대상을 획득할 수 있는 보편적인 통화다. 사람도 도구처럼 획득한다. 그래서 권력에 도취한 사람은 남들을 자신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에게 사람은 관심과 인정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다. 모든 일의 중심은 자신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압살롬은 ‘자기도취적 리더’다. 알키비아데스, 키케로, 네로 황제 등 독재자는 이 유형에 해당한다.
선출직에 나온 사람을 대하는 우리는 느낌이 아니라 이성의 눈으로 직시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느낌을 믿는다는 것은 ‘이성’과 ‘경험’이라는 우리 안의 신들을 놔두고 할머니, 할아버지, 그 윗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말이라고 했다.


성격은 그리스어로 ‘조각하다, 도장을 찍는 도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성격은 우리 안에 깊숙이 배어 있거나 각인돼서 우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무엇’이다. 성격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는 “성격이 운명이다”라고 했는지 모른다. 링컨은 “누군가의 성격을 시험해 보고 싶으면 그에게 권력을 쥐여 줘라”라고 했다. 권력을 얻기 전과 얻은 후 행동의 차이를 잘 보라는 말이다. 우리는 권력이 사람을 바꿔 놓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권력은 그 사람의 실체를 더 많이 보여줄 뿐이다. 근자에 우리는 이런 사람을 많이 봐왔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기도 했다. 가까운 장래에도 그 고통이 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래됐다고 사슴뿔이 될 리 없는 염소 뿔 같은 범속(凡俗), 돌 깨는 기술은 뒷전으로 미루고 눈 깜짝이는 것부터 배우는 석수, 이런 부류의 인사가 공직에 발을 들여놓게 해선 절대 안 된다.


모름지기 권력을 쥔 자는 ‘다모클레스의 검(Sword of Damocles)’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시칠리아 시라쿠스 왕, 디오니시우스가 자신의 부와 권력을 부러워하는 신하 다모클레스를 연회에 초대해 왕좌에 앉힌 뒤 머리 위에 말총에 매달린 칼을 걸어 놓았다. 그 검이 언제 자신을 향해 떨어질지 모르기에 늘 불안감을 안고 산다. 셰익스피어의 역사 4부작 헨리 4세에서 “왕관을 쓴 머리는 편안히 쉴 수 없다”라는 대사가 이를 대변한다.

 

게다가 권좌에 영원히 머물 순 없는 노릇이다. 다윗의 반지에 새긴  ‘이 또한 지나가리라(Hoc quoque transibit)’는 승리의 기쁨을 차분하게 다스릴 수 있고, 동시에 큰 절망에서 용기를 주는 글귀를 기대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들 솔로몬이 지었다. 후대에선 여기에 ‘모든 게 한때’라는 의미를 덧붙였다. 권력이란 통화의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이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권력에도 가시가 있다. 유혹의 가시다. 그 가시에 찔리면 첫 번째 증상은 오만이고, 다음 증세는 과오에 대한 무감각이며, 마지막 결과는 낙마요, 파멸이다.


이래도 권력을 부러워한다면 권력 최음 상태를 의심할 일이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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