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학번으로 시작된 방송대. 입학하기도 졸업하기도 힘든 대학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상태였지만, 입학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과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름과 겨울 출석수업 때는 명륜동에 위치한 성균관대와 서울대 관악 캠퍼스 강의실에서 출석수업을 하고, 시험도 봤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그때 같이 공부했던 언니들과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다.
남편이 방송대 영문학과 3학년에 편입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나도 <KNOU위클리>를 애독하게 됐다. 처음에는 좀 생소한 느낌이었는데, 볼수록 유익한 내용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위클리>를 통해 방송대인의 열정 가득한 삶을 들여다보게 됐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각종 자격증을 취득해 새로운 희망을 다져가는 동문들의 이야기에서 같은 방송대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위클리>가 방송대 동문과 학우들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방송대를 졸업한 후 1999년 방송대 평생교육원에서 처음 시도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사 과정’ 1기를 수료하고 자겨증을 취득한 후 많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왔다. 현재 강화 국제선원 주지 스님이 되신 분도 내가 가르쳤던 많은 외국인 가운데 한 분이다. 또한 복지관에서도 어르신을 상대로 1년간 한글을 지도하기도 했다.
나는 방송대라는 갑옷을 두르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문인협회와 국제PEN본부, 한국여성문학인협회에 적을 둔 작가인 나는 청소년지도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관련 자격증도 취득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고 있다. 현재는 평생교육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실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습이 끝나는 7월 말이 되면, 평생교육사 2급 자격증도 갖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던 것은 순전히 방송대 덕분이다. 모교의 보이지 않는 보호막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학교 동문이 된 남편과는 2002년 월드컵 행사시 같이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나는 월드컵 경기장 내에서 외국인 기자 안내석을 맡았고, 남편은 광화문 안내소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안내를 했다. 남편은 멕시코인을 안내한 것이 계기가 되어 외국인이 추천한 친절 베스트 시민상 수상자로 뽑혀 ‘KBS 좋은 나라 운동 본부’에 출연, 부상으로 금메달 1냥을 받는 기쁨도 누렸다.
문득 어느 노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부지런히 갈고 닦아서 정신적인 가치에서 얻는 행복을 나의 가족, 내 주변, 더 나아가서 이 사회와 공유한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밝고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생의 사회적 가치는 60세부터 온다고 했다.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하며 정신이 늙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뭐든지 배워야 한다는 말에도 동감한다. ‘죽을 때까지 그 모든 것이 삶이다’라는 스페인 속담처럼
, 살아가는 ‘삶’ 동안은 치열하게 살고 싶다.
작가로서, 그리고 다양한 자격증을 갖춘 전문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방송대라는 사다리를 선택하고 올라탔기에 가능했다. 이제 얼굴을 모르는 수많은 방송대 후배님들에게 방송대라는 사다리 위에서 새로운 희망이라는 세계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